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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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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에 해당되는 글 4

  1. 2016.04.08 3절-2
  2. 2016.04.05 3절-1 중용 삼강령과 그 해석
  3. 2016.03.24 복성서와 성(誠)
  4. 2016.01.13 2절-2
2016.04.08 17:27 복성서

옛날에 중용을 해석한 것과 선생님이 말한 것이 같지 않은데 그것은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상식과 드러난 바에 따라 해석했지만 나는 마음으로 깨치고 경전에 통한 뜻을 말합니다.” “그들도 마음으로 깨친 바가 아닙니까?” “그것은 모릅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루를 닦으면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 “10년 놀린 밭을 하루 갈았다고 싹이 나길 바랄 수 있습니까? 그것은 맹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치 물 한잔으로 한 수레 땔나무에 붙은 불을 끄려는 것과 같으니 커다란 망상입니다. 생각을 끊기를 쉬지 않으면 진실해지고, 진실하기를 그치지 않으면 자명해지고, 진실투명하고 진리에 자명해지면 마침내 어긋나지 않으니 결국 도달할 것입니다. 급하여 구차한 때라도 놓치지 않고 넘어져 엎어질 때라도 놓치지 않으면 어느때 불현듯 성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問曰. 昔之註解中庸者 與生之言, 皆不同, 何也. 曰. 彼以事解者也, 我以心通者也. 曰. 彼亦通於心乎. 曰. 吾不知也. 曰. 如生之言, 修之一日, 則可以至於聖人乎. 曰. 十年擾之, 一日止之, 而求至焉, 是孟子所謂以杯水而救一車薪之火也. 甚哉, 止而不息必誠, 誠而不息必明, 明與誠終歲不違, 則能終身矣. 造次必於是, 顚沛必於是, 則可以希於至矣.) 


그래서 중용에 말하길 지극한 온전함에는 쉼이 없고 쉼이 없으면 오래 가고 오래 가니 효과가 나타나며 효과가 나타나니 끝이 없고 끝이 없으니 넓고 깊으며 넓고 깊으니 높고 밝습니다. 넓고 깊으니 만물이 담기고 높고 밝으니 만물을 덮고 끝이 없으니 만사가 이뤄집니다. 넓고 깊음은 땅에 어울리고 높고 밝음은 하늘에 어울리며 끝이 없음은 말 그대로 영원함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것은 나타내려 하지 않아도 절로 나타나며 움직이지 않아도 변화하며 행하지 않아도 이뤄지니 지극한 진리는 이렇게 한마디로 할 수 있습니다.“ (故中庸曰. 至誠, 無息, 不息則久, 久則徵, 徵則悠遠, 悠遠則博厚, 博厚則高明. 博厚, 所以載物也, 高明, 所以覆物也, 悠久, 所以成物也. 博厚, 配地, 高明, 配天, 悠久, 無疆. 如此者, 不見而章, 不動而變, 無爲而成. 天地之道, 可一言而盡之也.)


자습노트)

중용 26장의 해석입니다. 안회의 예에서도 거론되었지만 깨어 있음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않도록 쉬지 않고 닦을 때 어느때 일순간 깨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미 주자의 해석에 지극한 온전함(至誠)은 헛되고 거짓됨이 없음(無虛假)이라 하고 있어서 제가 취한 바 성(誠)의 번역을 온전함(integrity)으로 한 것에 부합합니다. 지극한 온전함은 일이 닥치기(格物) 전에 생각이 끊어진 자리(탄허스님은 이것이 中이라 하십니다.)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끊어짐이 없습니다(自無間斷). 


당연히 거기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 상태에서 일이 생기면 진리에 맞게 처리하고 다시 그 상태로 사는 것, 이것이 경(敬)의 실천이라고 봅니다. 남명 선생이 경의 실천을 위해 항상 깨어 있고자 방울을 달고 사신 뜻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언제나 참나로 깨어 있기 위해 조선 선비들은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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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4.05 06:17 복성서

