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기독교의 한계

목운 2021. 1. 27. 06:40

네 번째 편지 묵상
“내 제자들은 내 삶과 가르침에 관한 보고를 바탕으로 기독교라는 종교를 만들어냈지만 기독교는 <존재의 근원>에 관한 영적 진리에 반하는 온갖 믿음을, 순전히 실용적인 이유로 채용한 틀에 박힌 종교다... 내 가르침은 언제나 가장 높은 ‘존재에 관한 영적 진리’에서 나온 것이며 인간이 가르치는 관념이나 논리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209-210쪽)

짐승의 피를 바치는 것, 심지어 곳곳에서 발견되는 인신 공양을 수반하는 제사를 흉내내어 신이 자식을 십자가에서 피흘리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구한다는 발상이 괴기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제 경우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수만 년 전 자연의 공포에 질려 산 생명을 바쳤던 관습에 기초해서 커다란 종교 조직을 세웠고 그것이 2천 년 동안 이어져 왔다는 것은 세속적 필요성, 즉 실용적 이유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로마 제국에 이어 근대 이후에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나찌가 약소국을 침략하는 데 이용했던 이데올로기 도구로서 기독교가 기능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극우 정치인들이 자신들 이익을 보호하는 데 기독교를 이용하고 있는 것도 저러한 태생적 한계에서 오는 것인지 모릅니다.

그리스도를 추종하던 유태인들은 ‘존재에 관한 근본 진리’보다는 자신들의 전통과 선민사상을 지키는 데 더 골몰했습니다. 로마의 필요에 의해서 공인된 기독교는 그리스도 가르침의 핵심에 있는 원수 사랑과 이방인 포용보다는 세계 제패와 이단 처단에 더 집중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세계 평화의 저해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 책이 지적하듯이 세계 금융권을 장악한 유대인과 그들과 손을 잡은 자들이 오직 물질적 이익만을 추구할 뿐 빈곤 문제 해결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특히 212쪽에서는 미국을 겨냥하는 것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즉 ‘다른 나라를 악으로 규정해서 대항하는 나라는 지난날 자신이 지은 과보에 대항하고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강자로서 약자를 잔인하게 공격하는 “정치깡패식 책략”이라고 콕 집어서 말하는 데서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리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약탈하고 유린함으로써 그 결실을 자신의 의식 속에 비축하고 있기 때문에 약자의 저항을 그러한 타락에 대한 경고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기독교도들이 물질주의자에 못지않게 인간적 종교 전통에 도취되어서(213쪽) ‘거룩한 전통’이란 미명하에 존재의 진실과 거기에 기반한 법칙보다 외적 예식에 열중하는 로마 교회도 겨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책의 요점은 <존재의 진실>과 그 법칙에만 충실하자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