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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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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온 일련의 저술과 이 책에서 기술한 대로 아주 최근까지 인류에게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 있는 믿을 만하고 객관적이며 확인할 수 있고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면 영적 믿음과 이성 간의 갈등이 수천 년간 골머리 아픈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서양의 위대한 저술에 포함된 위대한 철학자와 사상가뿐 아니라 그리스 로마의 위대한 지성들도 이 문제를 가지고 싸웠다. 토머스 아퀴나스에서 오늘날에 이르는 가장 위대한 신학자들이 노력했지만 이 문제는 미해결 상태다. 오늘날에도 지속되는 논쟁은 잡지 타임에서까지 주요 주제로 다뤄진 바 있다(Van Biema, 2006년 11월 13일자).


이 난제의 핵심은 1925년 유명한 스콥스 재판에서 웅변적으로 드러났으며 미 대법원장 휴고 블랙의 "교회와 국가 간의 높은 장벽"이란 말이 정치계에서 갈등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1946년에 갈등을 더 부추긴 그 판결은 오늘날 사회에서도 뜨겁게 겨루고 있으며 세속주의와 전통주의 간에 정치적 싸움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것은 요즈음 학계에서 '창조'와 '지적 설계'란 말로 정리된 바 있다.


물과 기름을 섞으려는 시도는 동질의 것을 분리해내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성공하지 못했다. 비유적으로 말해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어느 쪽의 온전성을 망치지 않고도 신앙과 이성을 동기화하고 재맥락화하는 방법론이 존재한다. 즉 재연가능한 증명으로써 뒷받침되는 신앙에 의해서 영적으로 크게 고무되면서도 동시에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적이고 지성적으로 박학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의식의 본성 자체에 대한 간단한 연구로 전에는 아주 동떨어진 별개 영역처럼 보였던 것 사이에 쉽게 건널 수 있는 다리가 생겼다. 갈등에 대한 답으로서 성공적인 해법의 발견은, 상호 배타적인 영역으로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벽을 치는 대신 과학과 영적 실체 모두를 포괄하는, 실체에 관한 범례의 확장이 중요함을 인식한 결과다. 이렇게 맥락을 검증가능하게 확장함으로써 이성과 신앙을 동시에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단순한 의견과 애매모호함과 갈등을 배제한다.


역사적으로 보아 맥락의 확장은 유익한 결과를 가져 왔다. 예를 들면 뉴턴 패러다임의 한계로부터 소립자 물리학, 양자 역학 및 지금도 발전하는 양자 이론을 포용함으로써 확장하고 있는 물리학이 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칙이라는 중대한 발견으로 개념상 다리가 세워졌다. 이 이론은 인간 의식에 의한 관찰의 충격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설명하는데 즉 인간 의식이 '파동함수를 붕괴(뒤에 기술)'시킴으로써 (즉 잠재성이 실재로 바뀌는) 결과를 인간 의도가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천문학 영역에서 비슷한 일이 있는데 태양계에 관한 단순한 연구에서, 광속으로 계속 확장하면서 증식하는 무한한 은하계와 다중 우주에 관한 연구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영적 실상과 계시 종교에 내재하는 진리를 이성을 포기하거나 논리와 합리성 원칙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조사할 수 있다. 사실상 영적 실상을 검증할 수 있는 똑같은 맥락과 방법으로 과학적 원칙도 검증할 수 있다.


아주 최근까지 과학과 종교는 아주 다른 상자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제 그 상자는 없어졌고 두 가지를 포용하면서 두 가지에 똑같이 중요성, 신뢰, 균형을 부여할 수 있는 훨씬 큰 그릇 속에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서로 관찰점이 다르다고 해서 따로 떨어진 모순되는 '실체'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모든 것을 포용하는 무한한 의식 자체의 장(場) 안에서 나오는 서로 다른 관점이 공존하는 것이다. 한 가지 예로서 '진화'와 '창조'로 인위적으로 쪼개는 대신 진화가 창조라는 더 높은 관점이라는 포괄적인 범례에서 보는 게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모른다. 진화는 그저 현재 진행형의 창조가 관측되는 모습일 뿐이고 실상 한가지 똑같은 현상인 것이다. 창조는 근본적으로 진화 과정을 거치며 발생적으로 전개된다. 비슷하게 자연에 존재하는 지능은 오직 선형적이고 초보적 시행착오에 의존하는 것 같으나 선사시대 늪지에서 비선형 의식으로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게 된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했다.


