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크하르트 입문 58

신과의 입맞춤~ 시간(3)

에크하르트가 신과 인간의 관계에 관하여 논의한 것 가운데 가장 선명한 것은 설교 53에 나타나는데 그 설교는 신의 이름을 형언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누군가 '아버지'라고 할 때 그는 '아들'을 안다. 아들이 없으면 아무도 아버지가 될 수 없고 아버지가 없으면 아들은 아들이 될 수 없다. 양쪽 모두 시간을 넘어 영원한 관계다."라고 에크하르트는 쓰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성은 그저 말만의 관계가 아니며 인간과 신이란 것의 의미를 본질적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같은 설교에서 그는, "신의 이름과 본성을 말로 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의미는 우리가 신의 "특성(Eigenschaften)"이라고 붙일 만한 무엇이 없다는 것이다. 신이란 무슨 특성이나 성질이 있는 존재로 볼 수 없다는..

신과의 입맞춤~ 시간(2)

초탈의 독일어는 버리고 떠나 있음(Abgeschiedenheit)인데 접두어 'ab-'는 분리(off, away)를 뜻하고 동사 'scheiden' 또는 'ge-scheiden'은 고립, 분리, 떨어짐 등 타동사의 뜻과 떠남이나 죽음 등 자동사의 뜻이 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 그것은 모든 이미지나 "창조된 것"에서 자유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모든 피조물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거기에 피조물이 없고 신이 존재하기 시작한다"고 하며 "모든 피조물이 비었다 함은 신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며 피조물로 가득하다는 것은 신이 없다는 것이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신과 합일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초탈의 뜻은 창조주(신)와 피조물(인간) 간의 근본적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 차이는 그저 인간이 초탈을 통하여 오르..

신과의 입맞춤, 초탈, 창조 및 시간(1)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사상의 핵심을 논한 Ferit Fuven이란 철학자의 글을 번역했습니다. 초탈(Abgeschiedenheit)에 대한 생각과 신의 이름을 언급할 수 없음에 관하여 설교하면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영혼의 신과의 합일을 입맞춤에 비유한다. 신의 이름을 달리 형언할 수 없다는 것은 "(신이) 내 입으로 말을 하였고... 그것은 영혼의 입맞춤이며 거기에서 입과 입이 접하고 '아버지'는 영혼 안에 '아들'을 낳고 또 거기에서 영혼에게 말했다." 에크하르트는 초월자(신)가 하위 존재에게 어떻게 자신을 드러내고 열며 나타나는지 설명하기 위하여 비슷한 맥락으로 입맞춤의 이미지를 사용한다. 입맞춤의 비유는 어떻게든 신에게 가까워지거나 하나가 될 가능성을 가리킨다. 초탈의 개념은 그러한 신과의 합일이..

신 의식과 인간 의식

다음은 1994년 펭귄북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선집(올리버 데이비스)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위 마하리쉬 님 가르침대로 우리가 영혼이니 마음이니 자아니 하는 것은 모두 개념일 뿐 실체가 아니며 오직 의식만이 실체라고 보는 것이 영적 진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글도 결국 우리 존재를 의식으로 파악한 말씀입니다. 게다가 그 의식을 탐구하려면 명상이 최선임을 시사합니다. 우리 전통에서 이 의식은 지눌스님의 공적영지, 탄허스님이 파악한 지(知)와 같습니다. 홀로 고요히 그리고 깊이 탐구할 때 느껴지고 알아지는 알아차림이 곧 의식입니다. "에크하르트가 디트리히 및 독일 도미니코회 학파의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핵심 생각은 '지성'의 본성 및 의미에 대한 치열한 관심인데 여기서 지성이라 하면 현대 용어에서..

'버리고 떠나 있음' 일부 인용

에크하르트를 1년 가까이 읽어도 제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깊고 높은 정신에서, 그리고 그분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그분의 강론 또는 설교들이 결코 통속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통속적이라고 할 때는 얕고 임기응변적이어서 누구나 쉽게 '다 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계발서나 일부 뉴에이지 영성 같은 것들이 그러하지요! 하지만 에크하르트의 문장들은 모순이 가득하여서 삶의 모순을 깊이 이해할 때까지는 괄호 속에 놓고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지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몇 구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제 생각을 살짝 덧붙이는 데 그치려고 합니다. = 정작 신의 뜻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화를 낸다... "아 그것이 다르게 이루어졌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또는 ..

