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3 9

동아시아의 성인

아침에 제주도 놀러가는 아내를 전철역에 데려다주고 검색하다 만난 당나라 방거사님에 대해 읽었습니다. 며칠후 나올 책이 기독교와 신유학을 같은 반열에서 공부해야 한다는 전제 위에 쓰인 것이라서 방거사님 삶을 읽자마자 '아 프란치스코 성인이네!'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소유와 청빈의 삶을 살은 점은 같은데 어쩌면 프란치스코 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평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분은 평범한 가정을 꾸려 살았고 딸이 먼저 좌탈입망하는 기적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오직 기술문명에 뒤진 이유로 오히려 인도 성인들보다 폄하된 느낌인 것이 동아시아의 성인들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보시라고 링크합니다. "[죽음을 철학하는 시간] 방거사 : 비움의 미학 - 불교신문" http://www.ibu..

단상 2022.03.30

놓아버린 마음

맹자님은 학문이 다른 게 아니고 놓아버린 마음을 찾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 블로그가 거듭 강조하는 것은 유학의 학을, 기술이나 콘텐츠 학습으로 보지 말고 심학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입장이 갈리면 초기 조건의 민감성 원칙에 따라 도달하는 지점이 크게 달라집니다. 심학이라 하면 요즘 말로는 영성 수련이 된다고 봅니다. 살면서 바깥 세상의 운영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환경에 적응하다 보면 타고난 마음, 즉 아이 마음(赤子之心)을 잃어버리고 도와 덕에서 벗어난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을 놓아버린 상태입니다. 그러니 바깥 사정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되고 홀로 있을 때를 견디지 못하여 오락에 빠지거나 아니면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분으로 이런저런 중독에 빠집니다. 건강이 크게 악화하거나 손재수나 ..

경(敬)의 실천

기독교도 그렇지만 유교도 가르침의 참 의미를 밝혀 실천하는 이가 드물어 통속적 해석에 머물고 다 안다는 생각 때문에 변혁의 동력이 되지 못합니다. 이 블로그가 강조하는 성(誠)이 대표적입니다. 성은 한 마디로 말하면 의식에서 숨길 수 있는 게 전혀 없으니 완전히 투명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다음에 중요한 것이 경(敬)입니다. 경이란 윤집궐중을 실천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있기 위해서 일이 없을 때는 정좌하고 불려불사(弗慮弗思)해야 합니다. 주자어류에서 옮겨 옵니다. "경은 별다른 물건이 아니다. 그대의 정신을 하나로 모아서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일 뿐이다. " "경을 지니면 천리(天理)가 밝아져 인욕(人欲)이 억제되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인욕이 사라질 때까지 닦아야..

명상일기

제 공부교재에서 매일 명상일기를 쓰라고 합니다. 꼭 명상후에 쓴 건 아니지만 수행공부를 하면서 또는 일상생활에서 부대낀 일들을 계속 적었습니다. 얼마전에 훑어보니 지리멸렬하고 구태의연한 모습이 계속 적혀 있었습니다. 약 5년치를 내다 버리고 2,3년 전 것을 읽어보니 참으로 진보가 늦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금은 나아진 점도 있지만 저지르는 결점들이 뿌리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위안을 삼는 것은 예를 들어 매일 영어 공부를 한다면 그 진보가 얼마나 더딘지를 매일 인식하지만 그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는 나을 것입니다. 그리고 공부를 안 할 때는 진도가 빠른지 느린지 관심도 없을 것이고 당연히 진보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위안을 삼으며 오늘도 지난 밤 꿈이라든지 어제 친구에게 쓸데없이 비판을 가..

단상 2022.03.26

존재상태와 의식, 생각

이 블로그는 우리 현실이자 실체는 의식이며 그 의식의 상태가 바로 우리 존재상태를 결정한다고 봅니다. 이 존재상태가 밝아지고 향상하지 않는다면 삶이 신산하고 괴롭게 됩니다. 존재상태의 점검은 주된 생각이 어떤지를 보면 됩니다. 생각은 내 의지나 의사와 관계없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관찰해서 부정적인 것과 결별하고 긍정적이고 고차원적인 생각이 지배하도록 하기 위해 취하는 일이 명상입니다. 세상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어려서 주입된 사고틀(프로그램)은 유치하고 잡스러운 게 대부분입니다. 명상을 통하여 그것들을 해체하고 놓아버리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평생 노력하면서 의식이 상승하면 우리 존재상태도 점점 높아지므로 우리 현실이 모두 개선됩니다. 마하리쉬 님에 따르면 공부의 진도확인은 생각이 안 일어나..

반성의식의 소멸

정은해 님의 유교명상론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훈화가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는 지점은 반성의식의 소멸이다. 덕을 행하는데 그냥 느닷없이 나오는 게 아니면 실상 덕의 실천이라는 게 강압이거나 위선, 그것도 아니면 그저 강학용이 될 가능성이 큰 것 같다. 인을 실천하는 데 밥 먹는 동안이나 엎어지고 자빠질 순간에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논어 말씀도 같은 맥락이다. 거기에 이르는 데는 그저 오래 연습해서 몸에 밴 경지가 아니면 안 될 것이라는 걸 훈화 말씀에서 발견한다. 즉 "글쓰기를 완전히 익히고 난 후에는 글자 모습을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그는 이제 머뭇거리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쓴다." "그가 악기 연주를 할 때 계속 의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연주를 완벽하게 수행해내고 연주중 무슨..

신비 영성

신비주의 영성은 불온한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제사장만이 신을 만난다는 가정이 제도교회를 지탱하는 바탕인데 여기에 반하는 게 신비주의다. 신비주의의 핵심은 각자가 노력해서 신을 체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신비주의는 주권이 유권자에게 있다는 공화정 이념만큼 혁명적이다. 두 생각이 탄압의 역사를 지나왔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민주공화정은 교회, 특히 교황과 위계를 신주처럼 지키는 로마교회에도 위협적인 것 같다. 요컨대 앞으로의 영성은 탈종교의 신비주의가 대세라고 본다.

단상 2022.03.21

다음 목표

그 동안 마음에 있는 것은 꾸준히 적어 버릇했습니다. 아주 우연히 3월 10일부터 신유학과 깨달음에 대한 주제로 4~5년 구상했던 원고를 마무리하고 출간 준비중입니다. 쓰고 보니 블로그 글 수가 1080이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오늘 두 번째 글을 올리면서 다음 계획도 적어두려고 합니다. 그것은 대략 2년후 칠순 무렵에 의식과 깨달음에 대해 공부한 것을 잘 정리해서 두 번째 책을 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단상 2022.03.18

생각끊기, 명상의 목적

명상의 주목적 가운데 하나는 생각끊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을 끊으면 어떻게 되는지, 또는 왜 생각을 끊는지 명료히 말해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에 대한 답이 될 만한 말씀을 만났기에 소개합니다. 에카르트 톨레 님입니다. "자유는 당신이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시작된다. 생각하는 자를 바라보기 시작하자마자 높은 의식 수준이 작동한다. 그러면 생각 너머에 광대한 지성의 영역이 있으며 생각이란 그 지성의 극히 일부분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이제 진짜 중요한 모든 것(아름다움, 사랑, 창조, 기쁨, 내적 평화 등)은 마음 너머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것도 알게 된다. 당신은 비로소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