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이미지
'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목운

공지사항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calendar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2019/03'에 해당되는 글 7

  1. 2019.03.31 도덕경 73장을 숙고함
  2. 2019.03.29 충효(忠孝)와 지어지선
  3. 2019.03.22 맬웨어와 명상
  4. 2019.03.16 존재상태로서의 하느님 나라
  5. 2019.03.14 다시 종심소욕불유구
  6. 2019.03.08 명상의 목표
  7. 2019.03.02 어떻게 살까?

도덕경 73장을 숙고함

2019.03.31 09:13 | Posted by 목운

도덕경 73장은 "하늘의 그물이 크고 넓어서 엉성하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天網恢恢 疎而不失)"는 게 핵심이지만 앞뒤를 제대로 읽어보니 전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징벌하는 하늘(서양의 경우 하느님)을 전제했지만 제 공부가 진전하면서 징벌하는 하느님은 없다는 것을 이제 압니다. 그래서 자세히 읽으니 73장은 하늘의 궁극적 진리(天之道)에 관한 설명입니다.

즉 위 인용구 바로 앞에 하늘이 "넉넉하면서 잘 꾀한다(繟然而善謀)"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요즈음 첨단 과학과 영성이 상정하는 바와 같이 하늘을 궁극의 의식으로 보아야 하고 그렇게 보면 인간 의식을 포함하는 궁극의 의식(무극 또는 태극) 안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풀고 싶습니다. 제가 가진 김하풍 님의 도덕경 풀이도 하늘의 그물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그것을 피할 수 없다"고 풀고 있습니다.

인간은 예외없이 자신의 모든 사언행위와 그 깊은 동기를 하늘에 새겨놓고 그 결과를 하나도 남김없이 거둔다는 것은 그저 자연법이라고 보면 될 듯합니다. 이와 같은 인식은 가톨릭의 공심판 교리나 유교의 성(誠)에 대한 가르침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영원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것이 지금 이 순간 온갖 의식의 총체가 창조한 것이기에 흠없이 완전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창조는 영원히 계속되는 진행형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독의 극복  (0) 2019.06.20
왜 극기복례인가?  (0) 2019.05.08
도덕경 73장을 숙고함  (0) 2019.03.31
충효(忠孝)와 지어지선  (0) 2019.03.29
맬웨어와 명상  (0) 2019.03.22
다시 종심소욕불유구  (0) 2019.03.14

충효(忠孝)와 지어지선

2019.03.29 07:15 | Posted by 목운
어제는 차량 점검 때문에 아내와 아들을 출근시키고 정비소로 갔습니다. 이야기 중에 제가 애들이나 조카들에게 기회만 되면 일관되게 얘기하는 충효에 대해 반복했습니다. 가족과 대화할 때는 맥락이 딱 맞는 기회가 올 때 교훈적인 얘기를 조금씩 하는 게 긍정적인 세뇌의 기회입니다.

내용인즉 '자신의 존재 상태를 최적, 최상으로 가져가는 게 효도요 충성이며 신에 대한 찬미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신 의식을 품부받았고 따라서 사고에 의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으니 공부를 통해 무엇이 최적, 최선의 존재상태인지는 스스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게 마땅합니다. 게다가 부모된 자는 삶으로 그 지침을 시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를 포함한 교육기관에서 배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이 세상 마칠 때까지 몸과 사회적 존재상태를 최적, 최선으로 경영해나가는 지식일 것이고 다음 차원의 삶까지 최적, 최선으로 가져가는 공부도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높은 차원에서 보면 부모-자식도 스쳐가는 관계이고 바라건대는 자식이 모든 면에서 부모를 뛰어넘는 것이 부모로서는 성공적인 삶을 산 것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써놓고 보니 대학(大学)이 왜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말하는지 이해됩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극기복례인가?  (0) 2019.05.08
도덕경 73장을 숙고함  (0) 2019.03.31
충효(忠孝)와 지어지선  (0) 2019.03.29
맬웨어와 명상  (0) 2019.03.22
다시 종심소욕불유구  (0) 2019.03.14
명상의 목표  (0) 2019.03.08

맬웨어와 명상

2019.03.22 05:44 | Posted by 목운
지난 토요일 부부동반 친목회에서 이야기 나누다가 외국에서 쓸 수 있는 내비게이션 앱을 다운받는다고 두어 차례 시도했습니다(나중에 알고보니 구글맵만 있으면 된답니다). 그런데 착각인지 실수인지 엉뚱한 앱을 다운받은 것 같습니다. 가끔 게임하는 소리도 들리고 보험 세일 장면과 광고화면이 폰만 열면 뜹니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해서 이리저리 안내받아도 안되어 센터로 가야할 상황이었습니다. 어제 구글 검색창에 맬웨어를 쳤더니 최근 다운한 앱을 찾아서 차례로 지우랍니다. 사실은 그것을 파악 못해서 5일을 끌었던 것인데 침착하게 의심가는 놈 하나를 지웠더니 폰이 깨끗해졌습니다. 

