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성리학과 그리스도의 편지

목운 2016. 4. 1. 14:04

제 소견으로는 그리스도의 편지는 이미 깨달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는 진리를 현대적인 용어로 풀이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리학도 그렇게 해서 성인이 되는 게 목표였고 그 모범인 안회가 실천한 것이 도교적인 '심재'와 '좌망'이며, 그것은 정(情)에 해당하는 '생각과 감정'을 끊고 성(性)에 해당하는 우주 의식과 하나가 되는 방편으로서 편지가 제시하는 명상과 대동소이합니다. 다음 구절들은 '정'을 벗어나 '성'으로 살자는 성리학 이념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에고의 쌍둥이 추동력에서 완전히 자유케 되고 아버지-어머니-창조권능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지성/사랑>이 <완벽한 지성을 지닌 사랑>의 상태를 회복할 것이다.(332쪽)’
 
'<지성을 지닌 사랑-생명>은 초월적이면서 내 안에 있었고 내가 지속적으로 명상해갈수록 점점 더 광범위하게 내 의식에서 이기적인 충동을 지워버릴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나자렛으로 품고 돌아왔던 강력한 지식에 대한 설명이다. (333쪽)’
 
326쪽에서 332쪽을 성리학의 ‘정’과 ‘성’에 대한 설명으로 보면 좋습니다. 즉 창조성의 한 추동력으로서 '행동을 하게 하는 나라는 의식('I'ness of Action)‘과 또 다른 추동력인 '전자기적 인력-척력(결합력-배척력)'은 욕망 또는 일을 하게 하는 추진력이기도 한, 정 또는 감정에 해당합니다. 이 두 추동력은 창조의 힘이 드러난 것이라고 합니다(327쪽). 이 두 추동력은 바로 세속적 위안과 쾌락과 행복의 덧없는 근원이며 동시에 모든 질병과 불행과 궁핍의 근원입니다(339쪽).
 
동시에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모든 것의 배후에 있고 관통해 있는 것으로서 우주 의식에서 태어난 생명이 있습니다(330쪽). 이것이 바로 성리학의 ‘성(性)’으로서 글자 모양 상 바로 생명 또는 생명력을 말합니다. ‘정’의 다른 말이기도 한 인간의 '생각과 느낌'은 빗나가면 불행의 원인이지만 우주 의식이 가진 힘의 발휘이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331쪽을 보면 생명 자체인 창조 권능(성)은 우주에 꽉 차 있으며, 생각과 느낌(정)을 부려 사용합니다. 우리가 생각과 느낌을 생명의 본래 의도에 맞게 잘 사용하자는 게 바로 성리학의 가르침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생각과 느낌이 빗나가더라도 그것이 유태-기독교가 생각하듯 우주 의식(하느님)에 해를 끼치거나 공격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331쪽). 오직 스스로 눈먼 의식 작용의 결과 불행을 불러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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