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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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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7 06:02 단상

오늘은 저희 공부 그룹에 올린 글을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너희가 배척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 나 그리스도는 언제나 가장 깊은 사랑과 연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너희는 깨닫고 있는가? 너희가 배척하는 사람에게 나는 무조건적 사랑을 방사하고 있다."

실상 위와 같은 일은 우리가 에고에 머무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솔직한 말입니다. 유교의 인(仁)과 서(恕),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은 모두 인간에게 불가능한 수준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붙이를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하는 것이라고 바이블은 말하는 것입니다. TV를 보니 짐승도 측은지심을 실행하더군요.

경전들이 말하는 바는 우리가 에고를 완전히 극복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 도정에서 되도록 억지로라도 하다못해 기브앤테이크 방식으로라도 비슷하도록 끝까지 노력해보자는 것이 소위 종교들이 버티는 최저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리학 또는 신유학의 가장 초기 논문인 복성서는 대략 11세기 전에 에고로 에고를 이기려는 것은 더 큰 에고일 뿐(以情止情, 是乃大情也)이라고 했습니다. 바이블도 자신을 부정하고(forget self) 나를 따르라고 했습니다. 이를 위한 필수적인 방편이자 간절한 노력이 명상입니다. 마음이 근본적으로 침묵해야만 에고를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 스승들의 가르침입니다.

이성이 도움이 된다면 위 구절에서 방사한다(radiate)는 말에 주목하면 됩니다. 무조건적 사랑은 우리가 신의 불꽃에 심지를 빌려줄 때 가능할 것입니다. 신적 사랑은 우주의 에너지 내지 태양빛과 같아서 수용자의 상태를 가리지 않고 그냥 방사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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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