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논설과 메시지

편지 기록자 인터뷰 1

목운 2023. 7. 18. 06:36

문:
당신이 그리스도를 만나게끔 이끌어온 이전의 삶에 대해 말해주실 수 있나요?

답:
나는 1919년에 영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92살이지요.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1차 세계대전 때 뛰어난 봉사로 M.C.&Bar 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는 식민지청의 특별 평화 판사로 임명되었지만 3개월 복무하고는 그만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나는 태어난 지 겨우 10개월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짧은 복무기간 때문에 연금이 삭감되는 바람에 어머니와 나는 궁핍하게 살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여섯 살 때 어머니는 나를 남 데본South Devon에 있는 아주 멋진 수도원에 보내주셨습니다. 나는 어머니께서 간절히 기도하신 덕분에 식민지청이 나의 기숙사학교 학비를 전액 대주었다고 믿습니다.

스무 살이 되던 해에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그 기간에 나는 NAAFI의 메니저, 비서, 청소년 클럽의 지도자 등의 여러 가지 일을 했고, 나중에는 연설과 드라마 교사 자격을 얻었습니다.

나는 전쟁에 직접 연루되지 않도록 보호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길게 이야기해야 할 한 가지 경험이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이 패퇴하고 히틀러가 영국을 공격하기로 한 1940년에 던커크에 끔찍한 재앙이 덮쳤습니다. 히틀러는 먼저 주요도시를 초토화해서 전국을 마비시킴으로써 영국을 제압할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중 한 도시에서 20마일쯤 떨어진 소읍에서 살았는데 그 도시는 포격과 낙하산 투하폭탄과 방화 공격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아홉시쯤 공습경보가 들려서 어머니와 나는 골방에 밀어 넣은 묵직한 마호가니 테이블 밑에 들어가서 두꺼운 담요를 뒤집어썼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면 집에 폭탄이 날아오더라도 보호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요.

우리는 이미 자잘한 폭격기 공습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독일 비행기가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집 상공을 하도 낮게 선회해서 철십자 마크와 조종사가 또렷이 보일 정도였습니다. 폭격으로 피해도 많이 입었습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소설의 여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겁에 질렸습니다.

이날 밤에 나는 무릎 위에 성경을 얹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것을 읽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어쩔 줄을 모르고 떨며 기도를 반복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그들이 폭탄을 떨어뜨리지 말게 해주세요.” 그 때 갑자기 깊고도 부드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관통해 들려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의 기도는 정말 어리석구나. 독일에서 온 네 머리 위의 ‘아이들’은 너희 나라에 폭탄을 떨어뜨리기를 맹세했다. 그러니 그들은 너희네 ‘아이들’이 독일에 폭탄을 떨어뜨리기로 맹세한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폭탄을 떨어뜨릴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그들이 폭탄을 떨어뜨릴 때, 아무런 해가 미치지 않도록 공터에 떨어뜨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거라.”

모든 떨림이 그 자리에서 멈추고, 나는 들은 대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그 지역에는 폭탄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그 후 15개월 동안 세 번의 작은 폭격이 있었는데 아마도 그 아이들은 자신이 지시받은 목표지점이 너무 위험한 곳이라서 우리의 작은 마을에다 떨어뜨리고 간 것 같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마을 언저리의 작은 경주 트랙에 떨어진 첫 번째 포격은 불을 일으켰습니다. 두 번째 공습은 주택단지를 목표로 한 것 같지만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주도로를 겨냥했던 낙하산 폭탄은 깊은 연못 속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세 번째 공습은 읍의 경계지역 농지에다 두 개의 큰 폭탄을 떨어뜨렸습니다.