이 체험이 마침 읽는 실용 명상의 핵심 하나를 일러주길래 길게 써봅니다. 마하리쉬 님은 명상이 진척되면 생각을 완전히 통제하게 된다고 합니다. 즉 원하는 생각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이르기 위해 여러 안내들이 있는데 가장 공통되고 오래 된 것이 과거 추억과 미래 기대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이 지금 성가시게 하는 모든 부정적 감정을 최대한 느껴보고 결별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창조력의 원천이기 때문에 사회생활 시작 이래 또 문자와 영상을 접한 이래 마구 들어와 차지한 모든 생각을 점검해서 맬웨어에 해당하는 것을 지워버려야만 긍정적이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실용 명상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특히 감정 하나에 수천, 수만의 생각이 뭉쳐 있기에 이곳에서 '호킨스 방하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SNS에서 이것저것 구독한 것이나 스마트폰에서 다운받은 앱들처럼 여기저기서 의식, 무의식중에 또는 엉겁결에 받아들인 모든 생각이 내 운명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앞날을 창조하기 때문에 매일 명상 또는 그것을 대체할 무엇인가(일기, 묵상 등)가 매우 긴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도덕경 73장을 숙고함  (0) 2019.03.31
충효(忠孝)와 지어지선  (0) 2019.03.29
맬웨어와 명상  (0) 2019.03.22
다시 종심소욕불유구  (0) 2019.03.14
명상의 목표  (0) 2019.03.08
죽기 좋은 경지  (0) 2019.02.08

"하느님 나라는 온전히 하느님('아버지')의 것이 된 마음과 가슴의 어떤 상태입니다. 이런 상태에 있게 되면 아버지가 여러분 몸의 수뇌(head)가 되어서 여러분의 모든 행동과 삶의 모든 것을 지휘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자아를 비우는 것, 자아의 욕망, 적의, 화, 질투, 탐욕, 앙심 등을 완전히 비워서 여러분 마음과 가슴 속에 오로지 하느님만이 남아 주재하실 수 있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하느님이 주재하는 존재 상태로 들어갑니다. 그것은 너무 아름답고 거룩하지요.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로움이며 자신을 아끼는 것과 같이 다른 이들을 아끼는 것이며 다른 이들을 정확히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심판하지 않는 것이며 그들 또한 아버지 보살핌 속에서 동등한 하느님 자녀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것은 측량할 수 없고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며 세상의 아름다움 속의 환희이며 무한한 생명이요 넘치는 기운이요 건강이며 자신이 그런 요구를 품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모든 것이 성취되는, 그런 상태입니다."(그리스도의 편지,171~172쪽)


-- 제가 근본 결단을 하게 된 구절이 "생사를 벗어나려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갈을 없애라"는 선가귀감 말씀입니다. 결국 탐욕을 끊고 애갈을 없애는 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라는 존재 상태를 갈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동아시아 모든 교양인은 이러한 존재 상태를 목표로 공부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극기란 멸정(滅情)의 길이며 극기가 되는 만큼 비이원성(nonduality)에 가까워지는 것이고 비이원성에 도달하는 만큼 황금률 실천이 쉬워질 것입니다. 이 길의 끝에 신인합일 또는 천인합일이 있으며 모든 것은 에고를 얼마나 비워내는가에 달린 일입니다. 기도와 인내, 이 길에 대한 굳센 믿음, 그리고 끝없이 방하착(letting go) 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의 선언과 공부의 요점  (0) 2019.05.17
진정한 이상, 최고의 목표  (0) 2019.05.13
존재상태로서의 하느님 나라  (0) 2019.03.16
공부의 요지  (0) 2019.01.18
현세와 내세에 필요한 것의 충족  (1) 2018.07.29
'편지'의 의식 지수  (1) 2018.07.09

다시 종심소욕불유구

2019.03.14 08:17 | Posted by 목운
어제는 아들 생일 축하를 위해서 외식을 했습니다. 해주고 싶은 말이 다음과 비슷한 말이었던 것 같았는데 변죽만 울렸습니다. 제 경우도 그랬지만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데다 주변 사물과 사람이 거의 언제나 짐스럽게 느껴집니다.

그 가운데서 좀더 나은 환경이나 신분, 혹은 조건을 위해 끝없이 움직이려는 동력을 느낍니다. 간단히 다르게 표현하면 언제나 갈등 상황입니다. 옮기는 것은 호킨스 박사 말인데 이분도 성공의 꼭대기를 체험했고 무신론 생활 중에는 지옥과 같은 고통을 고백한 적 있지요!

"주관적으로 보면 진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은 인내, 기도, 과정에 대한 굳센 믿음, 그리고 저항하길 그치는 것이다. 날씨 변화처럼 혼란은 인내로 사라지는 조건이자 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조건이며 다음 단계에서 그 혼란스런 조건은 초극된다."

