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참된 위로의 원천

목운 2019. 12. 21. 12:04

비록 1차 대학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면접에서 무얼 전공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철학'이라고 답한 것은 기억에 남습니다. 은퇴후 가장 호젓하고도 뜻있는 시간을 보내는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어쩌면 제대로 철학을 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저런 답을 한 동기는 짐작컨대 10대후반 육신과 정신의 갈등 속 나름 고통스런 실존 문제를 해결코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달 내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으면서 13-14세기를 사신 그분이 부딪친 문제도 바로 사람들의 실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만난 '신적 위로의 책'도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그의 설교 내지 강론의 하나인데 집필 동기가 바로 세 가지 인생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바로 손재수와 이별수, 그리고 건강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의 철학이나 신학, 형이상학은 저로서는 어마무시하게 어려워서 그저 페이지 넘기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설교들은 바로바로 이해됩니다. 전에 소개한 '훈화' (혹은 '영적 강화)도 초보 수행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교이면서도 그의 철학의 기본 생각을 논한 것인데 신적 위로의 책도 일반 신자들을 위한 말씀들입니다.

이 설교들이 얼마나 우리 심중 깊은 곳을 건드리는지, 또 얼마나 상식에 가까운 것인지 반색할 만한 대목 두어 개를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만약 외적 사물을 잃은 손실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면 이는 내가 외적 사물을 사랑함과 함께 진정으로 고통과 슬픔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참된 징표가 아니겠는가? 만약 내가 고통과 슬픔을 사랑하고 추구한다면 이럴 때 내가 고통에 빠져든다는 것이 뭐가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위 말씀은 제가 현대 최고 영성으로 여기는 호킨스 박사 말씀과 동일합니다. "모든 위로가 나오게 마련인 신으로부터 등을 돌려버린다면 그럴 때 내가 고통에 빠져 슬퍼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뭐가 그리 놀랄 일이겠는가?" "그대가 위로받으려면 그대보다 형편이 나은 사람을 생각하지 말고 보다 형편이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라." 이상 문구의 인용처는 이부현 편집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선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