외견상 모순되는 '신앙 대 과학'의 수수께끼는 항구하고 언제나 존재하는 '근원'이, 예를 들어 '원인'과 같이 일시적이고 표면상 일회적 사건과 다른 것임을 인정함으로써 단순해졌다. '원인'이란 말은 실상에 관한 뉴턴식 패러다임의 한계로서 오늘날 과학에서조차 시대에 뒤진 취급을 받는다. 현대 과학은 비선형 동력학, 확률론, 융합이론, 발생과 복잡화 이론 및 그 이상으로 나아간 바 있다. 


의미심장한 일은 시간이 감에 따라 과학의 가장 위대한 천재들은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이해력의 심도가 깊고도 포용적이어서 개인 삶에서는 매우 종교적이었다. 반면 그들의 타고난 천재성으로 인하여 종교와 과학 간의 갈등이 없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았지만 그들이 이해한 것은 설명할 수 없는 지식이기에 사실상 아무도, 이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간격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 적 없다.

(이하는 저명한 정신과 의사이며 철학박사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작권을 얻어 옮기는 것이 아니고 순전히 개인적인 학습을 위한 것임을 알립니다.)


최근 수십 년 기술의 발전이 널리 두드러진 반면 동시에 인간 의식 자체의 진보도 전반적 수준이 최근에 더욱 급작스럽게 향상하는 모습을 띠었다. 꽤 심오하고 양호한 모습을 보이는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 후반에 발생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눈치채지 못하였지만 의식 연구의 새로운 방법론의 등장으로 발견되었고 기술되었다. 이 방법론은 거짓과 진실, 외양과 본질을 분간하는 수단에 관한 독창적인 연구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특정 사안에 대하여 얼마나 진실인지 혹은 거짓인지 하는 것을 1에서 1,000까지의 간단한 로그지수로써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인간의 범주와 그것을 넘는 범위까지 가능한 모든 지식에 대해 잴 수 있다는 것이다.


간단한 조사와 관찰로써 알 수 있는 것처럼 (자연 재해를 제외하면) 과거와 현재에 이르는 인류의 고통은 거짓과 진실, 환상과 실체, 본질과 지각, 그리고 입증할 수 있는 실체와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그래서 의식 연구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친 모든 인간 조건을 재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범주를 제공했다. 왜냐하면 의식 연구의 잣대를 통하여 선형 및 비선형 영역을 동시에 포괄하는 하나의 맥락 및 범례의 확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 발견은 인간 지식이 크게 향상되었음을 뜻하는데 그것은 또 진리에 대한 확인은 내용(선형)과 맥락(비선형)을 동시에 진술함으로써만 입증이 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내용이란 진술된 맥락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상황 윤리'의 규칙에서 이미 받아들여지고 있고 사법 제도에서도 맥락(동기, 상황, 지향, 심적 능력, 환경 등)의 중요성을 시인하고 있다.


입증가능한 진실을 정의할 때 모든 역사적 시도에서, 절대적이고 불변하고 정의할 수 있으며 확실히 재연할 수 있는 비교기준을 빠뜨리고 있다. 그러므로 진리를 확인하고 확증하는, 입증가능하고 실용적인 수단이 등장했다는 것은 인간의 이해력 진전에 있어서 완전히 새롭고 확장된 차원이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지식이란 자연과학과 그것을 응용함으로써 확인된 운영 법칙처럼 정보나 연구가 조직화되고 체계화된 것을 말한다. 나아가 정보란 임상적이고 재연될 수 있으며 실용성이 확인될 뿐 아니라 이론적(학술적)인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임상 의학은 과학적 원칙과 그에 딸린 훈련을 적용한 이론(의식 지수 440)은 물론 기술(의식 지수 445)로 이루어진다.


