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58

윤집궐중의 교과서

남들 안 하는 공부 얘기하니 제가 뭐 대단한 수련을 하거나 굉장한 체험을 한 게 아닌가 하는 대접을 받습니다. 물론 그냥 스몰 토크의 한가지라는 것도 압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지라 세상을 떠들석하게 하지는 않았을망정 오감이 이끄는 대로 또는 세상이 제시하는 이런저런 나침반 따라 해볼만한 일 또는 짓은 거의 다 해봤지만 모두 오답이더라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 전통 가르침인 대학-중용을 실천하려 하는데 그 핵심 요지는 다시 서경 16자로 귀결됩니다. 서경 16자 가르침이란 '윤집궐중' 하라는 것이고 여기서 중이란 생각이 끊어진 자리 즉 희로애구애오욕이 발하기 전의 상태로서 천하의 근본이라는 게 중용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언제나 중을 잡고(집중) 그 상태를 놓치지 말라는 것인데 이것을..

소위 신비주의라 하는 수행 원리

올해는 에크하르트와 지낼 것 같은 예감입니다. '훈화'와 '신적 위로의 책'을 이곳과 제 블로그에 대략 소개했는데 두 권의 경우 수십 번 읽어도 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수행 또는 의식향상에 뜻이 있는 분께는 바로바로 쓸모 있는 말씀이 가득합니다. 두 책에 이어 '고귀한 사람'이 이어지는데 역시 참나 찾기 또는 보살도와 다름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실용적 교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인상깊은 것은, 이 책의 '내적인 고귀한 인간에게 심어져 있는 씨앗인 신적 형상'은 복성서의 성(性) 또는 참나에 해당하고 '씨앗을 덮고 있는 세속적 욕심'은 정(情) 또는 에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면 역시 동서의 수행 원리가 같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복하자면 수행원리란 에고를 제거하는 과정인 정..

고통과 무집착

'신적 위로의 책' 2부에서 에크하르트는 30가지 논거 또는 사례를 동원해서 사람들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는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 추론하건대 그가 당대 최고 지성이자 고위 성직자였음에도 그가 담당한 베귄을 비롯한 대중의 고통에 관심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는 거의 최초로, 라틴어가 아니라 독일 보통 사람들 말로 강론을 했으며 대중적 인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교황과 여타 고위 성직자들이 정치적 이익 추구를 위해 그를 희생양 삼았습니다. 즉 그는 유일무이하게 고위 성직자로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이단으로 판결받았습니다. 오늘날까지 일부만 복권된 것을 보면 역시 기존 종교는 하루 속히 해체되어야 마땅하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비그리스도교 ..

완전한 순명과 고통

에크하르트의 '훈화'를 대학-중용의 가르침에 비추어본 글을 여럿 올렸더랬습니다. '신적 위로의 책' 또한 우리 유학에 조응하는 바 큽니다. 즉 고통에서 위안을 구하는 처방으로서 완전한 순명과 천인합일을 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공자님이 말씀하신 이순(耳順)이란 천명을 완전히 알기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지라고 봅니다. 이는 불가의 여섯 바라밀 가운데 인욕바라밀의 완전한 실천이기도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고통과 불행 가운데 최선의 위로는 "모든 것을 우리가 원하고 원한 것처럼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그대가 모든 것이 신의 의지로부터, 신의 의지와 함께 그리고 신의 의지로 생겨나는 것이라고 안다면 그대도 실로 그것을 원했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신..

고통에 대한 근본 처방

'신적 위로의 책'은 고통에 대한 근본적 처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에크하르트의 처방은 통속적으로도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처방을 제시하면서 보다 심층적인 데까지 다룹니다. 그러길래 거의 700년에 가까운 시간의 검증을 견디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통속적 처방으로는, 100마르크를 가진 사람이 40마르크를 잃어버렸다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여전히 가지고 있는 60마르크를 "바라보고 그것에 고마워하고 얼굴을 맞대고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것을 갖고 좋아서 수다를 떤다면 그 사람은 확실히 위로받을 것(이부현 옮긴 책, 130쪽)"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큰 병에 걸렸으나 간호와 시중을 충분히 받는 부자가 "냉수 한 그릇 떠다 줄 사람도 없는 가난한 사람"은 생각도 않고 자기 고통만 생각한다면 무슨 위로가..

