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환상

'홀로그램'에 해당되는 글 3건

  1. 복권과 깨달음
  2. 기독교와 존재의 근원
  3. 현실 창조 능력

복권과 깨달음

단상

아침 명상 때 엊그제부터 강한 인상을 받은 복권이 주제로 떠올랐습니다. 수조원대 복권 맞은 부부의 얼굴을 온라인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관련해서 내게 100억이 있다면 무슨 일을 할까 하고 적어보기까지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복권은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도 않고 확률이 지극히 낮지만 깨달음을 성취하면 복권보다 더 큰, 즉 무한한 가치가 있을 뿐 아니라 이것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습니다. 게다가 복권에 맞지 않으면 투자한 돈을 날리지만 영성 공부는 한 만큼 쌓이면서 그 과정마다 커다란 보상이 있습니다.


실상 소화 데레사 같은 분은 평생 좁은 수도원을 벗어나지 않고 사소한 일상생활을 하며 자기 수양과 기도밖에 한 게 없지만 그쪽 종교에서는 전교의 성인으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호킨스 박사도 나 하나 영성이 향상하는 것이 바로 세상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유물적 사고를 하면 이해 못할 일이지만 우리를 포함한 우주는 홀로그램으로 되어 있고 우리가 오감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의식의 소산일 뿐 아니라 파동으로 된 오리지날 필름의 100억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 아닙니까? 모쪼록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하겠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상적인 직업 또는 배우자  (0) 2016.01.25
신비주의 영성의 공통점  (0) 2016.01.24
복권과 깨달음  (0) 2016.01.19
함허스님의 참나  (0) 2016.01.14
참된 기복  (0) 2016.01.03
기독교와 존재의 근원  (0) 2015.12.29

기독교와 존재의 근원

단상
기독교가 내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불교 서적을 짬짬이 읽고 있다가 미국인 월쉬와 호킨스를 접하면서 교회 출석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호킨스를 통해서 양자역학과 첨단 물리학에 입문하였고 스티븐 데이비스의 '나비되기'를 만나면서 홀로그램 이론을 알게 됐습니다. 지난 10월에는 '그리스도의 편지'를 접하고 전자기학을 모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첨단 물리학에서 우주론과 소립자와 표준 모델을 모르면 또 안됩니다. 이제 첨단 과학의 과제는 의식이라는 거대한 벽을 두고 이런저런 도전을 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존재의 근원이 무엇이며 창조의 가장 깊은 신비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노력입니다. 그러니 호킨스 같은 사람은 깨달음으로 가는 세가지 길¶ 가운데 하나가 첨단 물리학이라고 합니다.

기독교와 자기계발서, 그리고 영성과 수양서를 거치며 답을 찾아오고 있습니다. 한가지만 참고삼아 덧붙인다면 기독교 유신론(특히 구약)의 최대 오류는 신을 시공으로 끌어들여 논한 데 있다는 게 호킨스 박사의 논지입니다.

¶ 나머지 두가지는 신비가의 길과 방하착입니다. 신비가의 길은 대부분의 깨달은 분들이 취한 길로서 장기간의 침묵과 명상이 그 방법입니다. 방하착의 길은 제 블로그의 나비되기에 나오는 로버트 프로세스와 호킨스 님의 방하착이 있는데 우리를 사로잡는 감정을 최대로 느껴보고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 모든 방법에서 중요한 것은 매일 끊임없이 참나 또는 신성을 향하여 깨어 있는 노력을 하는 것이며 유교 전통에서는 경(敬)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허스님의 참나  (0) 2016.01.14
참된 기복  (0) 2016.01.03
기독교와 존재의 근원  (0) 2015.12.29
에고 극복의 효과  (0) 2015.12.24
지상에서부터의 천국  (0) 2015.12.20
천국과 무조건적 사랑  (0) 2015.12.19

현실 창조 능력

단상
'홀로그램 우주'를 읽으니 누구에게나 현실 창조 능력이 있을 거라는 심증이 갑니다. 그리스도께서 택도 없는 먹을거리를 가지고 수천명이 먹게 한 기적을 그 후에도 여러 신비가들이 재현한 증거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은 것은 창조의 원천과 방식, 존재의 근원에 대해 무지한 데다 오감이 체험하는 바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무한한 능력인 신 의식을 공유하는 우리가 의심에 싸여 있거나 사사로운 동기로 인하여 장애와 반대를 얻어 만나기 때문인 듯합니다.

요컨대 끌어당김의 법칙이 존재하는 건 분명한데 개체화 과정에서 익숙해진 좁은 시야와 사사로움이 그 법칙의 구현을 막는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사사로움의 원천인 에고를 철저히 이해하고 초월함으로써 신 의식이 나라는 그릇(器)을 통해 무한히 구현되도록 하는 게 우리가 택할 몫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명상과 환생  (0) 2015.12.13
형제애 또는 보시행의 전제  (0) 2015.12.12
현실 창조 능력  (0) 2015.12.09
스펙과 영성 지능  (0) 2015.11.26
조하르와 그리스도의 편지  (0) 2015.11.12
멸정복성이 공통분모  (0) 2015.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