제가 볼 때 공자님 말씀하신 지천명과 이순에 터득할 경지이며 다른 말로 순명이지 싶습니다.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내면으로 깊이 들어감과 동시에 의식이 위로 더욱 올라갈 때 종심소욕불유구가 가능할 것입니다. 바이블 용어로는 '세상에 거하되 세상 것이 아닌 삶'을 살게 되리라 봅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충효(忠孝)와 지어지선  (0) 2019.03.29
맬웨어와 명상  (0) 2019.03.22
다시 종심소욕불유구  (0) 2019.03.14
명상의 목표  (0) 2019.03.08
죽기 좋은 경지  (0) 2019.02.08
물리적 존재 상태로서의 사랑  (0) 2019.01.21

명상의 목표

2019.03.08 06:38 | Posted by 목운
출근 전에 10여분이 남아 시간 활용에 가장 좋은 명상을 했습니다. 마음의 풍경이, 그냥 앉아 아무 생각없이 쉬는 것 하고 자명 시계를 걸어놓고 명상하는 것 하고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명상을 해본 분은 아실 겁니다.

명상은 내면으로 향한다는 분명한 의도를 실천하는 일입니다. 엊그제 썼지만 BE, DO, HAVE 가운데 BE, 즉 존재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과업이며 동아시아의 제대로 된 지성은 모두 이것을 최대, 최우선 과업으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존재 상태를 끝없이 향상시켜 가는 이유는 천인합일을 이루는 것이고 힌두 전통에서는 비이원성에 도달하는 것이고 서양 신비주의에서는 신인합일이 목표입니다. 그런데 인간 마음이 동서 불문하고 같다면 결국 모두가 한 지점에서 만날 것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겁니다.

돌아보면 약 30년 현역 생활 동안 지금처럼 확고한 나침반을 가지고 흐트러짐 없이 정진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회한이 없지 않기에 또 언제나처럼 비슷한 얘길 풀어 놓았습니다! 물론 어머니 덕에 부실하나마 천주교에 입문한 게 아주 망해버리는 일은 막아 주었지 싶습니다.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맬웨어와 명상  (0) 2019.03.22
다시 종심소욕불유구  (0) 2019.03.14
명상의 목표  (0) 2019.03.08
죽기 좋은 경지  (0) 2019.02.08
물리적 존재 상태로서의 사랑  (0) 2019.01.21
수행의 초점  (0) 2019.01.09

어떻게 살까?

2019.03.02 21:18 | Posted by 목운
인문학이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도록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아서 비슷한 소리를 계속 달리 말해 봅니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제가 볼 때 Σ(BE+DO+HAVE)입니다. 빠진 게 있을까요?  편의상 BE, DO, HAVE를 1, 2, 3으로 표기합니다. 젊었을 때는 세상이 그렇게 짜여져 있기 때문에 2와 3으로 미루어 1을 짐작하거나 2와 3에 열중하다 보면 1이 해결되는 것으로 아는 게 보통입니다.

한편 1에 인작과 천작이 있다고 본 분이 맹자입니다. 공경대부 같은 세상의 신분이 인작이고 끝까지 선을 추구하는 것(樂善不倦)이 천작입니다(고자 상). 사실상 외견을 구한다는 점에서 인작은 2나 3에 속한다고 봅니다. 그러니 천작을 추구함이 마땅한 것 같습니다. 인작이 다라는 생각을 끝까지 고수하면 이명박근혜나 양승태 같은 인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하게 사는데 어느 정도로 선해야 합니까? 종교에서 인정받고 세상에 통하자고만 하면 위선이나 통속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게 살기에 아직 세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무한히 최고의 선을 향해 갈 것(止於至善)을 목표로 하되 경전과 내면의 스승만을 따르는 게 답입니다. 제대로만 한다면 소크라테스처럼 신의 소리를 천둥처럼 듣고 그리스도처럼 신의 말씀을 음식 삼게 될 것입니다.

뒤늦게라도 낙선불권에 전력을 다해서 우리 존재 자체가 가장 높은 의식 상태이기도 한 '사랑과 평화'가 될 때 비로소 참으로 기쁘고 행복할 것이라는 것, 그때 1로 인해 저절로 이뤄지는 2와 3이 진짜라는 것, 그래야만 몸을 벗은 후에도 괜찮으리라는 것이 사서삼경이 말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을 성취하기 위한 기초 훈련이, 즉 구구단이나 알파벳에 해당하는 게 명상과 성찰, 또는 거경궁리와 반구제기, 아니면 좌선과 계정혜라고 생각합니다.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부의 핵심 요점  (0) 2019.05.20
무심(無心)과 힘 빼기  (0) 2019.04.24
어떻게 살까?  (0) 2019.03.02
세상을 바꾸기  (0) 2019.02.28
군자와 성인의 차이  (0) 2019.02.27
종심소욕불유구에 이르기  (0) 2019.02.22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