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 13

생각을 끊는 수련

오늘은 대승기신론과 마하리쉬 님의 말씀을 인용합니다."지(止)를 닦는다면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서 뜻을 바르게 하되... 일체의 모든 상념을 생각생각마다 다 없애고 또한 없앤다는 생각마저도 없애야 한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나간다면 곧 거두어 와서 정념(正念)에 머물게 해야 할 것이니 이 정념이란 오직 마음뿐이요 바깥 경계가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때에 항상 방편을 생각하여 수순 관찰하여 오래 익혀 익숙하게 되면 그 마음이 머물게 된다. 마음이 머물기 때문에 진여삼매에 수순하여 번뇌를 깊이 조복하고 신심이 증장하여 속히 불퇴전의 경지를 이룬다.""어떤 생각이 일어나면 그 즉시 '나는 누구인가'를 탐구하여 그것이 사라지게 해야 한다. 진아를 깨달을 때까지 완전히 진아에 몰입하는..

현세와 내세에 필요한 것의 충족

그러므로 내 다시 말하노니 결국 내 가르침은 오로지 너희가 의식을 새로운 생명과 활기와 영적 권능 앞에 열려 있게 함으로써 한정되고 불만족스러운 낡은 삶의 방식을 버리고 내적 환희의 새로운 근원과 나날의 필요의 충족을 구하도록 돕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 나는 (1) 너희가 다음 차원으로 건너가기 전에 이 지고의 존재상태에 이르기를, (2) 너희 건너감이 고통 없이 이루어지기를, (3) 너희 건너감이 장엄한 것이 되기를 신성한 사랑으로써 열망한다.이것이 이 편지 배후의 유일한 동기요 목적이다. 이 말들은 내가 땅에 있을 때 했던 말, 즉 "먼저 천국을 찾으라, 그러면 모든 좋은 것들이 거기에 더하여 주어지리라"는 말을 더욱 강력하게 촉구하는 표현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선해지도록' 부추기기 위해 이 말을 ..

공부 요령

5년전 이맘때쯤에 인생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갓바위가 있는 선본사에 취업했습니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고향 인천으로 와서 4년 반을 보내며 나름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다른 말로 공자님의 '하나로 꿰는(一以貫之)' 공부에 매진했는데 다음과 같은 아주 간단한 도식을 찾았기에 공유하고자 합니다.수행이란 대승기신론만 봐도 단순한 일, 즉 지와 관을 점진적이고 반복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미 거론했듯이 스포츠 선수나 악기 연주자 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틈만 나면 훈련해야 합니다. 이 훈련의 전제를 현대 영성에 접목하면 첫째 지금 내 의식이 나와 내 주변 모든 것을 창조한다는 것, 둘째 매 순간 내 선택이 내 카르마와 운명과 의식수준을 결정한다는 것이 대전제입니다.함께 붙인 표에서 염송기도의 대표적인 것이 ..

불퇴위 수행으로 집단 의식 바꾸기

우리 사회가 일단 방향은 빛과 평화 쪽으로 잡았지만 끝없이 어둠과 불화 쪽으로 이끄는 세력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대승기신론은 불퇴위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불퇴위란 명상을 통해서 진여를 체험해서 아는 경지를 말하며 그때 비로소 진여의 힘으로 최고위 보살인 10지까지 가게 됩니다. 물론 진여를 체험한 후에도 더욱 열심히 6바라밀을 실천해야 하지요!개인으로든 집단으로든 우리에겐 양자택일밖에 없습니다. 빛이냐 어둠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 하는 것입니다. 집단 상황에 대해서 게 효과(crab effect)라는 게 있습니다. 누군가 지옥을 탈출하려는 기미가 있으면 반드시 끌어내리는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그 힘이 맹렬하다는 것을 느낍니다.답은 명료한 것 같습니다. 부정..

단상 2018.07.25

모든 것이 의식이다!

소크라테스가 설파한 동굴의 우화는 금강경에서 모든 것은 몽환포영노전(夢幻泡影露電)이라고 한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면 그림자가 생기게 하는 실체는 무엇입니까? 제 공부의 결과 그것은 의식입니다. 요컨대 세상 모든 현상을 낳는 실체는 의식이며 의식이 곧 창조의 동력입니다. 우리는 창조의 결과를 체험하는 의식이기도 합니다.한편 우리 의식은 신 의식을 나누어 받은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 존재를 분유(分有)라고 합니다. 신 의식이 무한다양하게 펼쳐진 모습을 우주라 할 수 있습니다. 대승기신론에서 일체가 한 마음이라고 할 때도 이러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식을 돌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는 마하리지를 비롯한 스승들에 따르면 이번 생에서 도달한 의식으로 다음 생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유교의 수양론이 우주론..