고통과 집착

유튜브로 광우스님이란 분의 법어를 들은 적 있습니다. 아들과 일하던 농부의 아들이 갑자기 죽어버렸습니다. 그는 전혀 흔들림 없이 집에 연락하여 장사지낼 준비를 해오게 하여 일 마치고 아내와 딸과 함께 장사를 지내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좀 극단적인 예라서 잊어버리질 못하는데 어떻게 슬퍼하지도 않고 자식에 대한 집착을 전혀 표하지 않는 게 가능할까 생각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법어인 만큼 극적으로 집착을 버린 자의 예를 말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이런 예만 보아도 그리스도나 붓다나 그 의식이 최고 경지에 도달하신 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꺼낸 이유는 어제에 이어 '신적 위로의 책'을 인용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외적 사물을 잃은 손실이 나에게 고통을 준다면 이는 내가 외적..

에크하르트와 고통론

제 공부는 깊이나 전공 차원의 학식을 구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 삶에서 실용적인 넓이를 구하는 데 있습니다. 특별히 마음의 안정과 나이 탓으로 임종을 많이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공부의 모또는 탄허스님이 추구하신 보살도에서의 '향상일로'가 제일 맘에 듭니다. 동아시아에서는 선불교를 계승하면서 유학의 언어로 공부의 핵심을 명료하게 보여주신 이고 선생을 좋아하고 서양에서는 스콜라 철학과 기독교 사상의 중심에 있지만 비기독교도인 플로티누스의 신비주의를 계승한 에크하르트를 반 년 이상 붙들고 있습니다. 그의 책 '훈화'는 여러 차례 소개드렸는데 필요하신 분은 카테고리 '에크하르트 입문'을 보시면 됩니다. 오늘부터는 고통론이라고 부제를 붙여도 좋을 '신적 위로의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이 책은 재산 손실, 친..

에크하르트와 의식, 그리고 교회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삶과 사상을 공부하면서 무엇보다도 반가운 구절이 있어 옮깁니다. "에크하르트가 독일 도미니코회 학파와 함께하는 핵심 생각은 '지성'의 본성 및 의미에 대한 치열한 관심인데 여기서 지성이라 하면 현대 용어에서 '지성'보다는 '의식'과 관련된 무엇이다." 에크하르트는 도미니코회에서 멘토인 디트리히의 생각을 취하여 이 의식이 인간 영혼이며 인간 존재의 핵심이라고 보고 그것('마음', 영혼, '의식' - 모두 같음)을 찾고 탐구하기 위해서는 우리 존재의 가장 내면적이고 친밀한 부분으로까지 찾아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앞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지적 배경' 참조). 에크하르트를 거론하면서 루터가 영향받았다고 했는데 실상 루터의 주장은 신과 직접 통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시와 같은 교회가 필요 ..

고통의 근본 원인

에크하르트에 대해서는 통증 의학을 하는 우술라 플레밍의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는 책을 통해 입문했는데 지난해 연말 시간이 있어 에크하르트 책 두어 권을 더 읽고 지금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훈화(Talks of instruction, 영적 강화)'는 여러 차례 소개했듯이 중용의 중과 성, 대학의 격물치지 내지 정정안려득(定靜安慮得, 곧 명상)에 조응하는 가르침으로서 목마른 자가 글쓰기와 악기연주를 연습하듯이 쉬지 않고 정진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적 위로의 책'은 인간이 흔히 당하는 건강, 재산 등에서의 손실과 타격에 즈음하여 어떻게 고통을 극복할지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우술라 플레밍은 통증을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에크하르트의 가르침이 가장 효험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에크하르트는 고통의..

버리고 떠나 있음의 숙달

우연히 레스터 레븐슨의 말을 접하고 제가 회심할 때 만난 선가귀감의 말씀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느꼈습니다. 그 단순한 말씀의 깊이가 더욱 강렬히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레븐슨의 말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욕망이 없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합니다. 그러면 언제나 행복해질 것입니다." 선가귀감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생사를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갈을 없애야 한다. (欲脫生死 先斷貪欲 及除愛渴)" 제 경우 생사를 벗어난다 함은 삶의 바닥 체험을 하고 번뇌가 괴로워 근심걱정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레븐슨의 말은 그러한 부정적 상황을 호출하지 않고 바로 '언제나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말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승을 지나가면서 누구나 지복 상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