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학습 공동체

목운 2021. 2. 12. 06:07

“<우리>는 너희가 종교적 신념과 상관없이 작은 그룹으로 모여서 이 편지를 일상생활 지침으로 함께 적용하기를 강력히 권한다. 할 수 있다면 각자의 프로그램을 벗어나서 자신이 진정한 영성에 대해 무지함을 기꺼이 인정하면서 자신의 삶을 영적으로 향상시킬 방법을 배우기를 강렬히 열망하는 그런 겸허한 마음으로 서로 모여서 함께하라.” (250쪽)

지금 세상은 진정한 영성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거나 좋게 해석하면 이미 다 아는 것으로 간주하고 돌아가는 듯합니다. 그것은 TV를 비롯한 매체들이 다루는 것을 보면 압니다. 우리 책도 언론 매체에 대해 세속 종교의 사도쯤으로 봅니다. 제가 인상 깊게 읽은 기틀린의 ‘무한 미디어‘를 요약하면 우리가 접하는 모든 인공 영상과 사운드는 헐리우드와 코카콜라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1서 2:16이 말하는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만이 미디어의 관심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영성의 출발은 모세와 그리스도인데 한 분은 깊은 산 속에서, 또 한 분은 사막에서 홀로 오래 기도하며 신을 만남으로써 근본 깨달음을 얻고 그 깨달음을 기초로 모든 가르침을 베풀고 지도력을 행사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학교 교육이 그렇게 짜여져 있습니다. 내면의 함양과 성찰이 아니라 바깥 것에 대한 지식을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소유, 즉 암기하는가로 경쟁을 부추기며 사회에 나가서는 누가 더 많은 재산을 모으는가로 서열을 매기려는 것처럼 짜여져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학습 모임을 하면서 공통적으로 듣는 말은 생활 속에서 공부 얘기를 하면 왕따가 되지만 모여서 영적 대화를 나누니까 매우 즐겁다는 말이었습니다.

​논어 첫머리도 이러한 학습 모임을 권장하는 것이건만 우리만의 좋은 전통을 깡그리 부정하고 서양 기술에 열광한 나머지 그러한 전통은 대가 끊긴 지 오래 됩니다. 저는 논어가 말하는 학(學) 또는 공부가 바로 영적인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유학을 집대성한 주희 선생이 매일 시간을 내어 중용 첫머리를 명상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먼 곳에서 벗이 왔으니 즐겁다는 것도 함께 영적인 수련을 하는 것이 좋았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실천의 예로서 조선 말기 서학을 공부하느라 천진암에 모였던 이벽과 이승훈 같은 선비들을 들 수 있습니다. 요컨대 이미 세속화되어 기복과 사교 또는 출세의 수단이 되어버린 기독교를 비롯한 기존 종교를 초월하여 일상에서 같은 뜻을 가진 이들이 모여서 학습을 하되 먼저 각자가 지닌 과거 프로그램을 지우는 일을 하고 참된 영성에 대해 무지하거나 백안시 했음을 인정하며 진정으로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하고자 노력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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