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11장 - 극단주의

목운 2017. 3. 14. 13:50

극단주의

특히 과도하게 야만적인 잔인함과 집단적 유혈 욕망의 공공연한 과시 형태인 극단주의는 보통 거부되고 억눌려져서 프로이드가 "이드"라 부르고 칼 융이 "그림자"라 부른 무의식 영역으로 보내지는데 그것은 매우 유전적인 본능이기도 하다. 피에 굶주린 욕망은 동물집단 살상에서 드러나는데 비슷한 사례로 유명 운동선수에 의한 투견 '스포츠', 학내 살인자의 살인 잔치, 광란극, 린치를 일삼는 집단의 과격하고 광란적인 집단 만행, 만주에서 일본의 대학살, 폭도의 집단 폭행, KKK의 교수형과 고문, 무고한 이들에 대한 폭도들의 폭행, 하이티에서의 광포하고 야만적인 폭동, 칼을 휘두르며 벌인 아프리카 국가의 내전 등이 있다. 게다가 나찌의 집단수용소와 스탈린의 강제노동수용소는 물론 탈리반의 참수와 게슈타포의 대학살이 있다.


프랑스 혁명은 길로틴으로 14,000명을 처형했다고 해서 치하받는다. 광신적 종교단체는 집단 자살을 하며 아이들뿐 아니라 서로 죽이기도 한다. 종말론적 승리의 이름으로, 이슬람 테러리즘과 대중 폭동이 이러한 유전적 성향을 미화하는데, 이러한 종말론적 승리에 대한 신념으로 핵무기를 사용하며 '마디'(12대 이맘)의 재림을 촉구하기 위해 인류의 2/3가 죽을 것이라고 한다. 12대 이맘 '마디'는 세상을 계시록의 종말과 비슷한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다. (이상은 2007년 컬럼비아 대학에 초빙되어 강연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네타냐후, 2006]이 진술한 신념이다.) 모든 종말론은 극히 낮은 70으로 측정되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것이 지독한 거짓말이라는 것이므로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 사례들은 고전에서 '사탄에 속하는' 것으로 지칭되었고 특정 환경에서 폭발할 수 있는 인간 의식 안의 어두운 저수지 같은 것인데 무구한 듯한 어린이들에게서까지 찾아볼 수 있다(예, 파리의 대왕). 오늘날 인기 있는 비디오 게임이 종종 90으로 측정되는데 그것들은 살인과 강간을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어두운' 성향(영화 검은 크리스마스)은 보통의 '정상적인' 사람도 권위 있는 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잔혹성을 보인다고 심리 실험에서 조사되어 기록된 바 있다. 자원자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조성된 죄수-간수 실험에서는 잔혹성이 표면화되었다(Zimbardo, 2004, 2007; Milgram 2004). 


잔혹한 인종말살은 수천년간 정복을 위한 야만족 군대에 특징적이고 고유한 것이었다(예, 징기스칸, 바이킹, 훈족, 고트족). 이러한 야만적 성향이 이슬람과 기독교의 종말론적 경전에 끌어들여진 것은 겨우 몇세기 안된다.


진리의 전도(顚倒) (1)

권위와 선동 그리고 세뇌의 영향에 더하여 집단적 동의에 의하여 진실 검증을 위한 인간 마음의 능력은 허물어져 거짓이 진실로 통용되어 종교적 숭배를 받기에 이른다(종교재판). 이는 세일럼 마녀재판과 같은 사건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상은 무하마드의 가르침이 타락한 사례에서도 볼 수 있는데 무하마드 이반 압달-와하브(측정치 20), 사이드 쿠트(측정치 75)의 광신적 가르침과 거기에서 나온 하마스(측정치 40), 알카에다(측정치 30)와 빈라덴의 성전(聖戰)(측정치 20) 등이 그 산물이다.


국가, 문화, 종교 전반이 심지어 수십년 또는 수세기 동안 특정 조건에서 그 가르침에 정반대로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매우 심하게 작동된 경우는 신의 권위라는 명분으로 아주 야만스럽고 터무니 없는 인간과 동물의 초기 본능이 합리화되고 실행하도록 장려되고 심지어 갈채를 받는 일이다. 이리하여 (자비로운 알라의 이름으로) 집단 자살의 방법으로 무고한 자들을 죽인다.


이런 일은 집단 자살로 마감한 광신도 집단에서도 볼 수 있다(예, 존스타운, 천국의 문, 헤일밥). 이 모든 재앙은 인간 의식의 한 측면에 정치색을 띤 권위있는 사람을 따르려는 경향이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에서 보듯 카리스마 있는 위와 같은 모든 지도자들은 특성적으로 '악성의 나르시시즘' 증후군을 가지고 있다(진실 대 거짓 제14장 참조). 역사는 같은 일을 반복하여, 메시아를 빙자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과 가정의 수백만 사람들을 죽이는 일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신을 빙자한 권위를 계속 주장하는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까지 이르렀다.


증오와 악을 신격화하는 일은(예, 빈라덴은 "우리는 생명이 아니라 죽음을 숭배한다"고 한다.) 10으로 측정된다(원시주의). 오늘날 세상에서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신학적으로 '사탄식 전도(顚倒)'라고 정의되어는 것이다. 이슬람에 미친 그 영향은 이븐 와라크의 권위 있는 연구 왜 나는 무슬림이 아닌가?(1995)에 학술적으로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 이 책의 측정치는 410이다. 또 다른 권위 있는 저술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야톨라의 '율법적 결정'에 이은 새먼 루시디가 지은 책이 있다.


진리를 '루시퍼적으로 전도'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신을 적으로 보는 자기애적 에고의 교만한 탐욕을 거쳐) 개념적 전제를 바꿈으로써 진실과 거짓을 뒤집는 데서 생긴다. 이러한 거짓된 과장은 '신격화'라 부를 수 있는바 유혹에 굴복한 것이기도 한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지도자들이 돈과 섹스에 대한 착취, 개인적 이득을 위한 추종자 통제와 조작을 통하여 그 유혹에 빠져들었다("권력은 부패경향이 있으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Lord Anton]).


이상 모든 것에서 보면 인간의 에고(마음, 소아)는 그 자체에 무지라는 한계와 약점 및 취약성이 있기 때문에 속기 쉽고 실수하기 쉽다는 게 자명하다. 이러한 한계는 부인이라는 유명한 심리 기제에 기인할 뿐 아니라 카르마상으로는 물론 생물학상으로도 의식 자체의 진화에 한계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세계 인구의 85%가 200 미만으로 측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