"청하건대 중용을 해설해 주십시오." "앞에서 대략 말했지 않습니까?" "아직 명료하지 않습니다. 감히 여쭙건대 하늘의 뜻이 참나라 하는 게 무슨 뜻입니까?" "사람이 날 때 아이와 같이 고요한 품성이 참나입니다. 참나란 하늘의 뜻입니다." "참나를 따르는 게 도라고 하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따른다는 것은 순명한다는 것입니다. 근원을 따르고 참나로 돌아가는 것이 도입니다. 도란 참되고 온전한 것이며 온전한 그대로가 하늘의 도입니다. 온전함이란 고요하여 시끄럽지 않은 것입니다." (曰. 生爲我說中庸. 曰. 不出乎前矣. 曰. 我未明也. 敢問. 何謂天命之謂性. 曰. 人生而靜天之性也, 性者天之命也. 率性之謂道何謂也. 曰. 率, 循也, 循其源而反其性者, 道也. 道也者至誠也, 至誠者天之道也. 誠者, 定也, 不動也.)


"도를 닦는 게 가르침을 펴는 것이란 무슨 뜻입니까?" "온전치 못한 것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 사람의 도이며, 온전치 못한 것을 온전하게 한다는 것은 고요한 가운데 자명한 것을 택하여 굳게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도를 닦아 그 뿌리로 돌아가는 게 밝음입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이렇게 얻은 도를 세상에 펴는 것입니다. 안회가 그 모범입니다. 도란 떠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잠시라도 떠날 수 있다면 도가 아닙니다." (修道之謂敎何謂也. 曰. 誠之者人之道也. 誠之者, 擇善而固執之者也, 修是道而歸其本者明也. 敎也者 則可以敎天下矣, 顔子其人也.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說者曰.) 


"또 그 마음이 잠시라도 움직이면 안 된다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움직이면 멀어지므로 도가 아닙니다. 한없이 변하는 것은 애초에 시끄러운 데서 떠나지 않은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군자는 보지 못하는 것을 삼가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숨은 것보다 잘 보이는 게 없고 하찮은 것보다 잘 드러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하고 조심하는 것입니다. (其心不可須臾動焉故也. 動則遠矣, 非道也. 變化無方, 未始離於不動故也. 是故, 君子, 戒愼乎其所不覩, 恐懼乎其所不聞. 莫見乎隱, 莫顯乎微. 故君子愼其獨也.)


볼 수 없는 것이 가장 밝게 드러나는 것이고 듣지 못하는 말이 가장 넓게 퍼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번 움직이는 것이 바로 볼 수 없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는 것이니 참나로 돌아가는 일은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군자는 혼자 있을 때 삼가하며 혼자 있을 때 삼가는 것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說者曰. 不覩之覩, 見莫大焉, 不聞之聞, 聞莫大焉. 其心一動, 是不覩之覩, 不聞之聞也, 其復之也, 遠矣. 故君子愼其獨, 愼其獨者守其中也.)


자습노트)

중용 삼강령인 참나(性), 도리(道), 가르침(敎)에 대한 해설입니다. 핵심 비결인 온전하고 진실함(誠)을 지키는 게 도를 닦는 것이며 온전하고 진실한 상태는 아이의 마음에서 찾을 수 있고 그 닦음의 모범은 안회에게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게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주일무적(主一無適)이며 정일(精一)인데 그래서 명상이 필수적입니다. 


우리 민족의 책상다리는 바로 이러한 전통에서 기원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컨대 언제나 참나에 깨어 있는 주일무적 상태에 있다가 일이 생기면 자명한 원리에 따라 처리하고 다시 무념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닦음의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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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TAG 중용
2016.03.24 07:39 단상
복성서는 공자님 제자 가운데 최고로 꼽는 안회의 심학을 상세히 기술한 책이라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 맹자와 대학, 중용을 계속 거론하는데 안회의 요절로 심학의 방법은 사실상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이고가 마침 불교의 방법으로 깨쳤기 때문에 방법론을 불교에서 차용했습니다.

그 가운데 제가 붙든 핵심어가 성(誠)인데 계속 검색하다 보니 역경에 이미 풀이가 상세히 되어 있다는 것을 오늘 발견했습니다. 한양대 명예교수이신 '들말'이란 분의 블로그를 얻어만났는데 역경의 풀이가 있습니다. 매우 값진 글이라 판단해서 퍼다가 공유코자 합니다.