비선형 영역에 대한 연구는 역사적으로 전통 종교는 물론 존재론, 형이상학, 신학과 철학으로 불린다. 종교적 과학(Religious Science), 유니티, 신 사상(New Thought), 크리스찬 사이언스, 무종파 교회와 같은 현대 종교 단체는 고전적, 전통적 종파의 교리간 차이를 강조하는 대신 영성의 공통 핵심 사항에 집중하고 있다. 


역사적이고 겉보기에 다양한 각 종교가 가진 계시의 뒤에는 영적 실체의 근본적 핵심이 있다는 깨달음이 생겨났다. 그래서 현대인은 역사를 통해서 종종 핵심을 벗어나고 교리나 논쟁적 선언으로 본질이 흐려진 영적 진실의 입증가능한 핵심을 줄곧 추구하고 있다.

전통 종교는 종종 검증가능하고 정확히 설명된 영적 실상보다 비유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의 민속 전승물인 고대 문화 속의 신화와 전설을 순진하게도 포함시키고 있다. 유명한 1925년 스콥스의 '원숭이' 재판에서 클레어런스 대로에게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을 공격할 수단을 제공한 것이 바로 전통 종교 안에 포함된 이러한 교훈적 전설들이었다. 그 역사적 논쟁은 오늘날 '진화 대 창조' 논쟁이라 불린다. '지적 설계설'의 개념은 종교와 과학 사이에 있을 수 있고 설득력 있으며 타협적이고도 균형잡힌 절충안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만일 지성이 필수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과학 자체는 존재할 수조차 없을 것이며 우주에 아무런 계획도 없다면 과학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근본적으로 계획(예를 들면 과학 법칙)의 발견과 설명에 전적으로 몰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적 설계' 가설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인간 에고의 성향과 허영 때문일 것이다. 왜냐하면 에고는 진리에 이르는 것보다 자기가 '옳고' 남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는 일에 보다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스콥스 재판에 이어진 논란과 같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문제 해결을 위한 수단을 제공하며 드디어는 문제를 잠재우고자 한다. 해답에 대한 반발은 합리주의자들이 생각하듯 논리적이지 않다. 인류를, 유명한 가문간 분쟁인 하트필드와 맥코이처럼 분리하는 인간 에고의 자기애적 핵심은 진실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갈등과 '올바름'에서 얻는 에고로 부풀어진 자기애적 이득에 몰두하는 일에서 힘을 받는다. 에고는 겸손에 대해 태생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적대하며 자기 주권에 대한 은밀한 주장을 포기하느니 죽어버리거나 (실제로 수백만 명이 그렇게 함) 남을 죽이려 한다.


흥미롭게도 의식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1에서 1,000까지 진실의 척도상 과학은 400대인 반면 영성은 그 자체 500 이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과학의 한계는 주로 '패러다임 맹점'의 하나이며, 패러다임 한계의 소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패러다임 맹점은 애초에 예수 그리스도의 다음과 같은 간결한 진술에 드러난다. 즉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인데 이 말은 추상화 수준을 섞지 말고 선형적 영역의 실체와 비선형적 영역의 실체를 혼동하지 말라는 말이다.


환상과 실제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인류 전체의 주된 장애이며 전쟁과 개인적 사회적 고통뿐 아니라 대부분 인간 문제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를 조사하는 것이 화급한 과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수 세기 동안 인간을 혼란에 빠뜨린 주된 수수께끼가 이제 수초만에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은 보통의 생각과 상식에는 어긋난다. 모든 문제와 겉보기에 복잡한 논란들은 실상 간단히 '예'나 '아니오'로 나누어진다. 그러면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은 그저 어떤 질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될 것이다.  

