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지각과 삶의 진동주파수가 상승하여 영적 차원의 진동주파수와 하나가 된 이들은 자신이 두 차원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이 진실에 따라 살고 존재의 더 높은 주파수로 계속 진화해간다. 그들은 더 이상 인간의 신념에 매이지 않고 자신이 한계 없는 무한한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깨달음 속에서 산다... 자신의 열망을 제한하는 것은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더욱 확연히 알게 된다.” (456-457쪽)
앞에서 에고 프로그램에 대해 논했는데 우리가 매일 보고 만나는 세상, 특히 인공 영상과 사운드 일체는 우리를 에고 프로그램에 묶어두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무한 미디어’를 쓴 기틀린은 미디어를 간단히 요약해서 ‘할리우드와 코카콜라’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달리 말하면 앞에서 인용한 요한1서의 말씀처럼 육체와 눈의 쾌락, 소유의 과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상 프로그램에 세뇌되기 때문에 오래 산 사람일수록 유한한 지상 세계에서만 살게 됩니다. 자신이 보는 대로 믿음을 형성하고 그 믿음대로 만들어진 세상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우리 학인은 가장 높은 영적 진동주파수인 그리스도 의식을 향해 난 길을 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런 신념과 그에 따라 만들어진 세상을 굽어보게 된다고 합니다. 물론 자신이 사는 세상은 무한한 세상임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재의 진실, 영혼의 참 모습, 세속적 에고의 진실 등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채 살기 때문에 마치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낮고 무거운 진동주파수에 사로잡혀 고통받는 모습을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보게 된다고 합니다. 비유하자면 에고에 사로잡힌 사람이 지독한 근시라면 우리는 현미경과 망원경을 가지고 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앞에서 그리스도가 에고 죽음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이 영적 통찰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님을 경고하셨듯이 지상 삶의 목적은 영원한 환희와 지복을 체험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한 환희와 지복은 더 높은 영적 진동을 얻는 데 방해가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 신 의식에 완전히 의지해서 통찰과 지식을 얻어내고 영적 의식의 진동을 계속 끌어올려서 사람들에게 신 의식의 본성을 내보일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존재의 모든 것이 진동주파수의 문제이기 때문에 영적 사고에 대해 파고듦으로써 영적 지각이 높아질수록 개인적 진동주파수는 더 빨라져서 기운은 저절로 왕성해지고 병고가 사라집니다. 환희와 지복은 그 자체를 목표삼아서가 아니라 의식이 향상한 결과로서 필연적으로 체험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진동주파수가 그리스도 의식에 가까울수록 신적 본성은 마치 주머니에 넣어둔 송곳처럼 감출 수 없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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