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대책

2013.10.08 06:05 | Posted by 목운

아버지만큼 산다면 딱 20년 남았는데... 지금 삶의 균형이 크게 흔들리게 된 것은 더 근본적인 출구대책을 강구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실상 그동안 제법 사람구실도 하고 체면유지까지 하면서 살아온 것은 순전히 은총 덕분이었다. 


앞으로도 내 능력을 믿을 게 아니라 신께 믿고 맡기는 게 옳다. 그리고 내쪽에서 할 일은 생각과 말과 행동 모든 것을 신께 봉헌하는 쪽으로 철저히 방향전환하는 것이다. '수행해서 무엇이 된다'거나 '구원을 얻는다'는 쪽이 아니라 모든 집착을 놓아버리고 신의 의지가 관철되도록 하기 위해 소아쪽 장애물을 치우는 것이다. 


그 길에서 붙들고 있어야 할 방편은, 정직 자각 책임으로도 표현되는 성(誠)의 준수, 6바라밀의 실천과 호킨스 방하착(로버트 프로세스)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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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윤곽 (백봉 선생)

2013.10.05 06:43 | Posted by 목운

어떻든지 올바른 방편을 가질 수만 있다면 이런 다행이 없습니다. 우리가 상승설법을 들어서 설혹 이해가 안 간다 할지라도 윤곽만 잡을 수 있으면 다행으로 알아야 합니다. 윤곽만 잡아 놓으면 그때는 팔진미의 밥상을 받아놓은 거나 한가지에요. 언제 되도 되거든요. 언제 먹어도 밥은 내가 다 먹게 마련이라. 그러하니 인연관계도 있고 업연관계도 있고 여러가지 문제로 어렵다 할지라도 하루속히 윤곽을 잡도록 합시다. 윤곽을 잡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허공으로서의 내'라고 생각한다면 그만이에요. 물론 처음에 오는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몸뚱이도 허공성이다. 생각하는 슬기자리도 허공성이다. 산하대지도 허공성이다. 태양도 허공성이다. 하는 말이 그말이거든요. 설법을 죽 들어나간다면 참말로 이거 허공성인 거 알거든요. 몸뚱이도 허공성이다. 밉다 곱다 좋다 나쁘다 생각하는 자리도 허공성이다. 이걸 알거든요. 알아도 실감이 안나.


왜 실감이 안 나느냐? 몸뚱이가 내다 하는 그릇된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몸뚱이가 내 소유물이 아니고 내 관리물이라 해 봐도 누가 가져가는 거 아니고 또 내 소유물이라 해도 죽을 때 되면 죽지 별 수 있나요? 그런데 몸뚱이를 진짜로 알기 때문에 딱 결정이 안 되는 겁니다. 언제나 가짠 줄만 아세요. 몸뚱이가 가짠 줄만 알면 나중에는 가짜 중에서 진짜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때 가야 비로소 공부가 됩니다. 그 전까지는 공부가 잘 안 됩니다. 일초직입해서 여래땅에 들어가는 법도 있지만 초학자로서는 윤곽을 잡을 줄 알아야 합니다. 뭘 외우는 걸 공부로 삼지 마세요. 많이 듣는 거로서 공부를 삼지 마세요. 차분하게 마음이 가라앉아 '내다' 하는 아만상이 없어져. 내가 아닌 걸 내다 하는 거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실은 속에 똥밖에 안 들었는데 뭐가 있나요?


마음자리 하나 알기 위해서 우리가 공부하고 참선하고 염불하고 하는 겁니다. 다른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참말로 어렵느냐? 사실로 어렵다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마음을 잘못 가지기 때문에 어려운 겁니다. 허공을 찾는 사람도 허공을 버리려고 하는 사람도 다 어리석은 거와 같이 이 공부를 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안 하는 공부를 하는 겁니다. 아는 지식을 전부 버리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 하는 공부를 하는 거에요.


인연에 따라 법연에 따라서 낮도 되고 밤도 되는데 내가 전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거에요. 내가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그 자리가 얼마나 소중합니까?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분 자신들입니다. 그거 고귀한 자립니다. 그 자리가 나는 걸 받아들이고 죽는 걸 받아들여. 그 자리가 무서운 자립니다. 그 자리가 나는 걸 받아들이고 죽는 걸 받아들여. 났다 죽었다 하는 것은 인생의 권리행사입니다. 나는 것도 나의 권리행사고 죽는 것도 나의 권리행사거든요. 물론 실다운 것이 아니고 환상놀이지만 환상놀이를 함으로써 인간 생활을 엮어가는 것이거든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부모가 낳았다 그럽니다. 그러나 본래 그 자리를 탁 알아버리면 나고 죽는 것이 전부 권리행사라. 장난에 지나지 못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진심자리. 진심자리를 알면 그 자리는 그대로 명확하게 드러날 뿐입니다.


