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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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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1'에 해당되는 글 2

  1. 2019.08.11 교만의 치료약
  2. 2019.08.11 격물치지와 중화(中和)

교만의 치료약

2019.08.11 08:19 | Posted by 목운

오늘은 번역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합니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님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 등의 방법으로 독일어의 수준을 크게 높이는 일도 했다 합니다. 똑같은 언어라도 의식 수준에 따라 의미와 용도가 다릅니다. 천 년 가까이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신비 신학가의 한 분이시기에 당시 쓰이는 용어들이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

제가 사숙하는 호킨스 박사도 그런 편인데 그의 텍스트에는 'positionality'라는 말이 꽤 의미심장합니다. 몇 년을 숙고해도 가장 적당한 우리말 번역이 안 떠오르다가 최근에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대단한 성취를 한 사람이라면 조어도 할 수 있겠지만 차선책으로 정한 게 '아집(我執)'입니다. 더 좋은 생각이 있으신 분께 조언을 구합니다.

'위치성'이나 '자리잡기'와 같은 것은 단번에 느낌도 안 오고 문맥에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이 말은 이원성에 기반해서 한 가지 입장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남을 심판하며 나아가 교만을 떠는 성향을 말합니다. 이 한 가지만 극복해도 우리 의식이 엄청 높아진다고 보아 박사는 자주 거론합니다.

관련 구절 하나 옮깁니다. "교만의 치료약은, 중요하다거나 올바르다는 의식, 맞먹거나 되갚으려는 것, 비난하기를 즐기는 것, 칭송 받기를 추구하는 것 같은 '아집' 대신 겸손과 투명성을 취하는 것입니다. 성취에 대한 모든 영예는 에고가 아니라 신성의 현존인 신에게 돌립니다. 따라서 무언가를 성취하면 비난에 쉽게 노출되는 자부심이 아니라 감사와 기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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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물치지와 중화(中和)

2019.08.11 08:17 | Posted by 목운

8~9세기를 살으신 이고 선생은 인척인 한유와 더불어 타락한 불교를 극복하기 위해 유교를 재해석한 분입니다. 특히 대학의 격물치지를 깨달음 이후의 일을 처리하는 원칙으로 보고 그 바탕에서 수신제가와 평천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대승이 성취된다고 본 것입니다.

즉 격물이란 일이 닥친다는 뜻이고 치지란 일이 닥칠 때 그 마음이 초탈하고 완전히 객관적이 되어 일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物至之時, 其心昭昭然明辨焉, 而不應於物者, 是致知也, 복성서 중편 2절-3, 제 블로그 참조)이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 이때야말로 에고를 벗어난 것이며 가장 공(公)적인 상태가 됩니다. 또한 이때는 전혀 숨김이 없어 완전히 투명하며 에고의 집착이 없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 치우침이 없게 됩니다. 저는 이 경지가 바로 중용에서 말하는 중 이후의 화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이때 유교의 가장 큰 이상 가운데 하나인 성(誠)이 구현된다고 봅니다. 성이란 모든 것이 완전히 투명하여 바로 공(公)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성리학 군자의 이상이기도 한 신기독의 구현이자 천청일백(天靑日白)한 투명성이 확보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까지 이해하고 실천한 성리학자만이 진정한 성리학자라고 보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그렇지만 성인이 되려는 근본 결단과 명상을 통해 신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할 정도의 내면의 성취 없이 그저 암기만으로 고시에 붙고 벼슬을 사욕 채우는 데 쓴 관료가 조선에도 많았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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