신을 만나는 일

2013.11.25 12:22 | Posted by 목운

에카르트(1260~1328)를  소개한 우술라 플레밍은 "그리스도교가 비판받는 것 중 한가지가 신을 찾아가는 뚜렷한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녀는 에카르트가 기술한 영원한 탄생을 신을 찾은 경지로 보고 거기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탄생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훈련과 집중, 높은 열망입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비워 무지한 사람처럼 되는 것입니다. 지눌스님 지으신 수심결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 감정, 오감에서 오는 모든 것을 부인하고 한가지에 몰입하다가 아무것도 모른다 할 때 느껴지는 '공적영지(空寂靈知)'가 바로 순수한 영의 상태입니다. 그때 느껴지는 환희심에만 의지해서 신의 인도하심을 충실히 따르면서 끝없이 덕을 닦아나갈 때 비로소 신과 완전한 합일에 이를 것입니다.


영심성찰을 하고 덕을 닦아가는 요령은 그리스도교 수덕체계에도 풍부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불교와 유교에는 각각 6바라밀과 4단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신과 합일할 때 "천년전에 흘러간 시간은 현재와 마찬가지로 바로 지금이며 신께는 천년도 지금 이 순간과 똑같이 가까운 것이다(우술라 플레밍, '그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았다', 125쪽)"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금강경오가해는 "천겁이 지나도 새롭고 만년에 걸쳐 언제나 지금 같다(歷千劫而不古 亘萬歲而長今)."라고 해서 놀랍습니다. 


또 에카르트는 "나는 신에게 신을 없애달라고 기도한다(I pray God to get rid of God)."고 하고 있어서 역시 모든 모습(相)에서 벗어나야 최상의 깨달음(무상정등정각)을 얻는다는 금강경의 가르침에 부합합니다. 요컨대 모든 것을 바쳐서 신을 만나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동시에 기독교 1계명의 진정한 취지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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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원리

2013.11.13 13:36 | Posted by 목운

몸과 마음과 영혼의 정확한 본질은 무엇인가치유를 촉진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과 영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것이 핵심적이다몸이  자신을 경험할  있는 능력이 없으며  자체에는 생명력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팔은 자신이 팔임 체험할  없으며다리는 자신이 다리임 체험할 수 없다대신 우리는 몸의 감각들과 그것이 공간 안에 있음을 체험할 뿐이다정말로 기묘하게도 감각들 또한 그들 자신을 체험할  있는 능력이 없다그들은 보다   무엇 안에서 체험되어져야 하는데 마음이 그것이다감각들의 경험과 그들이 몸에 대하여 보고하는 것은 실제로는 마음 안에서 경험된.


마찬가지로 놀랍겠지만마음 또한  자신을 체험할  없다생각은  자신의 생각임을 체험할  없으며느낌은  자신의 느낌임을 체험할  없고기억 또한 자신의 기억임을 체험할  없다 모두가 마음보다 더  무엇 안에서 체험되어져야 한다.

 

우리가 마음으로 경험하는 것은 의식 덕분이다. 이것이 마취요법의 토대를 이루는 것인데 마취란 의식을 제거함으로써 마음과 몸을 경험하지 않도록 하 것이다.


의식 자체는 자각(awareness)이라 불리는 무한한 에너지  안에서 경험되어진다자각 때문에우리는 의식 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알며의식 때문에 우리는 마음 안에서 벌어지는 것을 알고마음 때문에 우리는 몸에 대해서 보고되는 감각들을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정말로 몇몇의 단계들이 몸으로부터 제거되는 것을   있으며우리가 몸이 아니라는 것을 보다 명확히 알 수 있다고 하겠다우리란 의식의 무한한  안에서 자각하는 것이다이는 깨달음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며명상 안에서도 자신이 실체의 모든 단계들을 알아차리는 '그것'이라는 사실을 비교적 간단히 확인할  있다.

