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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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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에 해당되는 글 3

  1. 2016.05.03 유교의 성인
  2. 2016.03.16 성인과 수기치인
  3. 2016.02.26 복성서와 탄허록
2016.05.03 06:13 단상
어제는 친구들 만날 시간이 멀어 서점에서 책을 보다가 이종톈(易中天)이란 사람이 공자님에 대해 쓴 걸 읽었습니다. 제자들은 물론 한참 후 맹자에 의해 성인으로 간주되셨는데 당신께선 '난 특별한 인간이 아니다. 범인과 같다'고 하셨답니다. 직전에 소개한 체르노빌의 영웅들도 자신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고 거론했습니다.

주희 이전에 이미 대학과 중용에 집중하고 주역으로 보충해가며 유교의 핵심진리를 상술한 복성서를 보면 성(性)과 정(情)을 대승기신론의 진여문과 생멸문으로 보고 결국 진여문 또는 참나에 해당하는 성(性)을 최대한 발현한 사람이 성인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유교 텍스트의 성(誠)을 완벽히 구현함에 길이 있고 이 성의 요체는 신기독(慎其獨)인데 신기독이란 수기중(守其中)에 있다고 보는 겁니다.

수기중에서 중이란 탄허스님에 따르면 생각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생각이 끊어진 자리란 공적영지 또는 상락아정을 말하며 성리학에서는 경(敬) 또는 주일무적(主一無適)의 몰입상태를 말합니다. 그 상태에서 얻어진 지혜와 실천방안을 강구하고 부단히 실천합니다. 9세기에 복성서를 지은 이고나 12세기에 성리학의 체계화와 종합을 이룬 주희나 모두 불교에서 개종한 사람임을 감안하면 이해가 빠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오히려 유교에서 불교로 개종하신, 멀리는 함허스님과 가까이는 탄허스님이 유명하지만 동아시아 지성인이라면 한문 텍스트에 심취할 수밖에 없고 결국 선불교와 도교, 유교의 통섭을 구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주마간산으로 읽은 이종톈은 최근 중국에서 스타강사(?)가 되어 거부를 얻었다고 하는데 제가 볼 때는 문화 패권을 추구하는 국가이익에 복무하는 듯합니다. 즉 이고, 주희는 물론 우리 선조들이 추구한 심학의 깊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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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3.16 06:38 단상
주마간산 유교(유학)에 대해 공부하는데 참으로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이 기독교의 껍데기만 붙들고 살아서 세상이 시끄럽듯이 조선 말기와 왜정을 거치면서 유교의 근본정신은 끊어지고 제사행위등 껍데기만으로 살아왔기에 더 그렇게 느끼는지 모릅니다.

어쨌든 유교는 맹자 이전과 이후로 크게 갈립니다. 즉 맹자 이후 적자지심(赤子之心)으로 사는 이를 성인으로 보며 성인은 범인과 구분이 없고, 거기에 이르는 비결은 정(情)을 제압하여 성(性)으로 사는 데 있습니다. '유교넷'에 따르면 이 비결을 집대성한 이가 이고(復性書), 주돈이(太極圖說), 주희(性理大全)입니다.

그런데 노자와 예수께서도 적자지심을 중요하게 보셨습니다. 생각해보면 갓난아이에게는 '나'라는 게 없으며 5~6세 아이치고 신동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그들을 견디기 힘들어 적응이란 이름으로 훈련시킬 때 적자지심을 잃어버리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으로 정을 다스리고 세상의 언어로 말하며 세상 일을 완벽히 경영하는 게 수기치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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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
2016.02.26 14:54 단상

제가 복성서와 탄허록에 집중하는 이유는 복성서를 지은 이고는 불교로 깨달음을 얻고 유교를 재해석하여 유교와 불교가 다름이 없음을 말하였고 탄허스님은 유학에 먼저 입문하셨다가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어 유교와 불교가 같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탄허스님은 여말선초를 사신 함허스님과 같은 행로를 가셨는데 어쨌든 사실상 복성서와 탄허록은 똑같은 수행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단 탄허스님을 인용하면 '성(性)이란 칠정이 일어나기 전의 면목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로서 불교의 4덕, 즉 상락아정(常樂我淨)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유교의 인의예지와 같다(탄허록 181쪽)'고 하십니다. 또 그 자리는 선악이나 시비분별이 없어서 대학의 지선(至善)과 같다고 하십니다. 또 덧붙이시기를 불교에서는 허령불매한 자리라고 하시는데 지눌스님의 공적영지와 같다고 봅니다.

성의 자리를 유교에서는 중이라고도 하며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자리이고 따라서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을 말하며 천하의 근본 또는 우주의 핵심체입니다(탄허록 187쪽). '서경'은 도심(道心, 人心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참나에 해당)이 미약하므로 오직 도심에 집중(惟精惟一 允執厥中)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언제나 참나를 의식하며 에고를 부려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보면 요컨대 두 종교에 공통하는 바는 명상을 통하여 생각이 끊어진 참나 자리에서 세상 일을 경영하고 향유하자는 것입니다. 즉 안회는 심재(心齋)를 통해 무아를 깨치고 좌망(坐忘)을 통해 이원성을 초극하여 무한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대목은 '장자'에 기록되어 있으니 결국 유교가 불교는 물론 도교와도 상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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