나중에 나는 ‘아이들’이란 말이 영국 전투에 참전한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인 것을 알게 됐습니다. 폭격기에 탄 많은 군인들이 학교를 갓 나와서 바로 폭격기에 탑승하여 온갖 역할을 맡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습니다. 나이가 들어 그리스도의 인도 하에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 메시지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독일이든 영국이든 ‘아이들’에게 어떤 비난의 뜻도 담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동등하게 지칭되었고 그 메시지는 특히 그 ‘아이들’이 단지 자신의 나라에 충성하기 위해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일 뿐임을 나에게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들이 하고 있는 일에 아무런 비난도 가해지지 않는 느낌이었지요. 물론 거기에는 원한이나 분노 같은 인간적인 감정의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단지 ‘일어나야 할 일’을 받아들이라는 다둑거림과, 아무에게도 해가 되지 않을 문제의 해결책을 위해 기도하면 나의 기도는 응답을 받을 것이니 그것을 알고 안심하라는 뜻만 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실제로 그랬습니다.

내 어머니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관절염을 심하게 앓고 있었는데 전쟁이 끝나자 남아프리카로 이민을 갈 계획을 하던 그녀의 의사가 어머니에게도 같이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따라갔습니다.

나는 남아프리카라는 나라와 그곳의 사람들에게 푹 빠져버렸습니다. 나는 케이프에 정착하여 아주 수준 높은 영국인학교에서 연설과 연극을 가르쳤습니다. 1년 후에는 오브리와 깊이 사랑에 빠져서 결혼했습니다. 아이를 셋 낳았을 때 오브리가 궤양에 걸렸습니다. 그는 일찍 퇴직해야 했고 작은 연금으로 농장을 샀습니다.

6개월이 지나자 우리는 심각한 재정난에 빠졌습니다. 농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문제가 일어나서 삐걱거렸습니다. 이제 우리의 불쌍한 남편은 궤양뿐만 아니라 신경쇠약에까지 걸려서 충격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농장을 시작한지 3년 만에 그는 돈 걱정에 시달리다 못해 로데시아에 가서 취직을 하기로 했습니다. 나는 아무런 경험도 없었지만 농장을 떠맡아야 했지요. 오브리가 떠나자 여섯 살 이하인 아이들이 모두 홍역에 걸렸습니다. 우리의 농장은 홍수가 나서 강물이 불면 이웃으로부터 고립이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바로 이처럼 어려운 형편에 내가 농장을 맡아 운영해야 하게 된 상황이 나를 그리스도를 만나게끔 곧바로 이끌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남편을 로데시아행 기차에 바래다주고 농장으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수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의 65마리의 소에게서 왜 젖이 그토록 적게 나오는지를 조사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소를 검사해보고 놀랐습니다. 오직 한 마리의 암소만이 새끼를 배었고 나머지는 황소를 찾아 울타리를 뛰어넘었어야 할 지경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에반스 박사는 우리의 수소가 다른 암소들과 함께 럼피스킨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려서 생식능력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이 병에 걸리면 암소들이 새끼를 밸 가능성이 희박했습니다. 이웃 농장주의 친절한 도움으로 나는 아주 뛰어난 저지 황소를 금방 구할 수 있었습니다.

열 달 동안 혼자서 농장을 도맡아서 운영하자 나는 이 농장을 제대로 운영해야겠다는 오기가 생겼고, 내 안의 농심이 나를 잘 인도해주었습니다. 나는 또 운 좋게도 장미십자회원이 쓴 작은 책자인 <환경을 의식적으로 창조하기>를 읽고 얼마나 좋았는지를 말해준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 책은 ‘생각이 강력한 창조의 힘’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서 나의 생각들을 살펴보기 시작하게 했고, 특히 나는 날마다 열네 명의 아프리카 출신 일꾼들을 다뤄내고 도마도와 호박을 심고 젖소들을 돌보는 일을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해는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린 행복한 해였지만, 그것이 우리의 결혼생활을 피폐해지게 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남편을 매우 사랑했지만 농장을 제대로 운영할 그의 능력에 대해서는 불가피하게도 존경심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는 그 해 말에 돌아와서 읍내에서 일자리를 얻고는 다시 농장을 맡아 운영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배운 것이 많으므로 내가 하는 편이 낫겠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자연히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마음 때문에 집안의 분위기가 아주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생각이 매우 부정적으로 변해 있었고 나는 그에게 말할 때 성질이 급해졌습니다. 그 직접적인 결과로 우리는 우박 피해와 같은 불운을 몇 차례 맞고 다시 빚더미에 빠졌습니다.

