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324

사전 투표일 풍경

사전투표 풍경이 무척 평화로와 보이고 무엇보다 벚꽃과 개나리 등 봄의 생명력이 마음을 기쁘게 해줍니다. 동사무소 5층에서 일부러 계단을 내려오다 만난 서화를 올렸습니다. 달빛을 먹는다는 표현에 매혹되었죠! 새 직장 근무 40일만에 급여도 받고 무엇보다 처음에 못마땅해 하던 시공사 과장이 제 근무 태도에 불만이 없다고 했다기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모든 스트레스의 원인을 내 탐진치를 비롯한 에고에서 찾으라는 게 반구저기(反求諸己)의 가르침입니다. 지난 연말 이후 극기복례-멸정복성의 또 다른 교재로 에크하르트의 훈화(영적 강화)를 실천코자 노력중인데 우연인지 4월 들어 블로그 방문자도 일평균 90회가 넘고 있습니다. 이미 거론했지만 '훈화'는 그리스도의 첫째 계명인 신애(神爱)의 서(書)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단상 2020.04.11

수행과 집단 의식의 향상

아침에 만난 말씀이 우주의 욕망, 다른 말로 근원의 의도에 소아 또는 내 욕망을 일치시킬 때 모든 것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라는 부분 우주가 전체 우주에서 나왔는데 그 전체 우주 자리에서 보기보다 나라는 소아 입장에서 보기 때문에 매사 뜻대로 안 된다는 것이죠! 우선 소아는 몸의 생존에 진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습(習)이 되어 굳어진 것이 아집 내지 고집이 되면 우주의 뜻을 파악하기 어려워집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시공간의 자리(position)를 차지함으로써 우주의 관점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다이몬의 소리를 듣는 경지에 이르러 아테네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언행을 계속하다 그들을 견딜 수 없게 만들어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스도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뜻이 당신의 ..

단상 2020.04.01

신애(神愛)와 천인합일

제가 초등학생때 천주교 세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부친 따라 집안 제사에 모두 참석했습니다. 두 종교가 제사를 핵심으로 하고 있는데 형식에 불구하고 모두 하늘에 제사하는 것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이때 하늘은 물리적인 게 아님에도 가시 세계로 향하는 순간 신플라톤주의에서 말하는 다수성에 빠집니다. 달리 말하면 우상숭배에 빠집니다. 기독교의 실패나 유교의 실패나 오십보 백보라고 생각합니다. 홀로 고요히 앉아 있을 때 대면하는 허공과 같은 무엇이 바로 천인합일이라 할 때의 하늘이며 기독경에도 '고요히 있으라 그리고 내가 신임을 알라'고 해서 가시계의 신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내면의 하늘에 전력투구하라는 게 중용이고 그리스도의 1계명입니다. 하근기를 위한 십계명이나 유교의 예에 관한 디테일 모두 거기에 사로..

단상 2020.03.24

명상의 조건과 효능

운 좋게 처음으로 낸 책이 명상을 주제로 하는 책입니다만 이 간단한 공부는 서양의 신비가들과 동아시아 선비들이 실천했던 수행의 중추 가운데 하나입니다. 거기에 독서만 보태면 누구나 수행 공부를 제대로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쪽에서는 주로 정좌 혹은 좌선이라고 하는데 그저 앉아 있는 것이 기본이고 '선'자까지 붙으면 바로 제사를 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한자 '선'의 어원이 하늘에 제사지낸다는 뜻입니다). 어제 오늘 명상이 잘 되었는데 제 경우 그 판단 기준은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간 것으로 느껴지나 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명상에서 초월 체험이나 신비 체험을 기대하지만 우리 존재에게 그 상태가 항구하게 이뤄지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비슷한 체험은 임사체험, 유체이탈..

단상 2020.03.23

이승을 잘 지나가기

이번 생, 즉 몸 살이의 목적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일상의 버거움을 느끼지 않는 분은 드물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는지 모릅니다. 그것이 성령으로 새로 난 상태인지 모르지만 신비체험 또는 신인합일 등 몸을 벗어난 체험을 하신 분들 얘기를 듣거나 읽어보면 세상에 다시 개입하기 싫은 느낌이 들거나 또는 이 세상과 다음 세상 간에 그 어떤 선호도 없어진다고 합니다. '곡기를 끊는' 경지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결국 몸과 마음이 고달프지 않으면서 궁극의 만족과 기쁨, 그리고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잠재한 바람이지 싶은데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정확히 알고 실천하는 이를 찾아보기 드문 게 현실입니다. 숙명처럼 일터를 향하면서 떠오르는 상념들이 ..

