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2

16. 말세

2000년 이상 전에 팔레스타인에서 ‘예수’로 알려진 는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 위해 다시 왔다. 내가 지구의 진동에 맞추어 의식 진동을 낮추어 올 때 빛과 그늘의 세계, 즉 영적 고양과 좌절의 세계를 본다. 그리고 아주 끔찍하게도 인간 영의 타락을 본다. 내 말을 읽는 보통 사람은 이 말이 너희 현대 삶에 대한 과장이라고 느낄지 모른다. 그러나 지구에서 일어나는 일의 광범위함을 이해하려면 먼저 빛의 순간을 체험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적으로 너희 어린이들에게 일어나는 일에 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는가? , 또 본성상 . 그렇다. 우리는 안다. 그러나 너희는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한다. 너희가 빛의 아이들이라면 자비심에 넘쳐 너희 마음과 아이들 마음을 희생한 대가로 부유하게..

기독교의 신-예수 개념은 넌센스

'그리스도의 편지'의 '논설(article) 9'는 기존의 기독교 신 개념과 예수에 대한 진술, 나아가 사랑 개념이 모두 틀렸다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확언하고 있습니다. 최대한 옮겨 보겠습니다. "사랑은 치유, 복리, 번영, 참된 성공과 행복의 유일한 수단이지만 그것은 거룩한 듯하거나 감상적인 게 아니며 신을 기쁘게 하는 것도 아니고 착한 사람이 되라는 뜻도 아니다. 이런 생각은 너희 조부 세대의 생각일 뿐이다. 내 가르침을 유대인들이 곡해한 것으로 최대한 내다버려야 할 생각들이다. 사막에서 나는 '존재의 진실'을 알았고 영적 스승으로, 원자 요소를 통제하는 치유자로 변모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기독교회가 가르치는 벌주고 상주는 신 개념은 틀렸다. 소위 '아들'의 십자가 죽음으로 세상과 타협하는 신 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