내가 절망의 밑바닥을 치는 날이 왔습니다. 새끼를 밴 뉴저지 종의 어린 암소가 심하게 다쳐서 일꾼들 먹일 고기가 되어버렸고, 하루치의 우유가 공장으로 배달되는 도중에 쉬어버린 데다가, 흠 없이 완벽한 100상자의 도마도가 시장에서 물량과다로 인해 팔리지 못하고 반송되어 왔습니다. 그들의 구매가격은 포장상자 비용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주저앉아 울면서 예수님께 신약성경에서 위안이 될 만한 글을 점지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을 열자 가장 검은 잉크로 인쇄된 것처럼 보이는 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글의 내용을 자세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대충 이런 뜻이었습니다: ‘네가 무심히 뱉은 모든 말들에 책임을 묻게 되리라.’ 나는 우리의 생각과 말이 경험을 창조한다는 그 장미십자회 책의 가르침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니, 나는 즉석에서 그 글을 교회의 징벌의 가르침에 따라 해석하고는 분노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었고 우리가 다툴 때 내가 남편에 대해 좋지 못한 생각과 말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가장 힘들 때 치밀었던 분노에 대해 심판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성경을 집어던져 버렸습니다. 한 여자가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밤낮으로 애쓰고 있는데 사랑에 찬 하나님이 그 따위 선언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내 생각 속에서 예수와 나의 종교를 폐기처분 해버렸습니다. 나는 불가지론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식물과 가축과 인간의 생명 속에서 작용하는 놀라운 지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제1 원인자가 있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의 본성은 무엇일까요? 그래서 나는 농장의 비탈을 걸으면서 하늘을 올려다봤습니다. 응답을 빌면서 기도했습니다. “제1 원인자가 계시다면 제발 당신의 본성을 제게 보여주십시오.” 독일의 루터파 목사와 그의 아내 카를과 우르슐라가 찾아와서 도덕재무장 운동에 대해 이야기해줄 때까지 1년 동안 아무런 응답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 그룹이 유럽에서 벌인 놀라운 일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을 경청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명상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나의 모든 필요와 전문적인 인도를 신께 기대어 요청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나는 명상을 했지만 그들의 신에 대한 믿음이 없었으므로 침묵을 지켰습니다. 내가 명상을 하는 것이 올바른 일임을 실감하게 하는 많은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남편을 용서하고 그에 대한 애초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갑자기 제1 원인자의 본성을 알고자 하는 필사적인 갈구를 느꼈습니다. 나는 펑펑 울면서 진실을 듣고자 애원했습니다. 성경을 다시 볼까요, 하고 나는 물었습니다. 한 목소리가 응답하여 혼자 정원에 조용히 앉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응답을 듣게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펜과 책을 가지고 시키는 대로 앉았습니다. 앉자마자 가르침이 시작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말은 에너지체, 곧 우리의 삶속에서 존재를 띠는 말씀WORD이라고 했습니다. 둘째로, 우리가 자연과 인간에게서 목격하는 모든 부모의 사랑은 우리 안의 신의 사랑이 직접적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셋째로, 신은 개인이 아니라 별들과 은하계와 창조계 전체에 보편적으로 영원히 임재하는 무한한 권능이라고 했습니다. 이 깨달음 직후에 남편이 저를 봤는데 그는 내 안의 빛을 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 달이 지난 후에 숨이 멎을 정도로 놀라운 깨달음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나는 창조계 배후의 신성한 권능인 제1 원인자가 나와 만물의 내부에 분명히 존재함을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이 총체적이고 절대적인 깨달음은 내게 삶을 완전히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을 선사했습니다. 무한한 지성/사랑인 하나님이 내 안에 있다면 나는 신성의 도움을 받아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자신을 더 이상 희생자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공동창조자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온전히 깨달음을 얻으면 그들은 더 이상 지식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진실을 보았음을 절대적으로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그런 사람은 믿음의 자리로부터 확신과 전적인 자신감으로 옮겨갑니다. 그들은 [압니다].

