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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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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2018/03'에 해당되는 글 7

  1. 2018.03.31 에고에서 해방된 사람
  2. 2018.03.26 명상 기도 해설(2)
  3. 2018.03.25 명상 기도 해설(1)
  4. 2018.03.24 '편지'의 명상법
  5. 2018.03.23 구원과 치유에 대한 응답
  6. 2018.03.03 불려불사(弗慮弗思)
  7. 2018.03.01 궁극의 바람
2018.03.31 08:00 그리스도의 편지

그의 일상 속으로부터 오로지 찬양과 감사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빈 마음을 지닌 밝아진 영혼(enlightened soul)이 잠을 깰(wake up) 것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일거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 일을 행할 의욕과 에너지를 지닌 것에 감사를 올리면서 마음 속에 아무런 저항도 없이, 시작의 망설임도 없이 그것을 행하러 나설 것이다. (526쪽)

-- 어제에 이어 '에고로부터 해방(freedom from the 'ego')'을 성취한 사람의 상태를 설명합니다. 신의 현존인 참나는 우리의 에고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에고만 치우면 신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 스승들은 가르칩니다. 마치 구름이 벗겨지면 태양빛이 환해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 상태와 가장 비슷한 경우가 아이 마음(赤子之心)이기에 노자를 비롯한 동양 영성은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텅빈 마음이어서 일이 있으면 그림자처럼 일이 비추지만 일이 지나가면 다시 텅비고 고요한 상태가 됩니다. 불가에서 이 경지는 일이 없는 상태(没事)라 해서 북한과 중국에서는 인사말로 정착되어 있지요!

마음은 세상사, 즉 컨텐츠들에서 떠나 하나인 존재 자체, 즉 맥락과 하나가 되어 있어 특별히 마음이 고정돼 있는 사물이나 장소가 없습니다. 신의 현존, 신성을 항상 느끼기 때문에 언제나 '하늘 높은 곳에는 영광'이라고 외치고 싶은 환희와 평화만 있습니다. 그러다가 주변에서 요구되는 일을 하되 애덕의 요구 때문에만 움직입니다. 그러니 저항 없이, 망설임 없이 주어지는 일을 합니다. 이 일은 은총으로 갑작스럽게 일어나기도 하지만 우리처럼 '편지'의 인도대로 꾸준히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러나 양자 모두에 있어 중요한 것은 열망과 결단과 기대입니다. 나날이 밝아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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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6 05:28 그리스도의 편지

기도는 다시 한 번, 신성이 완전한 사랑이며 우주적 지성이어서 창조 법칙과 작용의 주체이시고 또한 우리를 완전히 받아들이시며 보호하고 지켜주신다는 것을 반복합니다. 스승들 용어로 하면 모든 드러난 것(manifest)과 그 배후(unmanifest)가 모두 신입니다.

또한 이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 신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주시기를 기원하며 우리 생각은 신성에 집중합니다. 그것이 마치 탐조등을 비추며 신을 찾는 행위와도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꾸준히 노력하는 동안 바깥 사물로 향하던 우리 마음은 더욱 신을 받아들이기 쉽도록 변하며 신은 우리가 느낄 수 있도록 마음과 심장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입니다. 즉 신을 만나는 일은 상호작용임을 암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온 존재와 매 순간의 삶 모두를 신의 보살핌에 완전히 맡기면서 기도를 마칩니다. 

그런데 제가 발견한 재미있는 사실은 기도 첫머리와 끝머리를 합치면 범어인 '나무아미타불'과 같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아미타 부처'란 무한한 빛이며 영원한 생명 자체를 일컫는 말이며 '나무'란 의탁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반복하자면 '아버지-어머니-생명이신 이여, 제 자신과 제 삶을 당신 보살핌에 내어 맡기나이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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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5 07:41 그리스도의 편지

오늘은 명상기도를 해설해 볼까 합니다. 이 기도는 어쩌면 책 전체의 핵심을 요약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가장 먼저 신의 속성이 무조건적 사랑임을 말합니다. 즉 신성이란 우리에게 생명이며 건강이고 가장 숭고한 영감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를 지탱해주고 보호해주며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며 안내자가 되어 줍니다. 

