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논설과 메시지

12. 풍요 이상의 삶

목운 2016. 1. 27. 08:19

그리스도가 말한다:

내가 팔레스타인 땅을 걸을 때 말했다.

‘나는 너희에게 풍요 이상의 삶을 가져다 주려고 왔다.‘

기독교도 가운데 누가 이 말을 참으로 이해했는가?

너희 인간의 마음에 풍요 이상의 삶이란 더 힘 있고 생기 있으며 건강한 것, 어쩌면 부자가 되는 것을 의미할지 모른다. 그러나 생명 자체가 개별화한 내 관점에서는 이 순간 너희 인간 의식을 훨씬 뛰어넘는 무엇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유태인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궁극의 진리를 너희가 일별할 수 있는 고차원의 영적 의식으로 너희를 드높일 적당한 때임을 알고 있다.

풍요 이상의 삶! 이 말을 처음 할 때 나는 너희 인간의 인식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밝히려고 했다. 실상 너희가 아직 참된 영적 도정에서 모든 피조물에 형태를 주고 의식을 주는 그것의 실체를 찾지 않는다면 너희는 에고라는 ‘통치자’에게 구속당하고 있을 것이다.

에고는 너희 의식으로 하여금 전적으로 너희 행복과 생존에 몰입하게 하므로 너희 인간의 인식과 전망을 극히 좁게 제한한다.

사람이 생명과 생명의 기원에 대하여 더 많은 것을 찾기 시작하는 것은 우선 삶에 ‘소아’보다 더한 것이 있다는 메시지를 그 영혼이 그 인간 의식에 보낼 때뿐이다.

인간 마음의 의식이 에고에 오랫동안 종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점차 깨어남에 따라 현재 알고 있는 지식 이상의 많은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미지의 것에 대해 더 위대한 지식을 추구하기 시작할 때 인간은 종교에 끌릴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적으로 말해서 교회가 그 지혜와 가르침 안에 틀림없이 생명의 근원에 관한 비밀을 가지고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여 종교적 인간으로 가득하도록 공헌함으로써 에고 지향적인 마음의 의식을 깨우치는 유치원 역할을 했다.

하느님을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며 이웃의 아내를 범하지 말라, 비방하며 거짓말하지 말라,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등등.

이 모든 계명은 에고 왕국의 통치에 관한 것이다. 영혼의 영적 영역에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영혼은 그런 인간적 충동에 대해 전혀 모른다.

바로 첫 번째 금지 명령인 ‘너희 주 하느님을 공경하라’는 것도 이교의 개념이다.

이교도는 숭배할 우상을 세운다. 영적 달인은 이러한 초보적 인간 관행을 넘어 무한자, 즉 지상의 모든 의식체를 초월하는 신 의식을 체험하기 시작한다.

교회, 특히 기독교와 유태교의 신자가 되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너희는 너희에게 개체성과 의식을 부여한 위대한 근원에게서 나왔음을 언제나 기억하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너희는 에고 충동을 억제해야 한다.

에고 충동으로 인하여 너희는 너희를 편안하게 하거나 행복하게 해준다고 믿는 소유물을 꽉 붙잡고 너희를 불안하게 하거나 너희 생명과 복지에 해롭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밀쳐내고 필요하면 육체적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하나의 종교를 가지게 되면 너희의 직접적 관심은 신에게 끌리고 신을 기쁘게 하고 너희 행복을 지키기 위해 위에 적은 모든 에고 충동을 피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이것은 여전히 에고에 기반한 지시사항이다. 그 뒤에 숨겨진 목적은 행복과 안전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기독교도라면 보통 다음을 따르게 된다:

‘하느님을 기쁘게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이다.’

너희가 알다시피 이 말은 삶을 제대로 볼 능력을 심하게 제약한다. 너희가 신을 기쁘게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게 되고 필히 벌이 따른다는 그와 같은 끔직한 경고는 너희 마음을 가두는 심리적 우리가 된다. 그 벌이 어떤 것인지는 말해지는 바 없지만 그 공포는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머리 위에 드리워진다. 어떤 이들은 이 가르침 때문에 엄청 침울하게 지낸다.

이것은 그 온전한 의미에 있어서 무한한 기쁨이고 열정이며 웃음이고 사랑이며 자연스러움이고 복된 느낌이며 본유적인 낙관적 감각인 (그리하여 삶이 결코 너희를 끌어내리지 않는, 먹고 마시고 입을 것과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충분하게 보장해주는) 삶의 충동을 심하게 제약하는 것이다.

생명은 그 기원을 우주 의식에 두고 있는 의식의 활동적인 흐름이다. 그것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에게서 잠자는 씨앗을 합치고 점화하여 과학이 DNA라고 부르는 태생의 계획에 따라 성장시킨다.

이것이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너희 것인 우주적이고 영원한 생명의 충동이다. 이것이 어린이가 그 어린 마음에 생각하던 대로 삶이란 것이 참으로 안전하며 고통과 불행이 없는 것인지 의심하기 시작하기 전에 그들에게서 볼 수 있는 바의 그것이다. 본능적으로 아기들은 누워서 손과 발을 흔들고 웃음을 터뜨린다. ‘살아 있는 것은 좋은 것이야’라고 그들은 말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모든 필요가 충족되는 사랑 가득한 집안에 태어나는 행운을 누렸다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 깊은 생명의 양상이 있는데 그것은 은하계와 지구라는 피조물 자체 안에서 우주 의식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이다.

