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소승과 대승, 그리고 조차전패

목운 2023. 3. 30. 07:59

멸정복성, 즉 에고를 극복하고 신성이 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우연히 지상 삶을 얻었으니 궁극의 진리를 깨달아 삶의 목적을 제대로 실현하고자 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하는데 그것을 지상에서부터 환희와 지복을 누리는 데만 둔다면 소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수행공부에서 구태여 소승과 대승을 나누어 소승을 경계하는 전통은 동서고금에 공통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대승에서는 세상에 조건 없이 사랑을 베푸는 데 삶의 목적이 있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해서 궁극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하면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 무관심 하다면 그 공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만하다는 얘기입니다.

신적 사랑을 에고에서 나오는 사랑과 구분하기 위해 조건 없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각 영성마다 표현은 다릅니다. 유교에서는 인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자비라 하고 기독교는 그냥 사랑이라고 한다는 것이 제 관찰입니다. 신적 사랑이 드러나는 방식을 덕으로 표현한 것 같으나 이제까지 살면서 에고 소멸을 말하지 않고 여러 덕을 따로 닦으려 했던 노력이 실패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적 사랑은 우리 에고가 극복된 만큼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승들은 이구동성 쉬지 않고 닦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마치 악기 연주자나 운동선수, 혹은 작가 등과 같이 갈고 닦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덕이 드러나고 또 원하든 원하지 않든 환희와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지상 복락은 결과나 목적이라기보다 공부에 따라오는 부산물 비슷합니다. 그래서 수행의 끈을 놓지 않고 살면서 얻는 행운을 은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신성을 성취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모든 사언행위가 신성의 본질인 조건 없는 사랑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이 있어야만 논어가 말하는 자빠지고 넘어지는 황급한 순간(造次顚沛)에도 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