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무위(無爲)와 무소주(無所住)

목운 2018. 12. 28. 07:57

무집착의 문제는 도덕경의 무위자연과 금강경의 무소주(無所住) 실천에까지 닿는 문제입니다. 한편 1천 여년에 걸친 선불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믿음체계의 하나지만 실상은 노장 사상과 인도 불교가 융합된 체계라는 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니 무위와 무소주는 같다고 봐도 됩니다.

그렇게 보면 무위자연이 실천에서 동떨어진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금강경 정신에 따라 내가 없이 하고, 한다는 생각 없이 한다는 것은 아상(我相, 즉 에고)이 없어진 상태에서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월쉬에 따르면 정신이 나간(mindless) 경지입니다.

체험상 거기에 조금이라도 비슷할 거라고 여겨서 제 금연 체험을 말씀드렸는데 언젠가도 써먹은 표현이지만 나 자신은 물론 타인과 기타 사물을 '처삼촌 벌초하듯' 무심하게 보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제가 겪은 일로는 회의실에 어제 손님들이 남긴 과자를 보고 미세하지만 집고 싶은 마음을 의식했습니다. 이런 정도의 마음도 안 일어나야 정신이 나간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일은 에고 차원의 단단한 결심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규칙적으로 명상을 해서 시공을 초월한 체험이 습(習)이 되고 그야말로 높은 에너지 파장과 하나가 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명상과 더불어 에고를 철저히 이해하고 그야말로 마스터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신 의식의 대리인이 되고 무조건적 사랑과 무한한 창조력까지 상속받을 것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환에 삶이 있음(生於憂患)  (0) 2019.01.01
무위와 무지  (0) 2018.12.29
종의 비유와 대리인  (0) 2018.12.26
지복에 이르는 길  (0) 2018.12.23
진정한 신분 상승  (0) 2018.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