단상 2018.07.19

회광반조의 삶

저를 형성한 두 가지 문화 기조는 기독교와 유교입니다. 두 종교의 폐해는 익히 잘 알 듯이 전자의 경우, 영원한 징벌에 대한 두려움과 선민 의식, 그리고 선악의 명확한 분리를 들 수 있고 후자의 경우, 계급차별과 형식주의, 그리고 가족주의를 들 수 있습니다. 두 종교의 핵심엔 가장 높은 의식을 구현한 스승들이 있지만 두 종교 내지 문화는 세상의 외양을 구축하는 데 쓰임으로써 세속화의 폐해를 크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명한 서양 속담대로 이들 폐해를 내버리기 위해 스승들의 깊은 영성까지 내버리는 것은 목욕물과 함께 아이를 내다 버리는 게 됩니다. 더러워진 목욕물만 내버리는 길은 스승들이 실천한 대로 '빛을 안으로 돌려 거꾸로 비추는 일(회광반조)'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안으로 가지 않는 의식은 밖으로..

뛰어난 노후 대책

붓다께서 남의 고통을 보고 공부를 시작하셨다면 저는 제 고난과 자초한 화를 벗어나고 복을 지으며 다음 생을 돌보기 위해 나름 전력을 기울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저 참으며 내면을 돌보는 일에 주력했는데 환경이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이 공부에서 가장 주력한 것이 의식의 안팎이 여일하도록 하는 일(유교의 誠)입니다. 그러기 위해 혼자 있을 때 지행(止行)을 닦는 것입니다. 지행이라 함은 말 그대로 가만히 있되 생각과 말이 끊어진 자리에 머물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지행을 돕는 방편이 염송기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하는 한 지행은 신 의식과 함께하는 것이며 유교의 중(中)에 해당합니다. 지행으로 얻어진 마음으로 보시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 관행(観行)이자 유교의 화(和)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이원론으로 ..

단상 2018.07.15

전심법요와 명상

오늘은 동아시아 최고 영성이라 할 수 있는 황벽 선사의 전심법요에서 인용합니다. 황벽 선사는 제가 사숙하는 이고 선생과 동시대 사람이며 전심법요는 대승기신론을 다시 강조한 말씀이라 보면 될 것입니다. (저는 정신분석학자 호킨스 의식지도가 과학이라 보는데 [그의 저술 '의식혁명'은 박사학위 논문입니다.] 박사에 따르면 황벽 선사의 의식 지수는 960이고 저술은 850입니다. ) 전심법요 첫머리는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서도 반복되는데 다음 두 구절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부처와 중생이 오직 이 한마음이어서 다른 실체가 없다. 이 마음은 시작도 없고 어디서 낳음을 받은 것도 아니고 멸하지도 않는다(諸佛與一切衆生 唯是一心 更無別法, 此心 無始以來 不曾生不曾滅)." "생각을 그치고 잡념을 잊으면 부처가 저절로 앞에..

전심법요 입문 2018.07.14

'편지'의 의식 지수

'신과 나눈 이야기'가 호킨스 의식 지수 540임을 확인하고 나서 가지고 있는 시리즈 네 권을 복습중입니다. 이 가운데 '편지'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을 인용합니다. "대규모 공동체나 집단은 종종 결합된 생각(혹은 공동 기도)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힘을 찾아낸다. 그래서 개인의 생각(기도, 소망, 바람, 꿈, 두려움)이 놀랄 만큼 강하다면 개인 역시 당연히 그런 결과를 빚어낼 수 있다. 예수는 일상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 그는 에너지와 물질을 어떻게 다루며 어떻게 재배열하고 어떻게 재분배하며 어떻게 하면 완전히 지배할 수 있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대다수 선각자들 역시 이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많은 사람이 이것을 알고 있다. (신나이 1, 95쪽)" 이러한 구절을 미루어 짐작하면 '편지'도 540 이상 깨..

지관을 닦음

초심자로서 다음과 같은 에고가 수시로 제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험담하기, 앙심 품기, 분노, 비판, 판단, 폭력, '더 낫다'는 자부심, 해고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이러한 결함들은 실상 에고 또는 소아(小我)의 일반적 특성이기도 합니다. 다만 영원한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더 낫다는 선민 의식 그리고 선악 분별과 정의에 대한 집착 및 확신은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기독교 사회에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거의 모든 가르침이나 처세술은 근본 처방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능합니다. 왜냐하면 에고로써 (또는 에고 상태에서) 에고 다스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以情止情, 是乃大情也. 복성서 2절)을 모르거나 무시하기 때문입니다.해답은 선악과 먹기 전 상태인 무분별지를 체험해서 참나 또는 영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