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공부의 골자

목운 2021. 1. 6. 19:32

“삶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생각을 바꾸십시오. 그 생각에서 나오는 말을 바꾸십시오. 그 생각에서 나오는 행동을 바꾸십시오.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것이 여러분의 모든 경험, 즉 질병과 궁핍과 불행과 절망을 만들어냅니다.” (145쪽)

이 말씀 앞에 나오는 문답이 가리키는 바가 의미심장합니다. 즉 선과 악의 이분법을 벗어나고 신의 심판이란 것은 없다고 하면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자신을 돌보고 욕망과 이기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가 심판하는 신과 그 신이 행하는 상선벌악을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연중에 마치 인간에게 아부하는 식으로 신을 숭배하는 잠재의식이 생길 수 있으며 그 신의 일을 대행하는 종단의 존재를 합리화하기 좋습니다.

상선벌악에 대해서 동양은 일찍이 신을 상정하지 않고 카르마의 법칙을 말했습니다. 카르마의 법칙은 모든 행업에 따른 결과를 스스로 짓기 때문에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사사로운 욕망을 비롯한 이기적인 생각을 발생 단계에서 살펴 아예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이미 발생한 욕망을 살펴(已發察識) 마음의 본성을 지키라(未發函養)는 가르침입니다.

‘편지’는 기본적으로 동아시아 사상과 맥을 같이합니다. 아니 그리스도는 진리의 화현이었기에 동아시아에서 진리라고 생각하고 실천한 것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고통의 원인으로 무지와 아집이 근본적이고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개인적 이득을 지키고 차지하려는 욕망에서 나오는 모든 이기적 생각과 말과 행동‘을 제거하라고 합니다(143쪽). 이 점은 바로 바이블에서 강조되는 바의 “자기를 버리는(마태 16:24)” 일입니다.

이 일은 소아(小我, self)를 다루는 일이고 소아를 다루는 데 달인이 됨으로써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봅니다. 이 길은 어려운 길이고 평생이 걸리는 일이라는 것도 ‘편지’의 입장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중국 불교, 즉 선불교를 유학 안에 녹여낸 이고 선생이 파악한 멸정복성(滅情復性)의 메시지와 완전히 같습니다. 이후 주렴계와 주희를 거친 신유학의 노력도 요약하자면 사사로운 욕망에서 나오는 생각과 말과 행동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모아집니다.

소아를 다루는 일에서 두 축이 명상과 독서이기 때문에 주희는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를 말했고 서양 신비주의도 결코 신비한 무엇에 의지하지 않고 명상(contemplation)과 독서(Lectio Divina)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자연히 우주의 근본원리, 창조의 법칙를 내용으로 하는 우주론과,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심성론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편지‘도 바로 이러한 가르침을 현대 과학에서 발견한 사실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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