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58

지어지선의 비결

저는 서양에 있어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가 우리의 대학, 중용만큼 중요한 수양서라고 생각합니다. 혹여 저와 함께 입문하시는 분께 도움이 될까 해서 8장까지 소개했는데 오늘은 제가 접한 두 가지 번역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두 번역이 각각의 장점이 있으니 비교하시고 느껴보시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앞에는 '영적 강화'라고 이름 붙인 이부현 님의 번역을, 뒤에는 강병욱 님의 '영적 지도'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맨 뒤에는 제가 펭귄 영문 판에서 번역한 것을 붙입니다. 내용은 1장과 5장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골랐습니다. 제가 보기에 '훈화'는, 최고선을 향하는(止於至善) 비결이 자아를 비우는 데 있고 자아를 비우는 만큼 선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1 "사람들이 순종 가운데 ..

에크하르트 훈화와 대학-중용

동아시아의 형이상학은 인격신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궁극의 실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검색하다가 자금성 중화전에 건륭제가 쓴 '윤집궐중' 현판을 보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쓰신 같은 구절도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대학과 중용은 유교적 신인합일, 즉 천인합일의 교재입니다. 그래서 며칠 전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의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 할 때의 내재하는 신과 같기 때문에 서양 신비주의의 신인합일과 동아시아의 천인합일은 같은 목표를 가진다"는 취지의 글을 썼습니다. 중을 내면의 신으로 보고 '지천명'하고 그 말을 잘 들어(耳順) 하늘과 하나가 된 경지가 바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해도 걸리는 게 없는..

신인합일에 이르는 길

제가 초심자 중에 초심자지만 중용을 입버릇처럼 거론하고 에크하르트의 훈화를 함께 읽는 뜻은 동서 지성 가운데 신인합일을 실천하고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술한 글이 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대략 5장까지 거론했는데 6장에서는 이 공부를 하는 자세를 세 가지 예로 강조합니다. 첫째는 목마른 사람처럼 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 다음엔 글쓰기 훈련이나 바이올린 연주처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내적으로 홀로 있기를 배워야" 하며 "본질적인 방식으로 힘차게 신을 자신 속으로 모시고 들어와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바꾸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든 것들에서 풀려나 모든 것들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신적 현재에 푹 잠겨들어야 한다. 사랑하는 신의 모습에..

둘째 가는 계명의 전제

에크하르트의 훈화(영적 강화)에 대해 두 번 쓰면서 기독교도들이 그리스도의 첫째 계명을 모르면서 둘째 계명에 몰입함으로써 길을 잘못 든다고 말했습니다. 제 생각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한다 할 때 몸이 내가 아님을 먼저 깨치지 못하여 길을 잘못 드는 것입니다. 에크하르트는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것을 벗어나서(aus seinem Ich) 내 의지와 고집이 사라질 때 신이 우리에게 들어온다고 합니다. 즉 신으로서의 내가 신으로서 내 몸처럼 이웃을 볼 수 있을 때 올바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아를 벗어나지 못할 때의 사랑이란 모두 다수성의 세계에서 계산과 유치한 감정의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3장에서는 아집을, 4장에서는 사물에 대한 집착인 법집을 벗어나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첫째 가는 계명과 정좌

제가 여러번 지적했듯이, 그리고 제 40년 가까운 기독교 생활에서 보건대 기독교도는 그 안에서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첫째 가는 계명을 지키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래서 두번째 계명인 이웃 사랑으로 대봉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첫째 계명을 모르기 때문에 두번째를 실천하면서 어그러지는 경우가 다반사죠! 에크하르트의 영적 강화(저는 훈화를 선호합니다) 둘째 장을 보면서 저는 동아시아의 수행을 떠올립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힘 있는, 거의 전능에 가까운 기도와 무엇보다도 가장 가치 있는 행위는 텅 비어 있는 마음(ledigem Gemut, vacant mood)에서 나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펭귄판에서는 '텅 비어 있는 마음'을 '자유로운 마음(free mi..

