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왜 극기복례인가?

목운 2019. 5. 8. 05:56

우리가 살면서 오감을 기초로 얻는 사유로부터 통속성과 세상 즐거움 이외에는 없다는, 즉 보이는 게 전부라는 신화를 받아들인 결과가 지금 세상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통하면 된다는 의미의 통속성을 삶의 원리로 받아들이면 적자생존의 사회진화론을 실천하게 되고 희소성 원리 위에 세워진 경제성 원리에 따라 살게 되고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수월성 원리(사실상 우리 교육의 바탕이죠!)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떻게든 1등을 하여 잠시 세상에서 통하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투철한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입증한 인간들이 박근혜와 양승태라고 봅니다.

이들 사회진화론, 경제논리, 수월성 원리 위에 세워진 세상을 바꾸려면 그것들이 사회운영에 꼭 필요하더라도 반드시 우리 전통의 극기복례 원리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데서 답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극기복례에서 '돌아갈 예(복례)'란 우주의 근본 원리(天理)이며 중용의 도(道)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경영할 자리에 있는 자들이 모두 예에 따라 살 때 평천하, 즉 평화로운 세상이 구현된다고 본 것이 대학의 요점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그리스나 인도에도 그대로 있으니 소크라테스가 설파한 동굴의 우화에 대한 가르침과 붓다의 마야에 대한 가르침은, 세상 모든 것이 환영과 같은 홀로그램이니 에고를 초탈(극기)하는 것이 제대로 된 답이라는 것입니다. 가시계는 모든 이들의 의식이 집단으로 매순간 창조하는 것들이 스크린처럼 지나가는 풍경일 뿐입니다(이것은 한편 첨단 과학인 홀로그램 이론으로도 입증됩니다).

이러한 세상에 우리 참나가 잠시 만들어낸 몸을 의탁하고 그 몸을 써서 작품을 만들고(즉 창조에 참여하고) 있지만 우리 참나는 세상 것이 아니니 세상을 그저 가운 걸친 것처럼 살다가 다음 차원으로 더 높이높이 날아 올라가는 것이 우리 운명이라는 것을 가르치지 않으면 세상의 진화는 계속 더디기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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