 

치유의 기본적인 원리는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며그러나 이는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마음이란 매우 강력해서 그것이 믿는 바를 드러 보이는 경향이 있다.

 

몸은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의 결과이다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면우리가 해야 할 모든 것이란 몸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며우리가 믿는 바를 이야기해주는 그것의 행동양식을 관찰하는 것이다만일 우리가 기억을 돌이켜 보려 한다면우리는 종종 우리가 지녔던 어떤 류의 신념 체계나 우리가 생각하려 했던 것을 기억해   없을 것이다그러한 사실은 우리의 삶에서 그것이 개인 또는 집단 무의식의 어딘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해준다이러한 일들의 가장 일반적인 예는 알레르기 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글쎄요저는 알레르기에 대해 어떤 신념도 없어요 삶에 의식적으로 이것을 가져오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본다면거의 일정하게도 그러한 신념 체계와 알레르기들이 삶에서 매우 초창기에 발생했다는 것을 발견할  있으며대개 2 혹은 3살에서이다어린 아이는 "알레르기들이 우리 가족 안에서 퍼졌다" 같이 가족으로부터 누군가의 발언을 듣게 된다아이의 마음이 이를 듣는 순간부터그것을 승인함은 물론 믿게 되며영향을 끼치는 프로그램이 되어버린다.

 

마음에 있는 생각의 패턴들은 신념체계들이다죄책감은 판단주의나 부정적인 의견들로부터 유래된다부정적인 감정들은 한데 더불어 가는 경향이 있기에모든 부정적 감정들이 질병과 자만심을 포함해서욕망두려움슬픔무감정그리고 죄책감들에 이바지한다

 

의식 지도는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질병을 초래하며긍정적인 감정은 모두 질병의 치료에 기여하는 것을 보여준다진실의 단계인 용기 수준으로 일단 진입하게 되면우리는 초연해지게 되는데 자발적이고도 수용적이며 사람을 사랑하는 단계로의 길이 의식의 척도에서 사랑은 500에서 발생하며 치유는 540에서 나타난다어떤 종류의 사랑(lovingness) 거의 자동적으로  안에서 치유를 가져오는 것일까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unconditional love)으로 무비판적이고도 용서하며 이해와 연민에 맞추어져 사랑은 이해하고길러내며 모든 생명 지지해주고 신성함 자체로 경이로우며 스스로 540 수준의 치유하는 에너지 장을 창조해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수준의 사랑의 삶으로, 즉 치유하는 삶으로의 이행이 촉진  있는가?)

 

(실용적으로는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감각들에 저항하는 것을 내려놓는 것과 그것에 꼬리표를 붙이는 것을 그만두는 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일례로우리는 '십이지장 궤양'이나 혹은 '천식' 경험할  없다그들은 이름지어진 것이며정신적인 구조물들이고정교한 프로그램들이면서도 신념체계들이기 때문이다우리가 '천식' 경험할  없다면우리가 겪고 있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이것이 바로 근본적 진실의 기법이 생겨나는 곳이다.  

 

질병의 신체적 특징에서 실제적인 치유는 정신적인 꼬리표를 붙이지 않고 내적으로 육체적인 경험에 저항함을 내려놓는 것이다그와 동시에 사실 우리는 정신적인 꼬리표를 취소하고 그것을 진실로 대체하기 시작한다우리는 "나는  이상 그것을 믿지 않는다나는 무한한 존재이므로 그것에 영향 받지 않는다나는 오직 내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 대해서만 영향받을 뿐이다." 같은 단언을 통해 취소  있다.

