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되기

10장 3

목운 2014. 11. 16. 17:13

 이제 나와 같은 말을 한 사례들을 볼까 합니다.

 대릴 앙카라는 사람이 '바샤'라는 사람의 채널러로서 한 말을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물질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익숙합니다만 '상위 자아'라는 것은 비물질적입니다. 물질 실체를 초월한 진동 주파수가 있는데 거기에 육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상위 자아'는 낳고 물질 뇌가 수신해서 마음이 감지하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 어떤 영감, 어떤 상상이든 마음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상위 자아'가 낳은 것을 당신 뇌라는 수신기가 번역해서 마음이 실체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배를 이끄는 게 아니고 그저 길을 보며 체험할 뿐입니다.

 마음은 상위 자아가 창조한 것을 감지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이렇게 보면 당신의 짐은 가벼워집니다. 상위 자아의 일을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이 버스를 운전하는 게 아니다. 당신의 '무한한 나'가 당신을 "고용해서" -즉 창조해서- 당신을 버스 뒤에 앉혀서 지나가는 경치를 보고 반응하도록 했다는 게 전부입니다. 

 당신이 경치(홀로그램 체험)를 만든 게 아닙니다. 볼 경치를 택한 것도 아닙니다. 갈 곳을 정한 것도 아닙니다. 그 모든 일은 버스 운전자, 즉 당신의 '무한한 나'의 일입니다. 


 내가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운전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현실을 창조한 자가 아닙니다. 당연히 당신은 아무것도 창조할 능력이 없습니다. 

 마침내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아주 편안해질 겁니다. 결국 우리가 극장 안에 있을 때는 우리가 버스를 운전하고 갈 방향을 정하고 볼 경치도 정했다고 생각하며 현실을 창조하려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리고 물론 그게 잘 통하지 않았죠. 결국 우리는 우리가 원하던 현실을 창조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뒤로 처져서 쉬면서 '무한한 나'가 운전하도록 하면서 즐길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 일은 경치에 반응하는 일뿐입니다. 


 몇사람은 처음에 이 말을 듣고 내 말이 결국 '무한한 나'의 꼭두각시나 노예를 의미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화를 냈습니다. 이 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무한한 나'가 당신으로 하여금 연기하도록 한 게임의 목적을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무한한 나'를 위한 게임이 작동하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은 어떤 홀로그램 체험을 할지 택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자유만을 누립니다. 실상 이것이 당신이 연기자로서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즉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지와 그 반응과 관련한 감정을 택할 자유만 있습니다. '무한한 나'가 원하는 것은 감정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감정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이 게임의 전체는 논의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꼭두각시나 노예가 결코 아닙니다. 당신은 게임에서 중요한 연기자이며 '무한한 나'를 위하여 값지고 독자적인 서비스를 하는 것입니다. '무한한 나'는 버스 운전만 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부로서 강한 연결을 가지고 버스에 앉아서 경치를 보기만 하고 그 느낌을 전해줄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달에 있는 우주인이 우주 본부의 꼭두각시나 노예로 생각할까요? 트럼펫 주자가 지휘자의 꼭두각시나 노예입니까?

 분명히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 역할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기꺼이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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