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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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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2 18:46 실체,영성,현대인

도입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1485년에 처음 발간된 유명한 고전인 신학대전(지수 730)에서 이성과 신앙을 통합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위대한 저술은 신앙이 이성에 의해 강화되고 명료하게 되며 그 역도 성립한다는 명제를 확립한 것인데 이 명제는 수 세기에 걸쳐 받아들여졌다. 그렇게 함으로써 둘 간의 갈등은 해소된다. 그는 나아가 지극히 진실하고 고귀한 의미는 이성이 계시의 빛을 받을 때만이 이해될 수 있기 때문에 이성만으로는 불충분하다고 가르쳤다. 계시가 주관적 각성과 참된 영적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반면 이성은 단지 학자들의 학문적 대상과 관련된다. 그리하여 학문으로의 신학은 선형적 내용을 제공하지만 오직 계시만이 비선형적으로 필요한 맥락을 제공하여 이해를 돕는다.


오늘날 구도자의 신앙은 통합해야 하는 이성뿐 아니라 미디어의 영향과 더불어 과학 기술의 지배를 받는 세상을, 신앙과 연관시켜야 하는 과제도 필요하다. 게다가 정치색이 가해진 철학적 왜곡과 오류가 만연되어 골고루 퍼진 영향으로 논리와 이성이 손상을 입은 결과에 따르는 침투가 있는데 그 때문에 성실성과 진실의 표준이 훼손되어 이제 실상 거짓이, 신뢰성 및 진실성과 법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하여 워싱턴의 한 법정은 그 어떤 진술이든('언론 자유') 확인할 수 있는 실제 사실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명예훼손에 근거가 필요 없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공공연한 거짓말과 입증가능한 진실이 대등한 지위가 되었다(이 판결은 170으로 측정됨).


신앙이 역사적으로 기념비적 시기에 일상적으로 공격을 받아온 반면 이제 이성 자체가 바탕에서부터 훼손을 입어 사실상 실체 검증을 위한 인간 마음의 능력에 방해가 될 지경이다. 진실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악을 뒤집는 것은 유력한 학계(예 윤리적 도덕적 상대주의와 포스트 모던 해체주의)는 물론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이 뻔뻔하게 저지르는 바다.


감정으로 실체 바꿔치기

의식 척도에서 200 미만은 거짓과 부정적 감정을 가리킨다. 200 이상은 진실의 점진적 수준과 긍정적 감정을 표시한다. 400대에서 진실은 논리와 이성으로 드러나는데 논리와 이성은 당연히 감정보다 우위에 있다. 유아기는 감정의 지배를 받으며 철이 나야만 이성적 실체에 순종한다. 결국 이성적이고 실상에 맞을수록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 이성과 감정이 통합된 사람이다. 그때 부정적 감정은 거의 사라지고 긍정적 감정이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200 미만의 감정은 자기애적이며 동물성(소아)에 기원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감정은 종종 합리화와 변명거리가 되지만(‘인간이니까 뭘’ 하면서) 그 자체 칭찬받을 만한 게 아니다. 고삐풀린 정서는 유아적이며 공적 삶이나 신중한 대화에서는 부적절하다. 


성숙한 사람은 자기 감정에 대해 책임질 능력이 있는 것으로 당연히 기대된다. 200 미만에서 ‘감정’은 생활을 지배하며 무슨 행동이든 합리화하려는 구실이 된다. 따라서 200 이상과 미만짜리 집단 간에는 중대한 소통의 벽이 존재한다.


자기애는 감정을 고무하여 이성을 제약하는 기반이 되게 하며 그것을 타인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그래서 인구의 1%가 신을 거론하는 데 대해 '불편해' 하면 99%의 사람이 유신론자라는 사실은 당연히 무시당한다. 그리하여 소수의 정신병적 성향과 미성숙함 때문에 기괴한 다수결의 원칙이 생겨난다. 이러한 과정은 반대 시위의 98%의 뿌리이기도 한데 그런 시위에서 에고중심성은 비위를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는 '권리'로서 과대포장된다. 이어서 '권리'가 축구시합이나 파리 시내 폭동에서 드러난 것처럼 폭력, 폭동, 강도, 집단학살 및 파괴 등을 합리화한다. 자기애는 차별적 논쟁을 비롯해서 인종주의, 성차별, 종교차별 등으로 쉽사리 바뀌는 편파적인 고정관념이다. 


전통적 지침(1)

종교적(영적) 지혜에 따르면 부정적 에너지가 인류에게 악영향을 미쳐서 영적 진화를 저지하고 순수성과 진리를 공격했다고 한다. 이러한 에너지는 전통적으로 '악한 것', '사탄의 것', '악마적인 것' 또는 '저차원 아스트랄에 속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는데 그것은 '신을 부정하는' 차원에서 기원함을 뜻한다. 진실에 반하고 진실을 눌러서 거짓으로 바꿔치려는 세력은 고전적으로 '루시퍼적' 에너지(신을 교만하게 반박함)로 불렸다. 순수성과 사랑을 파괴하려는 그러한 에너지는 '사탄에 속하는 것'으로 일컬어졌다. 루시퍼적 에너지가 권력과 통제를 교만하게 추구하는 반면 사탄에 속하는 에너지는 성적 노예상태와 신성모독을 자극하고 가학증, 폭력, 부패, 전쟁, 파괴 등에 관여하도록 유혹한다. 이 두가지 에너지는 유혹을 이용하며 양의 털 속에 숨기 잘하는데 심지어 신의 권위를 주장할 때도 그러하다(유명한 살인범인 샘의 아들처럼 정신병 상태인 경우가 예외적인 일도 아님).


물론 이 두 세력은 오늘날 사회에서 생생히 볼 수 있고 전파되었으며 그 충격은 미디어에 의해 크게 확산되고 힘을 얻고 있다. 두 추세는 세계적 지도자와 카리스마 있는 연예인들에 의해서 더욱 매혹적인 게 되고 있다. 모든 파괴적 추세는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으로 인해 쉽게 속는 약점과 유혹에 잘 넘어가는 약점을 겨냥하고 있는데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에서 이러한 추세는 발생되며 스스로 강화된다.


종교 역사를 통해서 신을 궁극의 적으로 보고 그에 따라 종교적 진리를 끌어내려 신을 사탄의 이미지와 개념으로 재정의하려는 에너지의 침투를 발견할 수 있다. 니케아 공의회에 이은 기독교의 큰 추락(900을 넘는 수준에서 400대로 떨어짐)을 주목하시라. 그 추락에서 의미심장한 것은 예를 들면 신약(계시록을 제외하면 800으로 측정됨)에 계시록(지수 70)을 포함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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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목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