"세상을 속일 수는 있지만 자신이 자신을 속일 수 없는 것이 인간이므로 성인(聖人)이 베풀어준(設) 괘(卦)는 인간을 ‘무자기(無自欺)’의 순간으로 이끌어간다. 여기서 ‘진정위(盡情僞)’는 곧 ‘성기의자(誠其意者)’로 이어짐을 알아챌 수 있다. 자신의(其) 속내를(意) 거짓 없게 하는(誠) 사람(者)이라야 ‘무자기(毋自欺)한 자기’를 마주한다는 말이다. 성기의자(誠其意者)는 곧 자신을(自) 속임이(欺) 없는(毋) 사람이다. (들말 님 블로그 2010년 12월 26일)"

통속적으로 사용하는 '성의(誠意)가 있다', '성실하다'는 말의 깊은 뜻을 비로소 알 수 있으며 요즈음 서양 영성에서는 모든 의식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모든 것은 우주에 영원히 기록되기 때문에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의미에서 '성의(integrity)'를 의식의 온전성으로 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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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1.13 11:47 복성서

주역(乾卦 文言傳)에 이르기를 "무릇 성인은 그 덕이 천지에 부합하고, 그 밝음이 해와 달과 같으며, 그 질서는 사계가 바뀌듯 하고 길흉의 징조를 통찰하는 데는 신령과 같으니 하늘보다 앞서 가도 하늘에 어긋남이 없고 하늘을 뒤따르면 그 뜻을 받드니 어떤 사람이나 신령이 그의 뜻을 어길 수 있으랴? 그 모두가 몸 밖에서 얻는 게 아니고 참나가 모두 드러나 발휘된 것일 뿐입니다." (易曰, 夫聖人者, 與天地合其德, 日月合其明, 四時合其序, 鬼神合其吉凶. 先天而天不違, 後天而奉天時. 天且弗違, 而況於人乎, 況於鬼神乎, 此非自外得者也. 能盡其性而已矣.)


자사가 말하길 "오직 하늘과 땅에 숨김이 없을 때 그 참나가 모두 발현하는 것이니 참나가 모두 발현하면 다른 이의 참나가 발현할 것이고 다른 이의 참나가 발현하면 사물의 본성이 발휘되고 사물의 본성이 발휘되면 세상의 생존을 돕는 것입니다. 세상의 생존을 도움으로써 천지와 창조 작업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子思曰, 惟天下至誠, 爲能盡其性, 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能盡人之性則能盡物之性, 能盡物之 性, 則可以贊天地之化育, 可以贊天地之化育, 則可以與天地參矣. )


그 다음에 빈틈없이 드러내야 합니다. 빈틈없이 드러내면 사사로움이 없게 됩니다. 사사로움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그대로 드러나니 투명하고 투명하니 통하게 되고 그 결과 변화가 이뤄집니다. 그러니 빈틈없이 드러내고 사사로움이 없어야만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其次, 致曲, 曲能有誠, 誠則形, 形則著, 著則明, 明則動, 動則變, 變則化, 唯天下至誠 爲能化.)


자습노트)

주역과 중용에서 묘사한 성인에 대한 해설입니다. 저는 호킨스 박사의 가르침에 비추어 읽었습니다. 즉 주역에서 핵심이 되는 문구는 '성인의 무한한 능력이란 어떤 목표를 향해 열심히 노력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사로움이 전혀 없을 때(즉 誠이 이뤄질 때) 참나가 드러나서 참나가 주도적으로 행함으로써 이뤄지는 것(此非自外得者也, 能盡其性而矣)'이라고 봅니다.


이어지는 중용 22장과 23장 자사의 언급도, 곡(曲)을 빈틈없이 정직한 것, 성(誠)을 사사로움이 없이 겉과 속이 다 드러나는 것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형(形)과 더불어 같은 경지를 다른 각도에서 기술한 것으로 알아들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60년 가까운 삶에서 가장 크게 반성한 것이기도 합니다. 


즉 의식에서 사사로움이나 비밀이 전혀 없어도 괜찮을 정도로 살자고 결심한 적이 있는데 그러한 것과 일치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럴 때 다른 아무 노력을 하지 않고 의식을 깨끗하고 온전하게 가져가려는 노력이 바로 영적 수행 내지 수양의 시작이자 전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호킨스 박사는 영적 수행을 제대로 하는 것만이 세상에 제대로 기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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