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나눈 이야기

평화를 위한 공부

목운 2018. 6. 13. 08:10

지난 주 오륙일 정도 무언가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과거에 읽던 닐 도널드 월시의 ‘신과 나누는 우정’을 다시 손에 잡았습니다. 2000년경 광고 카피를 보고 접한 월시는 1944년생으로 60년대에 제가 겪은 가톨릭의 분위기와 거의 같은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어 매우 친근감이 있습니다. 그는 대학 중퇴 후 방송 및 언론인의 길을 걸었습니다. 책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을 뿐 아니라 사회 의식 변화를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그가 단학을 접하고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각설하고 호킨스 의식 지수에 따르면 그가 쓴 책의 진실성 정도는 깨달음이자 무조건적 사랑의 수준인 540이고 그 자신은 이에 조금 못 미쳐 520으로 측정됩니다. 그러나 500 이상은 영적으로 매우 진실하고 누구나 도달하고 싶은 수준입니다. 500 이상의 책들은 바로 사랑의 장에서 나오는 진실을 설파하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사랑과 용기를 느끼게 해줍니다. 특히 요즘 매일 묵상하는 ‘그리스도의 편지’와 일치하는 내용이 있어 반가웠습니다. 영적 성장에 있어 에고에 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기에 관련된 구절을 가져옵니다.

“너희가 일체(또는 만유)와 하나로 있는 그 장엄함을 체험할 유일한 방법은 일체와 하나이지 않을 수 있는 어떤 상태나 조건이 있게 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궁극의 실체인 절대계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이기에 어떤 것이 일체와 하나이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상대계가 창조된 건 이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였다... 이런 환상을 만들어내는 주요한 도구가 너희 에고다. 에고는 자신을 ‘나머지 모두’와 분리된 것으로 여길 수 있게 해주는 장치다. (위 책, 113쪽)”

에고는 창조의 과정에 필수적이지만 “에고가 너무 커져서 분리된 자신밖에 볼 수 없다면 합일된 자아를 체험할 기회는 완전히 사라지고 너희는 길을 잃고 만다. 너희는 그 환상의 세계에서 그야말로 미아가 되어 많은 생애 동안 길을 잃은 채 그 환상 속에 남아 있게 된다. 너희가 마침내 자신을 거기에서 끄집어내거나 혹은 누군가가 너희를 거기서 끌어낼 때까지. 이것이 ‘자신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이고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이라는 개념이 뜻하는 바다. (위 책, 114쪽) ”

하지만 종교는(서양서 종교라 하면 주로 기독교입니다.) 자기네만이 ‘구원받을’ 유일한 길로 선언함으로써 분리의 환상을 도리어 강화했다는 과오를 저질렀다고 합니다. 올바름에의 집착과 신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남보다 더 낫다는 선민의식이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기독교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미국 쪽에서는, 월시는 물론 제가 사숙하는 호킨스의 텍스트에 잘 담겨 있고 영국 쪽에서는 제가 여러 온라인 학인들과 함께 읽는 ‘그리스도의 편지’에 잘 드러납니다. 이러한 노력은 분명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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