이 체험 이후, 내 삶은 급변했습니다. 나는 70 마일 떨어진 마을로 가서 사업을 시작하도록 인도받았습니다. 남편은 우리를 위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로데시아로 갔다가 실패했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해야 했습니다. 이제 나의 차례가 된 것이지요.

이것은 1961년의 일이었습니다. 나는 144파운드를 가지고 분명한 인도를 받은 인사자문 사업을 개시했습니다. 나는 호텔비와 사무실과 가구와 전화와 광고비 등등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나는 5년 동안 놀랍기 그지없는 기적 - 혹은 동시성 현상 - 들이 줄을 잇는 짜릿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 기간 동안 줄곧 무한한 지성인 ‘하나님’과 동행했고, 나의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인도를 [그것]에 온전히 맡겼습니다. 나는 세 자녀를 사무실 겸 숙소로 데려와서 기숙사 학교에 보냈고, 분명한 인도를 따르기만 하면 학비와 옷과 기타 모든 것을 위한 돈은 절로 해결되었습니다.  

남편은 아이들의 부양을 위해 아무 것도 보탤 수가 없다고 말했었습니다. 그 때 오후에 다니던 연설과 드라마를 위한 대형 스튜디오가 나에게 맡겨지면서 내가 이 엄청난 책임을 떠맡을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나는 큰 문제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그 사연은 너무나 길어서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나는 또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신용조사소 일도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그랬듯이 나는 인도를 요청했고, 세 번이나 아침에 깨어나면서 그것을 포기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일은 나에게 꼭 필요한 수입의 대부분을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포기하라는 뜻이 너무나 강력하여 나는 마침내 그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남는 시간에 모종의 영적 작업을 해야 한다는 강한 느낌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인도를 거듭 요청해도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습니다. 처음으로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 고립감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유난히 깊은 실의에 빠져서 필사적인 심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울던 중에 갑자기 예수께 도움을 청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그것은 내가 불가지론자가 되게 했던 농장 사건 이후로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 나는 다시 필사적인 마음이 되어서 말했습니다. 예수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리라! 나는 이렇게 울부짖었습니다:

“예수님, 나의 기도에 당신의 말씀의 권능을 빌려주소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 수 있도록!”

그러자 즉석에서 나는 그의 임재를 느꼈습니다.

문:
그것이 그리스도의 음성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습니까?

답:
나는 압도되어 겁에 질렸습니다. 내가 망상에 빠졌나?

예수는 자신이 정말로 나와 함께 있음을 증명할 방법으로서 성경의 한 구절을 펼쳐보게 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20절이었지요.

이제 나의 마음은 더욱 혼란해졌습니다.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만약 그 구절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내용이라면 나는 내가 백일몽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는 여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텐데. 지난 5년간 일어난 일들이 내 마음에 각인해놓은 강한 믿음도 이젠 힘을 잃게 될 텐데. 나는 하나님의 축복과 도우심을 맹목적으로 믿어왔었습니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망상인지 헷갈렸습니다.

내 서가에는 손대지 않은 성경이 아직도 꽂혀 있었습니다. 나는 그것을 꺼내어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그 구절을 찾았습니다.

요한복음 16장을 찾아 20절을 읽었습니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는 울며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그래 맞아, 하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나는 정말 이전에 받았던 인도를 못 받는 것을 슬퍼하며 울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것이 예수님이 정말 나와 함께한다는 증거가 된다면 나의 슬픔은 환희로 바뀔 것이었습니다.

21.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 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22. 이와 같이 지금은 너희도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를 만나게 될 때는 너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슬퍼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방안에 나와 함께 있음이 분명하다면 그 기쁨은 누구도 앗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23. 그날이 오면 너희는 나에게 구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가 아버지께 구하면 그가 내 이름으로 그것을 주실 것이다.

