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정좌 수행

목운 2019. 11. 25. 08:39

퇴직금과 구직급여 덕분에 두 달 가까운 백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친구들 덕분에 당구에 입문하고 집에 혼자 있을 때 프로 선수들 경기를 봅니다. 시청하는 동안 매 순간 느끼는 게 고도의 기술과 소위 멘탈이 전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영화 용쟁호투가 떠오르고 에크하르트 님의 훈화(The Talks of Instruction)가 떠오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술 훈련을 위해서는 중원의 세계에서 누구나 공을 들이고 시간을 들이기 마련이니 결국 1%의 사람들이 일합을 겨루는 계기가 올 때 승부를 가르는 것은 멘탈이 아니겠나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스포츠가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에크하르트 님까지 거론해야 하나요? 결국 소림사 수행이나 중세 수도원 수행이나 가르침의 요점이 같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에크하르트 님은 수행의 요점이 소아를 잊는 데(마태 16:24) 있고 소아를 잊기 위해서 영에 아무것도 없는(마태 5:3)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용쟁호투의 경우 모든 것이 허상이니 거울에 비친 것을 보지 말라는 것이 중요한 요점이기도 합니다. 에크하르트 님은 그러기 위해서 골방에 있거나 광장에 있거나 심사가 똑같기를 요구하며 그러기 위해서 심안과 영안을 오직 신께 두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점은 우리 전통에 고스란히 전해오는데 신유학 자체가 도교와 선불교의 정수를 유학이라는 그릇에 담은 것이며 그 핵심은 정좌의 실천이고 정좌를 할 때 자연히 조식을 하게 됩니다. 지감-조식-금촉은 단군 이래 수행법이고 조식의 요령은 임난 전 16세기 중엽 북창 선생의 용호비결에 적혀 있습니다.

요컨대 모든 기예를 겨루는 세상 삶, 심지어 금융 기술자든, 법 기술자든, 테크노크라트든 모든 게 어쩌면 기예를 다루고 겨루는 일인데 그때 반드시 하늘의 뜻에 맞게(또는 정의에 맞게) 일을 처리하려면 반드시 멘탈 관리 또는 감정의 달인이 되어야 하는바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좌 수행을 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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