그것이 내가 팔레스타인의 시나이 사막에서 분명히 지각하고 이해하도록 부여받은 양상이다. 나는 생명의 기원, 즉 존재의 근원이 가장 미소한 것에서 가장 웅대한 것에 이르도록, 팬지꽃에서 코끼리까지, 아주 특별한 방법, 즉 지성적 방법으로 모든 생물을 통해서 언제나 드러나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매우 항구적인 것이어서 너희는 그것을, 모든 피조물을 가시적 존재로 만들어주는 것의 본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그것의 본성은 지상의 모든 경이, 환희, 행복, 인간적 성취와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생명체와 인간과 동물이 어디를 가든 우리 존재의 근원에 내재하는 본성에 의해 말 그대로 매순간 유지된다. 거기에서 벗어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 위대한 진리는 내가 이 땅에 왔을 때가 아니라 내가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다시 와서야 비로소 그 의미가 완전히 드러났다.

너희는 행복이나 성공, 꿈의 확장, 건강 따위를 좇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게 이미 너희 안에 있으며 너희 존재의 근원, 즉 네 생명의 근원이 너희 안에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열렬히 그리고 당연히 갈구하는 이 모든 게 너희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네 조상과 그 앞 조상들이 만들고 전수해준) 네 모든 마음의 구조, 믿음, 의견 속에 숨겨져 있기 때문에 네 것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가능한 많은 이들이 필요한 행동을 할 수 있게 되었듯이 너희 심리 프로그램을 대대적으로 보수하기 시작할 수 있는 적기다.

신화를 벗겨내고, 무섬증을 부르는 유령 및 공포, 절망, 스트레스, 비통을 지워내고 깨어나 굳게 서서 그 모든 게 너희 마음에만 있는 개인적인 조건화에 유래하는 것임을 깨닫고 모두 없애라.

너희는 틀림없이 행동은 말보다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존재의 위대한 진실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혼자가 아니다.

긍정적 사고를 설교하는 선생들이 있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나는, 하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고 분명히 말한다. 내가 의미하는 것은 생명이 바로 너희가 바랐던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즉 모든 의심을 쓸어낼 때 그리고 너희 마음과 정서에서 과거의 생각과 감정을 제거하는 만큼 그 생명이 너희에게 번영과 기쁨과 성취를 가져다 줄 것임을 믿을 때 말이다.

이것이 ‘풍요 이상의 삶을 주려고 내가 왔다’고 말했을 때 내가 뜻하는 바다.

너희 안의 생명이 무엇보다도 너희를 성장시키고 다음에 너희 계획과 희망, 기대를 키워주며 (너희 계획, 희망, 꿈이 제대로 완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모든 필요한 지원을 해준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려고 내가 왔다. 그것은 너희 어려움을 해결해 주며 네 심정이 괴롭거나 병들어 상한 곳을 치유해주며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생기면 그 요구 모두를 완전히 채워준다. 그리고 생명은 인간과 달리 그것이 시작되면 질서 있는 시스템을 유지한다.

이 모든 게 풍요 이상의 삶인데 그것은 네가 가능할 것이라고 꿈꾼 것 이상이다. 내 말을 시험해보라. 네가 가장 바라는 소망을 뚜렷이 그려라. 조용히 명상하며 그것을 신 의식에게 가져가서 청하고 네가 받고 있음에 대해 정성껏 감사하라. 네 요청은 이제 생명으로 가득차서 씨앗을 땅에 심고 물을 주면 자라는 것과 정확히 똑같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덧붙이건대 결코 의심하지 말고 네가 받을 것에 대해 계속 감사하라. 그러면 아주 분명하게 응답받을 것이다.

치유를 비롯해서 모든 아름답고 유익한 것이 너희 것이라는 메시지를 읽고서 네 기도와 믿음에도 불구하고 왜 여전히 아프고 빈곤한 것일까 의심할 수 있다. 너희는 얼마나 진짜 믿을 수 있을까 진지하게 묻는다.

참된 믿음이란 매우 드문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참된 믿음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너희가 모든 부정적이고 두려움에 찬 불신을 뛰어넘는 방법이라고 알고 있는바 압도적으로 초월적인 확신의 순간이다. 그것은 생명력이 그 어떤 질병보다도 강력하고 변형력이 있으며 완벽하게 원자 요소를 통제하는 상태다. 그리하여 수 세대에 걸쳐 만성적이고 치명적인 병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입증하고, 간구했던 바의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일어나고 열과 권능이 흘러듦을 느끼며 때론 빛이 보이고 마음과 몸이 아프기 전처럼 되는 것을 체험하는 일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 장기간에 걸쳐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깎아내리기도 하지만 신속하게 저절로 낫는 것만큼이나 지속된 믿음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이다. ‘필요가 충족되는’ 또 다른 기적에서도 너희가 깨닫는 것 이상의 방법으로 일어난다. 믿도록 노력하라, 믿음을 위해 기도하라. 기대하는가 마는가 해도 주어진다. 신성과의 만남을 찾고 접속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절대적으로 꾸준히 하라. 그러면 분명히 이루어진다.

청하면 받고, 구하면 너희에게 이뤄지고, 두드리면 열린다는 것은 존재의 법칙이다.

걱정 말고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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