공부하는데 돌아가지 맙시다. 바로 직행합시다. 직행한 사람 많습니다. 허공이 어디 있는가요? 도대체 어느 허공인가? 잡으려 해도 없고 피하려 해도 가도 가도 허공이고 가도 가도 허공이니까 도대체 어느 허공인고? 나중에는 이 자리구나! 찾으려 한 것도 전부 헛거로구나! 버리려 한 것도 전부 헛거로구나! 마음 찾으려는 것 헛거 아니에요? 마음 버리려는 거, 탐진치 버리려는 거, 헛거 아니에요? 사량 분별 망상 버리려는 거 전부 헛거 아니에요?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는가? 참 이건 인간 절대에 속한 문젭니다. 지구덩어리 다 준다 하더라도 이것부터 먼저 가져야 합니다. 이거는 영원에 속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니까 우리는 이제 직행버스를 타고 가도록 이렇게 노력합시다. 길은 나왔죠? 그 길로만 다니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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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과 깨달음

2013.10.02 19:58 | Posted by 목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악업에 대해서 걱정을 합니다. 악업을 만회하기 위해서 얼마나 걸릴까요? 순간에 만회할 수 있습니다. 한 순간에 악업은 사라집니다. 악업은 의지의 발현을 통해서 순간에 사라집니다. 신게 내맡기는 것을 통해서, ‘모든 영광과 힘은 주님, 당신의 것입니다.’ 라고 말함으로써,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당신은 모든 전생의 무지를 만회합니다. 악업이 무엇일까요. 오로지 무지일 뿐입니다. 예수와 부처는 세상이 부정적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오로지 무지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악마는 없고 무지가 있을 뿐입니다. 오로지 무지만이 있을 뿐입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겸손으로 인하여 그러한 무지를 내맡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박함이나, 욕망으로부터가 아닌 겸손으로 인하여 당신은 무지를 내맡깁니다. ‘주여 저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무지와 한계를, 우리의 알지 못함을 신께 내맡깁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사람들은 깨달음이 먼 미래에 그리고 저 높은 곳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이 어디에 있는지 제가 말씀드리지요. 깨달음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깨달음은 바로 여기이며 바로 지금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이다, 저항하세요(긍정반응). 그러므로 미래에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깨달음은 여러분으로서 바로 여기에, 바로 지금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앎의 기쁨을 세상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해주지는 마세요. 하하하. 세상이 기다려온 것이 우리입니다.


-2008년 호킨스 박사님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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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들

2013.09.24 18:04 | Posted by 목운

제가 멘토 내지 스승으로 삼는 분은 라마나 마하리쉬 님(1879~1950), 김기추 선생님(1908~1985), 탄허스님(1913~1983)과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님(1927~2012)입니다. 


물론 누구든 주저없이 택할 수 있는 스승으로 예수와 붓다,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계시지만 두 밀레니엄 이상 지나면서 기득권이 돼버린 종교집단을 중심으로 그분들의 가르침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왜곡이 난무하기 때문에 같은 시대를 사신 분들 가운데 확실히 검증된 분들을 택했습니다.


제가 아는 한, 탄허스님을 제외하면 나머지 세분은 그 영적 체험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탄허스님의 경우는 유교를 비롯해서 동양철학에 통달하셨기 때문에 제 많은 공부가 그분의 말씀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한편 백봉 김기추 선생은 직접 독립운동을 하셨고 탄허스님은 독립운동가의 자제이시며 두분 모두 재가생활을 하셨기에 재가자에게 더욱 좋은 스승이며 호킨스 박사는 영국교회 출신으로 제가 천주교도였기에 호감이 갑니다. 그밖에 북창 정염 선생이 지으신 용호비결을 호흡훈련의 전거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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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선물임

2013.09.22 11:08 | Posted by 목운

영적 진화와 높은 의식에 이르는 최선의 지름길은 전 존재의 바탕이기도 한 의식의 장을 통과합니다. 여기서 의식의 장이라 함은 신적 에너지가 선형적 인과관계와 관계없이 솟아나옴을 말합니다. 깨달음이라는 상태는 신의 현존 또는 참나가 드러나는 순수한 빛남의 상태입니다. 참나란 영적인 존재의 본질이며 빛을 발하는 그분 덕분에 우리가 주관적으로 체험하는 현실입니다.


참나는 선형적 인과관계와 관계없이 빛나는데 그 빛의 분출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며 그 선물은, 그것을 가로막는 인과관계에 기반한 사고와 소아의 편견 및 감정을 포기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이라는 현상은 구름이 걷혔을 때 태양이 빛나는 것과 비슷합니다. 태양의 빛남은, 획득한다거나 강제한다거나 혹은 얻어낸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런 류의 생각은 에고 또는 마음이 인과관계가 있다고 믿는 가상명제가 터하고 있는 선형적 개념들일 뿐입니다.


깨달음에 아무런 원인이 없는 것은 신에게 원인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신학의 오해와 이분법적이고 선형적인 에고 또는 마음의 한계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깨달음을 얻는 것도 아니고 깨달은 상태를 받아들일 개별 존재로서 나라는 것도 없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그저 앎의 상태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버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소아는 깨닫게 되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이며 그전에는 가려져 있던 내면에 있는 참나의 비추임이 현실로 드러나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초월적이며, 신이 시간과 장소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선형적인 개념이나 생각과 다른 것입니다. (내안의 참나를 만나다[Discovery of the Presence of God] 서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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