단상 2020.03.21

공관복음과 자아포기

잘 아시겠지만 공관복음이라 함은 네 개의 복음 가운데 공통된 부분을 묶은 것입니다. 대개 마태오, 루가, 마르코 복음의 유사성에 비해서 요한복음은 조금 맥락이나 표현방법이 다릅니다(말할 필요도 없는 게 제 지식은 '얕게 넓은' 것을 지향하기에 '깊게 좁은' 것을 기대하시지 않으실 줄 압니다). 자주 거론하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또는 영적 강화)는 거의 마태오 16:24의 자아포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에고 또는 소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을 완전히 비울 때 신이 우리 존재를 지배하는 천국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완전히 생각이 끊어져 희로애락이 나오기 전 상태인 중을 얘기하는 중용이 바로 연상됩니다만 이 점은 동서 영성의 핵심이자 공통점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마태오 16:24는, 마르코 8:..

단상 2020.03.18

일상이 모두 도량

함께 수행공부하는 분께 제 에고 분석을 부탁했더니 교사가 될 운명이라고 합니다. 제가 여러번 소개한 관음경 설화에 따르면 공부의 단계는 경전의 암기, 해석, 체험의 세 단계를 말합니다. 처녀로 화현한 관음과 결혼할 자격을 얻으려면 궁극의 가르침을 체험해야만 합니다. 지금 전력을 기울이는 일이 바로 이 일이기 때문에 이번 생에서 제대로 체험하게 되면 일부러 교사노릇 하려 하지 않아도 제 덕을 볼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전생 이래, 특히 이번 생에 어리석음(치심) 때문에 지은 업장을 지우는 데만 시간이 부족할 지경입니다. 오직 근원(부처님 또는 그리스도)의 가피를 얻어 성취하기만을 빌고 있습니다. 소승을 쉽게 비판하지만 평생 봉쇄 수도원에서 도를 닦기만 해도 모든 의식은 통으로 하나이기 때문에 제대로 ..

단상 2020.03.16

기독교의 자연사

저를 포함해서 비유와 실재를 언제나 정확히 분별하는 데 사람들은 대체로 무능합니다. 그래서 스승들이 체험한 영적 실체에 대한 설명은 수도 없이 왜곡에 왜곡을 거칩니다. 며칠 전 거론한 '새로 남'에 대한 대화에서 니고데모는 당대 최고 지성의 반열에 있었지만 그리스도 말씀을 못 알아듣습니다. 이어서 6장에서 피와 살을 먹는다는 비유에서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오래 생활했음에도 못 알아듣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기독교의 일파인 가톨릭은 이 비유를 말 그대로 알아들으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사용한 '아버지'란 말도 무조건적 사랑이자 우주의 근원 에너지를 지칭하는 말임에도 사람들은 인격으로 알아듣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주워들은 모든 것을 지워버리고 그리스도의 말씀 자체의 진정한 의미만을 이해하고 그분이 실천한 대..

단상 2020.03.12

끝까지 파기

맹자를 복습하는데 뒤에서부터 하기로 했습니다. 대개 경전 읽기를 하다보면 앞에 너무 비중을 두게 되어 뒷부분이 마치 중요하지 않은 것 같은 착각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읽다가 그만둔 적도 많고요~ 며칠간 뇌리에 강렬하게 남는 대목은 진심 상편의 우물 파는 비유입니다. 우물을 아홉 길이나 팠더라도 물 나오기 전에 중단하면 애초에 포기한 것과 다름없지 않냐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주어는 그냥 '행하는 자(有爲者)'로 되어 있는데 저는 행함의 목적어를 유교의 이상인 내성외왕(內聖外王) 가운데 내성으로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진심장 앞의 고자 상편에서 천작과 인작을 나누어 반드시 천작이 앞서야 한다고 하였고 고자 하편에선 의식주와 예를 비교하여 다시 본말을 따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조선시대 모든 사람..

단상 2020.03.02

참된 평안

함께 공부하는 분이 올려주신 묵상자료를 보고 전염병이 가져오는 혼란과 불안과 불쾌함이란 게 그 전에 이미 수면 아래 있던 것들이란 걸 느낍니다. 적의와 독기를 품은 의식들이 탐욕과 폭력을 통해서 세계 곳곳을 뒤덮고 있었다는 얘깁니다. 기록된 인간 역사의 약 93%가 전쟁 역사였고 나머지는 페스트 같은 전염병 역사였다 합니다. 제 몇십년 사회생활 경험상으로도 세상에 적응하고 거기서 안락을 구하려던 모든 노력이 그렇게 잘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퇴직무렵엔 오히려 세상의 부패함 속에 깊이 동조해서 바닥에까지 들어갔습니다. 큰 실패를 겪지 않았다면 아직 그 속에서 일희일비 하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이제 몸은 세상에 있더라도 매일 신 의식의 보호와 복락만을 구하며 삽니다. 세상에 있더라도 세상 것이 되지 ..

단상 2020.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