이러한 신성에 대해 우리는 그 실체를 계시해 줄 것을 기도합니다. 그 실체는 무소부재하기 때문에 우리 안에는 물론 바로 내 주변에서 나를 감싸고 있습니다. 혹시 이 계시가 교회나 절에만 드러나고 개인은 다시 그러한 종교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독실한 신도일지 몰라도 영성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신성이 우리에게 드러나고 우리가 체험하는 것은, 모든 스승들의 표현이 일치하는바 밝아짐이라 합니다.

밝아짐의 성취조건은 소아(小我) 또는 에고 포기에 비례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하기를 우리가 '완전히 밝아져서 신성의 현존을 더 잘 받아들이게 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믿기만 하는 것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믿고 안다고' 기도합니다. 영성 전통에서 안다는 것은 체험하는 것, 또는 그것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신성을 체험하고 신성이 우리를 독차지하여 우리 존재가 신성으로 가득 차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신성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것이 사는 목적이라고 선언합니다. 

기독교 신비주의 전통에서 밝아짐의 조건은 거비정화(去非淨化, purification), 즉 아닌 것(낮은 감정, 즉 情)을 떠나서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밝아지고 비추는 단계, 즉 진덕명화(進德明化, illumination)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점진적으로 진행된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겠지요! 내일 후반부를 해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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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24 05:11 그리스도의 편지

'편지'가 제시하는 명상법은 (1) 가장 편한 자리에서 완전히 편한 자세를 취하라는 것입니다. 졸음에 빠지듯 단순해야 하는 것이며 그 목적은 의식을 지성과 이성 경계 너머로 옮겨가는 데 있다고 합니다. (2) 두 번째는 <신 의식>과 접촉하기 위한 뜻을 의식하며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은 명상전 기도에 있는 대로 <신 의식>을 찾아나서는 탐조등입니다. 그러니 생각을 <우주 의식> 즉 <신적 생명>에 집중하라고 합니다. 

(3) 그렇게 해서 무소부재한 <신 의식>인 <아버지-어머니-생명>과 만나고 <신 의식>이 우리의 비워진 자리에 온전히 들어서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소위 하느님의 종이 되는 것이며 하느님이 다스리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4) 명상 중에 책 518쪽 또는 제 블로그의 명상 기도에 있는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생각하고 심상화합니다. 눈은 감고 시선은 이마 부분을 향합니다. 

제 경우 주로 아침에 깨어났을 때나 저녁 취침 직전에 스톱워치를 원하는 시간만큼 걸어놓고 위와 같은 순서로 진행합니다. 쿠션으로 등을 받친다든지 하여 잠이 들어도 좋다는 기분으로 하는 것입니다. 최소 10분부터 시작하되 점점 시간을 늘려갈 수 있습니다. 제 경우 1시간까지 해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매일 습관처럼 하는 것입니다. 기도문 이외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영적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요점입니다. (이상 514~520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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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8.03.23 06:43 그리스도의 편지

나는 너희 고통과, 절망의 시간과 외로운 밤의 슬픔과, 정신적-감정적 혼란과 동요의 시간들을 안다. 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그리고 너희에게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이해하기 위해서 너희 주파수로 내려갈 때 나는 너희가 사는 지상의 조건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이 말들은 너희가 가장 화급히 필요로 하는 구원과 치유에 대한 내 응답이다.


이 말들이 과연 내게서 온 것인지를 의심하지 말라. 이 말들에서 위안을 얻고 그것을 공부하다 보면 그것이 너희 영혼 속 깊은 곳을 조명해주고 오래도록 열망해온 그 변화를 너희 자신과 너희 삶에 가져다 줄 것임을 <알라>. (513~514쪽)


-- 불가에서 최고품에 오른 보살은 다시 낮은 인간들에게 내려가서 모두 구원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을 통하여 우리가 바로 이러한 보살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분입니다. 제 짧은 공부지만 '편지'가 유교와 불교의 동양 영성을 확인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 이곳에서 천국에 드는 노하우만 제대로 알면 거기에 구원와 치유가 있고 우리가 바라던 모든 소망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밖의 '신념의 마력'이라든지 '잠재의식의 힘'이라든지 '빅 싱크'라든지 '시크릿'이라든지 무엇을 택하든, 보살 정신 또는 그리스도 의식을 우회한 방법은 모두 실패한다는 것을 저는 체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일은 '편지'가 가르치는 명상법을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가 모범으로 삼는 모세를 살펴보면 산 위에서 홀로 명상과 기도를 통해서 신 체험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길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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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3 07:21 단상

