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공부의 네 단계

목운 2019. 9. 19. 07:32

6년전 제대로 시작했다고 생각하는 제 공부는 은퇴후 공부로서는 딱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 공부는 어쨌든 경쟁사회에서 성공을 우선으로 여기는 공부였기 때문입니다. 그 무대에서 내려온 후에도 과거 관성대로 사는 것은 어리석음의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 계속 설파하는 이 공부의 목표는 이 세상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기보다 몸을 벗은 뒤의 안전을 구하는 것입니다. 호킨스 박사의 체험에 기반한 진술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 목표인 공부입니다. 즉 "신의 <현존> 안에 있는 궁극적 의식과 앎이 바로 <평화>입니다. 이 <평화>로써 무한한 보호가 있는 무한한 안전과 무사함이 보증됩니다. 고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공부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일 뿐만 아니라 이 공부의 결과 의식이 진화하고 향상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이웃에게 유익이 돌아가기 때문에 하화중생이 동시에 구현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부과정에서 호킨스 님의 멸정복성(Dissolving the Ego, Realizing the Self)를 번역하다가 우연히 8~9세기 당나라 말기에 사셨던 이고 선생이 복성서(復性書)를 지으신 걸 알아 공부했습니다. 성대 김용남 박사를 통해서 이분이 바로 신유학(성리학)의 개창자임을 알았고 따라서 동서양 영성의 접점이 의외로 가깝고도 간단한 데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각설하고 신유학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왕양명의 실천에서 공부의 네 단계를 알려드리고 싶어서 얘기를 꺼냈습니다. 네 단계라 함은 범부, 학인, 군자, 성현이 그것입니다. 범부는 인욕에 치우쳐 천리를 보존하지 못하는 무능의 상태에서 자신의 의식을 돌보지 않는, 즉 무반성 상태의 사람입니다.

학인은 성찰을 통해 의식을 돌보긴 하지만 사욕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 상태의 사람입니다. 그 다음 군자에 대해서는 '바야흐로 사욕을 말끔히 쓸어낼 수 있어서 극복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르면 팔짱을 끼고 앉아도 잘 다스려지는 때가 있게 된다'라고 양명은 전습록에 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현의 경우는 천리를 선택하는 것이 완전히 몸에 배어 더 이상 반성이 필요없는 경지입니다(이상 유교 명상론, 506~507쪽). 이 경지야말로 공자께서 '마음 가는 대로 해도 걸림이 없다'고 표현하신 완성의 경지입니다. 다만 제가 자주 언급했듯이 공부 과정에서 어느 때인 줄 모르게 공부의 동력이 은총에 달려 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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