신에 대한 사랑법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영적 강화(Die Reden der Unterweisung, 이부현 님 번역)를 처음엔 강병욱 님의 번역(영성 지도, 2009, Play Store, Play Book)으로 여러번 읽었는데 이부현 님 번역과 펭귄 북의 영역(The Talks of Instruction)으로도 읽었습니다. 위 번역문들에 간간히 나오는 독일어를 보니 좀더 정확히 읽으려면 독일어 원전을 읽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전공이 아닌 터라 이고 선생의 복성서는 현대 중국어의 도움을 받아 거의 10개월 동안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놓고 이곳에서도 수시로 소개했습니다. 복성서는 8~9세기 동아시아 최고수준의 의식에서 나왔다고 판단해서 그렇게 했는데 에크하르트 님의 위 책도 13~14세기 유럽 최고 지성에서 ..

에크하르트 사상의 핵심

지난 한 달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공부했습니다. 펭귄 판 입문서를 번역해서 블로그에 올려 놓았고 이부현 님이 번역한 영적 강화(저는 '훈화'라는 쪽이 맘에 듭니다)를 대학-중용의 관점에서 읽어봤습니다. 에크하르트는, 바오로와 함께 기독교의 뼈대를 제공한 플로티누스를 계승한 분입니다. 플로티누스는 기독교의 신 없이 체험한 자신의 일자 체험을 근거로 자신의 철학을 구축한 분이기에 사실상 동아시아 신비주의와 같다고 보는 게 제 생각입니다. 에크하르트 사상의 핵심을 대중적인 말로 풀어준 훈화를 읽으면 더더욱 그렇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가 읽기로 훈화의 요지는 모든 상(相, bilden)을 벗어나고 자아를 완전히 포기함과 동시에 신의 의지로 살 때 최고선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하지대본인 중(中)..

참된 위로의 원천

비록 1차 대학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면접에서 무얼 전공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철학'이라고 답한 것은 기억에 남습니다. 은퇴후 가장 호젓하고도 뜻있는 시간을 보내는 두 달 반이 지난 지금 어쩌면 제대로 철학을 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제가 저런 답을 한 동기는 짐작컨대 10대후반 육신과 정신의 갈등 속 나름 고통스런 실존 문제를 해결코자 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달 내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를 읽으면서 13-14세기를 사신 그분이 부딪친 문제도 바로 사람들의 실존 문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 만난 '신적 위로의 책'도 제가 알아들을 수 있는 그의 설교 내지 강론의 하나인데 집필 동기가 바로 세 가지 인생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그는 바로 손재수와 이별수, 그리고 건강 문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와 유럽의 지적 전통

이 복잡한 인물을 찬찬히 살펴본 바와 같이 유럽 지적 생활의 진화에서 그가 결정적 지점에 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클레멘트 4세가 1267년에 도미니코회로 하여금 여성 종교 공동체에 대한 사목을 맡도록 했는데 그때 비로소 설교 목적으로 독일어를 쓰게 된 것이며 그 이전에 모든 지적 사상은 라틴어로 쓰였다. 도미니코회 첫 세대의 업적이 무엇이었든(그것들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우리는 차세대에 속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설교에서 유럽의 평민 언어로 된 수준 높은 철학적 신학적 논의의 상당량을 처음으로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이것은 초유의 환경으로 기록될 텐데 그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에크하르트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일의 뛰어난 철학과 신학 전통의 비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참말로 에크하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방법론(2)

에크하르트 양식의 표현에서 더 나간 요소는 '이상적' 입지에서 이야기하기 좋아한다는 점이다. 에크하르트는 우리가 이미 신과 합일한다면 '진실일' 말을 기회 있을 때마다 한다. 그가 언급한 대로 '신의 안목'에서 보고 그것이 청중의 독자적 실체인 듯이(강론 11)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의도다. '영이 가난한 자는 복되다'(강론 22)와 같은 강론은 그런 말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청중들에게 그들이 창조되기 전처럼 되라고 촉구한 때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받아 들이도록 의도한 게 아니라 청자들 앞에서 그들 본성의 초월적 가능성을 취하도록 한 시도이며 그런 것들은 또 에크하르트 자신이 한 때 '강조해서 말하기'로 인정한 것에 속한다. 에크하르트에게 있어 신을 향한 돌파는 지식의 돌파다. 낮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