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편지

다음 천 년의 영성

목운 2021. 2. 15. 15:49

“내가 구약성서의 가르침에 완전히 반하는 가르침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이 신약성서 어디에도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과, 따라서 그것을, 내 삶과 가르침을 제대로 기록한 책으로 받아들여서도, 믿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너희가 온전히 알기 바란다.” (267쪽)

지상에 보다 조화롭고 평화로운 인간 사회를 구축하는 데 기독교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그 실패 원인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유대교의 창조자 개념에 있다는 것은 우리 책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피라미드가 세워지던 기원전 13-15세기를 살았던 모세의 리더십에서 나온 믿음들이 신약성서와 바오로의 편지들과 타협하여 성립한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유대 민족의 이익에 복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책은 제자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가 가르치고자 했던 것을 대부분 덮어 감춰버렸다.”고 합니다. 즉 기독교는 예수의 제자들과 바오로가 “유대인들을 최대한 한데 뭉치게 하고 이방 개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어낸 종교”라고 합니다. 지난 2천 년간 나름의 역할을 했지만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기 때문에 초종교적 영성에 기반한 새로운 실천 방안을 찾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뜻과 달리 유대교의 심판하고 벌주는 창조주 개념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체험한 하느님은 생명을 낳고 기르는 ‘무조건적 사랑’이기 때문에 구태여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이 ‘아버지’였으며 더 정확히는 ‘어버이’ 또는 ‘아버지-어머니’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영적 발전은 오직 ‘존재의 법칙’과 ‘존재의 근원‘을 인식하고 깨닫는 데 있습니다. 그러한 전통은 동서의 신비주의 영성에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모든 신비 영성에 공통된 점이 바로 직접적 신 체험이며 각 사람이 교회의 중개 없이 성서와 같은 경전을 직접 학습해서 신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본 것은 루터도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일관되고 꾸준한 노력을 한다면 은총의 도움으로 누구나 거기에 이를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개를 배제한다는 점에서 정보화된 지구촌 시대에도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편지’는 ‘존재의 진실’을 현대적 언어로 전해주는 그리스도 의식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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