고통과 역경에 대한 태도

수행으로서의 독서에 신적(divina)이란 형용사를 붙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독서에는 기술을 습득하거나 처세를 잘 하기 위한 독서가 있을 테고 많은 지식의 습득을 통해서 두루 통하는 원리를 깨치기 위한 독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독서는 그저 다다익선이라는 데 그치거나 통속과 자기 과시 등 에고에 복무하기 일쑤입니다.신적 독서 또는 영적 독서는 존재의 근본 진실을 파악하여 정의에 맞게 또 원만하고 완전하게 세상 삶을 살고 만족스럽게 세상 삶을 마무리하여 더 높은 경지로 무한히 향상해 가려는 높은 이상에 부합하는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진리에 부합하는 삶과, 자연에 새겨진 진화의 목적을 성취하려는 것이 수행으로서의 독서이기 때문에 지식의 축적보다는 삶이나 존재의 변혁과 향상..

동서 수행의 공통점

10개월째 에크하르트를 읽고 있습니다. '고귀한 사람'의 내용 가운데 아우구스티누스의 의식 성장 여섯 단계를 소개했지만 이 설교는 동아시아의 보살도에 조응하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극기복례나 멸정복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수행의 요점에 대해서는 동양 방법론과 일치합니다. 그래서 저자는 솔로몬의 노래인 아가 1:5를 인용하면서 아가의 주인공이 매력적임에도 얼굴이 검게 보이는 사유를 설명하는데 사연인즉 포도원을 돌보느라 햇볕에 그을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최고의 피조물인 해로 인해 우리 존재에 새겨져 있는 "신의 상"이 덮여진 상태가 바로 그을린 피부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잠언을 인용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알려줍니다. 즉 "은으로부터 녹을 닦아 내거라. 그러면 가장 빛나는 그릇이..

'버리고 떠나 있음' 해설

에크하르트는 토속어, 즉 독일어로 대중을 위한 강론을 한 아마도 최초의 성직자였습니다. 그의 시대에 인쇄술이 발달했다면 어쩌면 루터의 시대는 앞당겨졌을지도 모릅니다. 이부현 님의 선집에 독일어 주요 설교가 네 편 번역돼 있는데 이 설교들에서도 그의 생각의 핵심이면서 앞에 소개한 세 가지 논고의 주제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버리고 떠나 있음'이란 제목이 붙은 설교에 저는 '신인합일에 대한 고찰'이란 요약을 붙여봤습니다. 왜냐하면 신인합일이란 명상의 궁극목적이면서 제가 배우는 명상에서도 "자신을 신께 바치고 모든 정성을 다하여 신의 의지만을 따르고자(206쪽)"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편지' 메시지에 따르면 명상에서 "삶을 스스로 감당하려는 의지를 비우"라고 합니다. 에크하르트는 "병이든 ..

적자지심에 이르는 길

오늘은 제가 발견한 재미있는 관점을 하나 제시해보려 합니다. 동아시아에서 갓난아이 마음(赤子之心)은 대인 또는 성인의 마음이라 합니다. 한편 바이블에서도 아이처럼 되는 게 천국 진입의 조건이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불명확한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바에 따르면 엊그제 언급했던 대로 우리 사고틀과 감정습관이 이진법 프로그램 덩어리임을 인식하고 마치 컴퓨터를 초기화하듯 모두 삭제하는 것이 긴요하며 그 방편이 바로 정좌(정관 또는 관조)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하는 경지가 노자와 에크하르트에게서 동일한데 바로 무지입니다. 갓난아이의 무지에 도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무지가 있는 곳에 결함이 있고 헛됨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선집

이부현 님이 편집하고 번역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선집'은 주요 논고를 연대별로 정리했기에 읽기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제 독법은 그의 생각을 동아시아의 가르침과 대응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강화(또는 훈화)는 대학-중용에 조응시켜 봤습니다. '신적 위로의 책'은 인생에서 겪는 상실과 고통을 대하는 방법을 세세히 논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일관되게 플로티누스와 성서를 융합하면서 완전한 초탈, 완전한 순명을 통해 신과 일치하는 요점을 반복해서 논합니다. 이미 썼지만 우술라 플레밍은 에크하르트의 방법만이 고통에 빠진 환자들에게 효험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고귀한 사람'까지 소개했는데 이 부분은 요컨대 깨달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거기에 이를지 세 가지 비유, 즉 흙의 제거로 씨앗을 드러냄, 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