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4 20

손에 잡히는 명상법

제가 영적 수행에 전념하고 헌신하게 된 계기는, 수많은 그릇된 선택으로 인한 우울과 권태, 가계경영의 실패에 직면해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죽으면 가족들에게 남기는 게 너무 적고 죽은 후 운명에 대해 매우 불안했습니다. 그러면 되도록 물질적으로도 좀 더 많이 남기고 죽은 후 운명에 대해 좀 더 안정된 것이 되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마침 서산대사의 말씀이 크게 와 닿았는데 ‘생사를 벗고자 하면 먼저 탐욕을 끊고 애갈을 지워나가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동시에 중용과 호킨스 텍스트의 접점이기도 한 지성(至誠, integrity)를 철저히 실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성의 실천 기반은 우리의 사언행위가 있는 그대로 개인의식은 물론 우주 의식에 기록된다는 ..

돈오와 점오

2,3십대에는 호기심에서 다양한 컨텐츠를 다룬 책들을 읽기도 했지만 이미 지적했듯이 컨텐츠는 아무리 모아도 의식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내 의식보다 높은 의식의 글을 읽을 때는 거기에 동승함으로써 높은 의식을 체험할 수 있으며 그것이 완전히 익숙해져서 내 것이 될 때 비로소 내 의식도 높아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경전을 손에 놓지 않는 것이 좋은데 경전이란 것도 대개 교단 내지 학단에서 당대에 소아적 관점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삽입한 것들이 적지 않아서 최근의 영적 도서 가운데 검증되었다고 판단되는 것들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호킨스 박사의 '나의 눈'에서 가져옵니다."돈오와 점오는 동시에 존재합니다. 영적인 진화과정에서 작아보이는 진전 상태는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일어나는..

명상과 영성의 실천

소크라테스가 말한 동굴의 우화는 우리가 보는 게 실체가 아니라 허상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실체를 보고 알았을 뿐 아니라 매 순간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에 따라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아테네 사람들이 모두 아니라고 해도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미디어가 매일 떠들어대는 세상사가 스크린에 비친 허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세상과 달리 살면서도 세상 변화에 기여하는 길은 영성을 추구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허상과 싸우면 고통과 병이 깊어집니다. 영성의 길은 명상과 묵상이 입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상은 그저 세상에서 오는 생각을 끊고 안으로 들어가는 행위입니다.그와 동시에 과거와의 단절, 고정관념과의 단절, 황금률의 실천을 병행하게 되며 특히 절대적으로 진실할 것(至誠)이 요구됩니다. 다행..

단상 2018.04.13

명상과 깨달음

중국에 전해오는 관음설화에서 관음이 어여쁜 처녀로 나타나 청년들에게 관음경을 소개합니다. 20명이 처녀와 결혼하고 싶어 관음경 읽기에 도전합니다. 결혼의 요건은 관음경의 암기-해석-체험이었습니다. 최종 합격자는 당연히 1명입니다. 우연이지만 제가 공역으로 소개한 '해피포켓'도 인생대박을 미끼로 명상을 권하는 책입니다. 책 읽으신 분 가운데 1/20이라도 명상에서 나오는 유익하고 고귀한 체험을 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저는 이제 막 입문해서 점점 그 가치를 체험해가고 있습니다. 정작 실천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책을 만나고 2년 정도 읽고나서 비로소 매일 하게 되었습니다. 명상이란 지눌 스님이 지적하신 '텅비어 고요하게 알아차리는 자리'에 생각이란 물체가 지나가는 것을 깨닫고 그 생각이란 놈을 끊어버리는 ..

단상 2018.04.12

영적 수행

TV에서 세계 기록에 도전하는 청소년을 보면서 숭고한 영감을 받습니다. 영상으로 자신과 경쟁자를 비교하며 자세를 교정하고 매일 훈련일지를 쓰는 것은 기본입니다. 한편 한 가지 컨텐츠에 꽂혀 엄청난 자료를 수집하는 편집증에 가까운 취미를 가진 사람도 봅니다. 예를 들면 트럼프 카드 모으기, 옥편 외우기 같은 것입니다. 많은 책들이 실상 컨텐츠 모으기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제가 읽은 것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푹스의 풍속의 역사인데 이것은 성 풍속이란 컨텐츠의 집대성이라 할 만합니다. 그런데 컨텐츠의 수집이란 아무리 산처럼 모아도 우리의 궁극적 행복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에 평생 몰입해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청년 영재들의 실천과 유사하다고 봅니다. 끝없이 자신을 돌아..