자주 뵙지는 못하지만 가까운 데 계시기에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뵙도록 노력하는데 장모님은 93세, 모친은 85세입니다. 저도 이 세상의 입구보다 출구쪽이 가깝기에 앞의 단상(궁극의 바람)과 같은 소감을 적은 것입니다. 대략 향후 15년 정도 안전한 출구 통과를 염두에 두고 전심으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재론하면 어떻게 그 전에 '지고의 존재상태에 도달하고 고통없이 장엄하게 건너갈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마련중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은 바로 명상에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실패하던 꾸준한 명상을 지금은 실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전에 바닥 체험과 회두와 조금 꾸준하고 열심한 추구가 있었습니다.

명상은 고려, 조선의 모든 진실한 지성인이 추구했던 일로서 그에 대해 가장 좋은 안내서는 '복성서'입니다. 복성서는 제가 나름 심혈을 기울여 번역했는데 요컨대 멸정복성(滅情復性)을 통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법을 중용을 근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명상의 요점은 불려불사(弗慮弗思)입니다.

명상의 목적은 생각을 '나'와 동일시 하지 않는 것이며 고요하고 텅 비어 있는 자리, 눈 감고 있을 때 마치 잔잔한 대양과 같은 자리가 바로 신적 실재라는 것을 완전히 깨닫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존재와 생명이 나오고 거기가 바로 모든 기쁨과 사랑의 근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때까지 노력하여 결국 믿음이 아니라 앎으로써 신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상 천국의 실현입니다. 그렇게 신과 하나 되어 세상에 대자대비를 실천하는 것이 모든 영성이 제시하는 바의 천국에 드는 방법입니다. 그 길에서 소아의 노력을 버리고 스승과 신령 쪽에 주도권을 드리는 것이 바로 순명이자 순종입니다. 명상을 어렵게 생각지 말고 매일 10분 이상 생각을 끊고 '릴랙스'하는 것만 실천하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검증된 경전을 교재로 삼아 곁에 두고 학습해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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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07:27 단상

범세계 차원에서 인간의 가장 위대한 이벤트가 있다면 올림픽이고 그 이유는 그 정신이 평화에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가장 잘 표현한 분이 독일 대통령인데 인용하자면 "고대로부터 이어온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사람들에게 다시 불러 일으킬 수 있다면 평창 올림픽은 이미 성공적이다."는 것입니다.

오늘 매일 읽는 명상집에서 영감을 받아 이 세상을 떠날 때 "평화와 사랑"의 사람이었다는 평으로 남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당 내용을 옮겨보겠습니다. "신의 현존 체험은 언제든 가능한데 우리 내면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선택을 기다린다. 그 선택은 평화와 사랑을 제외한 모든 것을 신께 바침으로써만 이뤄진다. 그 보답으로 언제나 함께 했으나 이제껏 체험치 못했던 참나이기도 한 신성이 드러난다. 그것이 체험되지 못한 이유는 무시했거나 잊어버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호킨스)."

재론하면 제 궁극의 바람은 '신의 현존 체험 속에서 남은 삶을 잘 살고 나서 안심하고 저 세상으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강조하는 의미에서 바꿔 말하면 '행(行)을 바꾸고 정신의 꼴을 새로 짓고 내면의 신 체험에 장애가 되는 업장을 지워내고 신의 뜻에 따라 세상에 천국을 건설하는 일에 매진하다가 기쁜 마음으로 저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리스도의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어서 인용합니다. "내 가르침은, 오로지 너희 의식이 새로운 생명과 활기와 영적 권능 앞에 열려 있게 함으로써 유한하고 불만스러운 낡은 삶의 방식을 버리고 내적 환희의 새로운 근원과 나날의 필요 충족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되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나는 너희가 다음 차원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러한 지고의 존재 상태에 이르기를, 그 건너감이 고통 없이 이뤄지기를, 그리고 그 건너감이 장엄한 것이 되기를 신적 사랑으로 열망한다. (번역본,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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