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58

멸정복성으로 대자대비 되기

1월초 10일간 잡힌 여행일정 때문에 노동 내지 소득활동 없이 1월 중순까지 보낼 요량입니다. 그러고보니 잔존 수명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공부가 수행공부라는 생각이 굳어집니다. 제 공부 요점을 압축하면 멸정복성으로 대자대비가 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 평생 독서와 삶의 요점이자 결론이기도 합니다. 대자대비란 말은 처음 쓴 것 같은데 조건없는 사랑의 동아시아적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검색해보니 며칠전 거론한 미륵사상에도 연결됩니다. 즉 미륵이란 말은 미트라에서 유래됐고 자(慈)와 동일한 어원을 가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륵불을 '자씨불'이라 한답니다. 관련해서 보살은 항상 대자대비로써 중생에게 이익을 준다고 하므로 미륵사상도 결국 대승의 자리이타를 최고조로 구현하는..

마음의 가난과 존재양식

산상수훈의 청빈에 대해 가장 과격한 논지를 편 사람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일 겁니다. 무소유 실천을 드러나게 하는 사람은 장사꾼이라고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요컨대 가난에 대한 에카르트의 정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사람'입니다('에리히 프롬과 현대성', 219쪽). 위에 인용한 책에 따르면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에크하르트의 청빈 사상을 계승하여 현대의 실생활에 적용코자 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고 자아를 초월하여 신에 대한 갈망이라든지 지식에 대한 욕망 따위가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노자와 완전히 연결된다고 봅니다. 도덕경 10장은 나라를 다스릴 만한 성인이라면 '무위'뿐 아니라 '무지'할 수 있냐고..

신인합일 또는 천인합일

"영혼이 신 의식에 자신을 내맡기고 그와 일치되어 신 의식이 영혼의 일을 떠맡게 될 때 영혼은 단지 받아들일 뿐이며 활동하는 것은 신 의식이다. 이때 영혼에는 형상이나 표상이 없다. 형상이나 표상으로 표현되는 것은 시간과 공간에 그리고 피조물에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113쪽)" 우리가 고요히 홀로 있는 시간을 낼 때, 즉 명상을 할 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인용했습니다. 전심법요가 말하는 '말이 끊어지고 마음이 사라지는 경지'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목적에 기여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과 같은 체험을 할 때 그것이 바로 궁극의 실재 또는 신 의식에 대한 체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를 읽다보면 '일자(Oneness)'와 다수를 얘기합니..

신을 만나는 길

오늘의 묵상거리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서 가져옵니다. "인간이 신 안에 머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우선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버리고 감각이 파악할 수 있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시간과 영원 안에 존재하는 어떤 피조물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눈을 감고 고요히 침묵 속에 있는 시간을 내는 것은 바로 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유교와 불교가 신을 만나는 우수한 방편을 실천했다고 저는 봅니다. 왜냐하면 신을 인간처럼 그려놓고 거기다가 '하느님'이란 이름을 붙이지 않기 때문입니다.생각을 끊는 노력, 모든 개념에서 벗어나는 노력은 유교의 수기중(守其中)과 불교의 지관문이 추구하는 것이기도 한데 바로 신을 만나고 신의 뜻대로 살 수 있는 출발입니다. 끝없이 말로 가르치고 지옥을 ..

홀로 있음과 신을 소유함

자선사업을 포함한 종교가 하는 사업이 세속화하다못해 부패하고 탈법까지 하면서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소식을 자주 듣습니다. 사업을 하는 이들이 먼저 완전히 신에게 속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런 일은 충분히 예방되었을 것입니다. 종교란 개인이 먼저 진화에서 나온 에고 속성을 완전히 극복하여 신적인 존재가 되는 일에 특화한 가르침이라 봅니다. 이것이 성취되었다면 신이란 무조건적 사랑이기 때문에 인간을 구제하는 종교의 사업이 신의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행 조건 성취 없이 세상에 드러나는 일에 나설 때 불완전이 초래되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구제 사업 또는 불사를 벌이기 전에 먼저 신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신학적 논의는 제가 경험한 기독교 안에는 풍부하게 존재합니다. 그런데 이는 신도가 세상 삶..

의식 진화의 길

'내가 교회를 등질 마음이 없는데 왜 이단이냐?'라고 항변했던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오늘날까지 로마 교회로부터 완전히 복권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제대로 된 기독교도와 비기독교도에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신학자이자 영성가입니다. 그의 말 하나 인용합니다. "누구든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마태 16:24) 모든 것은 여기에 달려 있다.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돌려라. 그리고 그것을 발견한 그곳에서 자기 자신을 너로부터 놓아보내라. 이것이 가장 올바른 것이다. (영성지도 10쪽)" 여기서 '부인'은 원문에는 잊음(forget)으로 되어 있고 1968년 최익철 님 번역판엔 ‘자기를 끊고’로 되어 있어서 요즈음 서양 영성의 자아 소멸에, 동양 영성의 무아와 극기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

신을 만나는 일

에크하르트(1260~1328)를 소개한 우술라 플레밍은 "그리스도교가 비판받는 것 중 한가지가 신을 찾아가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에크하르트가 기술한 영원한 탄생을 신을 찾은 경지로 보고 거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탄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훈련과 집중, 높은 열망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 무지한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지눌스님 지으신 수심결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에서 오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한가지에 몰입하다가 아무것도 모른다 할 때 느껴지는 '공적영지(空寂靈知)'가 바로 순수한 영의 상태입니다. 그때 느껴지는 환희심에만 의지해서 신의 인도하심을 충실히 따르면서 끝없이 덕을 닦아나갈 때 비로소 신과 완전한 합일에 이를 것입니다. 양심성..

깨달음과 영원한 탄생

에크하르트 님은 사람들이 신을 찾는 것 같지만 그 맛을 모르기 때문에 이성으로 그 비슷한 것을 만들어 제사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우술라 플레밍에 의하면 영원한 탄생은 "내면에서 솟아나오며 인식의 과정을 역행"합니다. "이성적 사고는 신을 비켜 지나갈 뿐이며 영원한 탄생은, 신이 우리 안에 있는 신의 형상을 밝게 드러내시도록 준비된 자에게 당신을 계시하시는 것"이라 합니다. "우리는 준비해야 하지만 신께서 활동하시도록 내버려두기만 하면 그분은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 모든 분심을 버리고 떠남으로써 우리는 주의를 집중시킬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