단상 2018.04.10

성(性)과 정(情)

오늘은 탄허스님 말씀 공유해보겠습니다. "마음(心)은 성(性)과 정(情)을 합한 명사다. 성이란 나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 즉 우주가 미분(未分)되기 전 상태를 말한다. 우리의 한 생각이 일어나기 전이나 몸이 나기 전이나 우주가 생기기 전이나 모두 똑같다. 우리가 흔히 마음의 본체인 성에 대해서 논하면서 중생이나 부처, 성인이나 범부가 모두 똑같다고 하는 것은 일체를 성의 자리에서 보았을 때를 말하는 것이지 무조건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성은 칠정이 일어나기 전의 면목이며 언어나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자리다. (탄허록 180~181)" 제 생각에 이것만 확실히 구분할 줄 안다면 유교와 불교를 이해하는 중요한 기초 가운데 하나를 얻었다고 봅니다. 제가 복성서를 번역하면서 성을 '참나'로 정을 '..

복성서 2018.04.08

무조건적 사랑

오늘은 저희 공부 그룹에 올린 글을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너희가 배척하거나 비판하는 사람에 대해, 나 그리스도는 언제나 가장 깊은 사랑과 연민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너희는 깨닫고 있는가? 너희가 배척하는 사람에게 나는 무조건적 사랑을 방사하고 있다."실상 위와 같은 일은 우리가 에고에 머무는 한 불가능하다는 것이 솔직한 말입니다. 유교의 인(仁)과 서(恕), 불교의 자비, 기독교의 사랑은 모두 인간에게 불가능한 수준을 촉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붙이를 사랑하는 것은 이방인도 하는 것이라고 바이블은 말하는 것입니다. TV를 보니 짐승도 측은지심을 실행하더군요.경전들이 말하는 바는 우리가 에고를 완전히 극복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 도정에서 되도록 억지로라도 하다못해 기브앤테이크 방식으로라도 비슷하도..

단상 2018.04.07

윤집궐중의 실천

조선 말기에 독학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비들은 기독교 핵심이, 불교와 도교 철학이 흠뻑 스며든 성리학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경우 기독교도로서 대학국어 시간을 통해서 사서집주와 논어를 접했습니다. 논어 맹자를 간헐적으로 독서하면서 대충 지내던 중 탄허스님과 홍익학당을 만나면서 그 모든 게 하나로 정리된다는 느낌이 생겼습니다. 기독교와 성리학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그러다가 이고 님의 복성서를 번역하면서 성리학이 불교의 다른 버전임을 확인하였습니다.중용 첫머리가 기독교 핵심 사상과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이곳에서 여러 번 거론한 적 있지만 주자의 중용장구 서문을 오늘 처음 읽었습니다. 제 생각엔 논어도 그렇지만 중용도 디테일에 빠져버리면 숲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

명상과 염송기도

어제 저녁은 아내와 저녁을 먹는데 일년의 반은 일해야 하는 내 신세가 안되어보였는지 "노후에 일하지 않고 놀고 먹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합니다. 저는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여 지금 이렇게 되었으나 현실에 불만이 없을 뿐 아니라 이승이 최종 종착지라면 나는 확실히 루저지만 이곳은 그저 지나가는 여행지이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생명과 의식은 부단히 이어진다는 것이 스승들의 가르침이자 우리의 직관에 맞습니다. 더구나 임종시 가장 중요한 것은 소유관계가 아니라 의식수준이라고 합니다. 요컨대 이승은 학습장소이자 훈련장입니다. 도량이라고도 하지요. 그래서 저는 누차 인간 행복을 위해서는 세상의 개조 개혁으로는 부족하며 내면의 천국을 이곳에서 발견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인터넷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내..

성(誠)과 중(中)

어제는 혼자 24시간을 근무하면서 다시 한 번 성(誠)과 중(中)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돌아보면 혼자 있을 때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재미있는 오락거리를 찾거나 고요를 깨는 무엇을 합니다. 그 결과 직장 말년부터 약 10여년 엉망진창 삶을 경영하여 깊은 절망상태까지 갔었습니다. 요컨대 적당히 세상에서 통하는 정도의 도덕으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바닥에서 떠오른 게 절대적으로 정직해야 하겠다(至誠)는 것이었습니다. 동양 영성은 혼자 있을 때 삼가는 것(愼其獨)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혼자 있을 때 삼간다는 것은 바로 중을 지킨다(守其中)는 것이고 중이란 희로애락이 드러나기 전의 상태(喜怒哀樂之未發)를 말하는 것이어서 바로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용의 키워드이기도..

단상 2018.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