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명상과 영성의 실천

목운 2018. 4. 13. 05:56

소크라테스가 말한 동굴의 우화는 우리가 보는 게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실체를 보고 알았을 뿐 아니라 매 순간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아테네 사람들이 모두 아니라고 해도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미디어가 매일 떠들어대는 세상사가 스크린에 비친 허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세상과 달리 살면서도 세상 변화에 기여하는 길은 영성을 추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허상과 싸우면 고통과 병이 깊어집니다. 영성의 길은 명상과 묵상이 입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그저 세상에서 오는 생각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입니다.

그와 동시에 과거와의 단절, 고정관념과의 단절, 황금률의 실천을 병행하게 되며 특히 절대적으로 진실할 것(至誠)이 요구됩니다. 다행하게도 명상이 깊어질수록 환희심이 나서 이것이 인센티브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이 환희심이 목표가 되고 세상과 단절하게 되면 그것은 소승이라고 해서 바람직하지 않은 길이 됩니다.

소승에 가까울수록 꾀까다로운 자세를 강조하고 심지어 면벽수행 같은 것을 하게 됩니다. 명상을 통해서 의식이 계속 진화하고 거기서 나오는 지혜로써 세상의 패러다임을 벗어난, 무오류한 실천을 하자는 게 목적입니다. 의식이 끝까지 진화하면 이원성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비이원성이란 선악과를 먹기 전, 즉 선과 악 같은 이원적 구분을 벗어나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나아간 과정의 이야기들은 4대 성인의 가르침에 공통할 뿐 아니라 전 세계 누구나 같은 체험이라는 게 스승들 이야기입니다. 제 남은 꿈이라면 제가 어디까지 향상하고 무엇을 성취하는지 기록해서 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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