 

그렇다면 "무한한 존재이며 그것에 영향받을  없다는 " 무슨 의미일까 뜻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신념 체계로 인해 제한되어져 있다는 것이기에만일 그것들을 내려놓는다면 무엇이 그것들을 대체하는 것일까? 모습(form) 의식으로부터 제거되면 과연 남는 것은 무엇일까? 모습 없음(formless) 남으며 내적인 체험은 무한하고도 경계가 없으며 시작이나 마침 또한 없다. 모습 없음은 의식 자체의 근본적인 본질이며 무한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만일 우리가 한계를 긋거나 무의식적으로 모습 받아들인다면우리 자신은 마음에 품고 있는 것에게 영향을 받게 된다. (이하 내용 : 근육테스트를 통해 위에서 언급한 단언해야  진술들로 취소 작업을   사람은 강해짐)


결과적으로는 우리가 거짓인 것을 진실인 것으로 대체할 치유가 발생한다고 하겠다.

 

특정한 병을 치유하는 특성들의 구성요소는 다음과 같다

1) 그것의 감각적인 경험에 저항하기를 내려놓기

2)  이상 이름을 단다거나 그것에 꼬리표를 붙이지 않기

3) 어떠한 단어들도 사용하지 않으며매우 기꺼이 경험하고 있는 것을 받아들이

4) 그와 동시에 생각의 틀이나 신념체계를 취소하기

5) 치유를 일으키는 사랑의 에너지 장을 선택하기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자 선택하면 뇌에서 엔돌핀이 분비되는 중요한 결과를 가져오는데이는 몸의 건강과 행복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행복은 부정적인 것을 내려놓고 그것을 의식 안에서 사랑으로 바꾸기를 허용하는 자발성(willingness)으로부터 기인하는데의식의 근본적인 본질은 그것이 변함없는 자비(lovingness)이기 때문이다.

 

(HEALING AND RECOVERY, ASSISTING HEALING : p 43 - p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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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뜻대로 살기

2013.11.05 18:13 | Posted by 목운

Dr. Hawkins says it is a matter of intention. 

호킨스 박사님께서는 그것은 지향의 문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If it is your intention to live by God's will, and you continue to pray for that, you will gradually be living by God's will.  
만약 당신의 지향이 신의 의지에 의해 살아가는 것이고 당신이 그것을 위하여 계속 기도한다면, 당신은 점차 신의 뜻대로 살게 될 것입니다.

 

Meanwhile, you still have to live your life and do the best you can when making decisions.  
그러는 동안,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삶을 살아야 하고, 결정을 내릴 때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However, things may occur to you to do, and since you have prayed for God's will in the matter, you will more and more be doing God's will.  
해야 할 일들이 생겨나겠지만, 그 일 속에 있는 신의 뜻을 구하고자 기도했기 때문에, 당신은 점점 더 신의 뜻대로 행하게 될 것입니다.


It's not like the voice of God comes to you and says, "This is my will!"  
그것은 당신에게 와서 "이것이 내 뜻이다." 라고 말하는 신의 목소리 같은 것이 아닙니다.


But your life will gradually turn to the direction of doing God's will, with the lessening of your personal will, if that is your intention.  
그러나 비록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 하더라도 당신 몫은 줄어들면서 당신의 삶은 점점 더 신의 의지를 행하는 쪽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You have to go on and make decisions.  
당신은 계속 결정을 해야 할 겁니다. 

 

If you want to study English literature, that is fine!  
만약 당신이 영문학을 공부하길 원한다면, 그대로 좋습니다!

 

Everyone has to make a choice as to what to study or how to earn a living.  
누구나 무엇을 공부할지, 어떻게 돈을 벌지 선택해야 합니다.

 

It doesn't matter what you do, as long as you are being in integrity. 

당신이 성(誠)을 준수하는 한, 무엇을 하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Being a servant, you still have to make choices.  
설혹 종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선택을 해야 합니다.


But you ask what God's meaning in life is for you, and gradually things will occur to you to do in a natural way.
그러나 당신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신께 물으면 해야 할 일들은 점점 더 자연스럽게 다가올 것입니다. 

 

It's okay; don't torment yourself over it. It's intention and prayer, and asking for guidance.  Meanwhile, live your life!
괜찮습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세요. 지향하고 기도하고 그리고 안내를 구하십시오. 그러면서 살아 가세요!


All the best to you!
모든 것이 최선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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