얼마나 맞는 말인가! 내가 예수님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나는 1959년의 그 사건 이후로 그에게 아무 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제1 원인자)께는 여전히 간구했고, 마침내 나의 요구는 분명히 주어졌습니다. - 나는 1961년에 깨달음을 얻었지요.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해 본 적이 없다. 구하라. 받을 것이다. 너희는 기쁨에 넘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여기 예수님께서 방안에 나와 함께 앉아계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구하면 받을 것이며 기쁨에 넘칠 것이라고 말하고 계셨습니다.

25. 내가 지금까지는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주었지만 이제 아버지에 관하여 비유를 쓰지 않고 명백히 일러줄 때가 올 것이다.

그리고 여기 멋진 약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에 대해 명백히 일러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제1원인자의 진정한 본성]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며 간구해왔습니다. 그런데 여기 예수님께서 아버지에 대해 명백히 일러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에게 그것은 제1 원인자의 진정한 본성에 관한 진실을 알려주리라는 뜻이었지요! 먼저 나는 깨달음을 얻었고, 내 영혼 속에서 아버지는 우주적 지성/사랑임을 알았습니다. 이제 나는 그 자세한 내용을 듣게 될 것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편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그리스도가 한 일이 정확히 바로 이것임을 인정할 것입니다.

26.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따로 아버지께 구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므로....

이것은 내가 아버지에 대한 진실을 이해하게 될 것이며 무엇이든 구할 수 있다는 절대적인 확신을 갖게 되리라는 말이 분명했습니다!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 여섯 구절은 모든 면에서 절대적으로 정확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임재와 장차 나에게 텔레파시로 말씀하시리라는 현실을 의심할 이유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성경구절을 다 읽었을 때 나는 경건해진 마음에 무릎을 꿇었지만 바로 앉도록 들어 올려지는 느낌을 느꼈습니다. 나는 교회의 교리가 완전히 잘못된 것임을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내가 어떤 일로 도울 수 있을지를 예수께 물었습니다. 그는 그날 저녁은 말하지 않으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열흘 후에 한 주말을 오로지 명상에만 바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전화선을 뽑고 아이들이 기숙사에서 나를 만나러 오지 않게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백색형제단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예수님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답했습니다. 나는 나에게 중요한 네 사람을 위한 메시지를 요청했는데 응답이 주어졌습니다. 강렬한 사랑이 나를 덮쳐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그날 저녁 예수께서 나와 함께하셨다는 최후의 증거였습니다. 주어진 모든 메시지는 절대적으로 정확했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그 특별한 주말이 되었을 때, 나는 지시받은 대로 준비하고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명상을 시작하여 밤 열시까지 계속했습니다. 마침내 나는 머리를 솜으로 틀어막은 듯한 느낌을 느꼈습니다. 이제 나의 마음이 고양된 생각들로 꽉 차서 평소의 세속적인 수준의 내 의식은 차단되어버렸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명상을 하자 나는 깊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어서 마음의 모든 작용이 가라앉고 의식은 높은 영적 차원으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지요.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깨어나서 침대 맡에 놔뒀던 커피를 타고는 다시 베개를 베고 누웠는데 그 즉시 나의 마음, 나의 의식은 급속히 상승하여 눈을 감자 아주 아주 창백한 푸른빛의 아름다운 세계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고, 그것은 황홀했습니다! 예수께서 내게 약속하셨던 환희가 바로 나의 것이 된 것입니다! 나는 열시까지 이 놀라운 상태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 때 아이들이 문을 두드려서 문을 열어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 조용히 자신의 일만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나의 작은 침실로 돌아가서 계속 명상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와의 연결감을 느끼고 내가 어떤 종류의 영적인 일을 해야 할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무료로 교신 코스를 시작한다고 선데이 타임즈에 광고하도록 지시받았습니다. 이것이 1966년이었는데 마침 신문에는 그것을 알릴 수 있는 개인들을 위한 멋진 칼럼이 있었습니다. 나는 무엇에 대해서 써야 할지를 물어봤습니다. 예수는 즉시 대답하여 문장을 주셨습니다: ‘천국이 눈앞에 있다.’ 그것이 1966년의 일이었는데 지금, 2011년까지도 그리스도의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동일합니다. 그의 편지에서 그는 우리가 되어야 할 사랑 넘치고 사려 깊은 존재가 되기 위해서, 그리고 천국의 높고 순수하고 사랑 넘치는 영적 의식상태에서 평온하고 환희롭게 살기 위해서 에고를 극복하는 방법을 정확히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문:
당신은 어떻게 기록자가 되도록 선택받았나요?

