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상투적인 것 또는 통속적인 것이 되며 누구나 자기식으로 다 안다고 생각하여 제한적인 것이 되어버리고 그 힘을 잃어버립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소위 '하나님'이죠! 그래서 명상에도 이름을 붙이지 말자고 하는 것입니다. 조선 선비로서 경전을 제대로 실천한 사람은 누구나 명상을 했지만 거기에서 불교적 냄새를 찾을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라고 봅니다. 요컨대 혼자 있을 때 근신하는 '신기독'과 희로애락이 나기 전 시공이 끊어진 자리를 지키는 '수기중'은 성리학적 실천의 핵심이기에 중(中)이 바로 '천하지대본'이 된 것입니다. 성리학은 미신과 마구 영합하고 통치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불교 극복 노력에 다름 아닙니다. 그와 같은 당나라 말기 지성의 노력은 고려말 이 땅에서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