답:
제 삶에는 별자리와 학교교육과 성장과정의 기이한 인연들 같은, 내가 이 일을 하도록 태어나고 준비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조건과 상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저는 스물두 살이 될 때까지 남자 친구나 친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문:
당신에게 말해진 것을 어떻게 기록했습니까?

77살쯤 되었을 때, 저는 컴퓨터를 사서 사용법을 배워야겠다는 엄청난 요구를 느꼈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아들이 자기가 쓰던 컴퓨터를 나에게 주었고, 또 마침 한 여인이 워드프로세서 수업을 광고했습니다. 그리스도가 불러주는 말과 생각들을 타이프해서 입력해야 할 때가 왔을 때, 나는 내 컴퓨터를 잘 쓸 수 있게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2001년에 편지가 완성되었을 때, 나에게 웹사이트를 만들도록 설득하고 도와준 세 명의 고마운 여자들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대중에게 무료로 그의 편지를 전하게 한 말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습니다. 편지의 저작권을 보호하라는 독자들의 청원에 의해 그것은 5년 후에 책이 되어 나왔습니다. 나의 웹사이트(www.christsway.co.za)에다 편지를 출판하기 위한 비용을 기부해달라고 요청했는데 3주일 안에 충분한 돈이 들어와서 영어와 스페인어로 책을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2년 전에는 프랑스의 출판사 편집자가 연락하여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하도록 허락해달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출판권을 주었고, 그의 작업이 너무나 흡족해서 그에게 이 책이 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나올 수 있도록 소임을 맡게 했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그는 번역을 마치고 각국에서 책이 번역되도록 도왔습니다. 현재 이 책은 4개국어로 나와 있고 3개국어로 출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
당신은 왜 익명을 씁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저에게 익명으로 남아 있으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높은 영적 지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쓴 책들이 대중매체가 저자를 너무 집중조명하는 바람에 책 자체는 저자에 가려서 뒷전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편지가 널리 알려지고 자신이 저자로 인식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책도 그렇게 나와서 사람들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어판은 2년 만에 3쇄를 찍었습니다.

방금 한 친구로부터 이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내가 이 인터뷰에 잘 응답하도록 힘을 부추겨주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기시키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275쪽의 여섯 번째 편지 구절을 나의 모든 사랑과 함께 보냅니다: 이것은 여섯 번째 편지에서 그리스도께서 장차의 독자에게 전하는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가 성심을 다하여 이 여행에 나설 때 내가 모든 상황 속에서 너희 곁에 있을 것임을 알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면서 ‘신성한 실재’와 하나가 되고자 하는 너희의 추구에 힘과 후원을 보내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되는 것이야말로 나의 가장 간절한 소망이다.”

사람들이 명상을 하거나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을 때 그리스도의 임재를 느꼈다는 메시지를 무수히 보내옵니다. 이 약속은 참입니다.

뒷이야기로서, 나와 남편은 이혼했고, 그 후 그는 조용한 곳으로 물러나서 예수의 가르침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는 사랑 넘치고 사려 깊은 사랑스러운 남자로 놀랍게 변신했고, 3년 후 그가 죽기 전까지 우리는 마음과 가슴으로 깊고 진실하게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처음 제게 오셨을 때 네 사람을 위한 메시지를 요청했었지요. 오브리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예수님은 이렇게 응답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그를 보살피고 있다.” 과연 그는 놀라운 방법으로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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