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14장 - 포기와 생존

목운 2017. 4. 1. 09:34

포기와 생존

몇가지 요점을 되풀이 하면, 에고의 중핵은 동물 생명의 발생 초기에 형성되었는데 그것은 근원적으로 내부에 에너지원이 없다. 식물계에서 이러한 내재적 결함은 햇빛으로 엽록소의 에너지를 화학 에너지로 바꿈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박테리아와 원생동물과 같은 원시의 동물 생명은 외부 환경에서 필요한 요소를 획득해야 한다. 이 때문에 탐지하고 처리하는 시스템과 '선(생명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과 '악(독성이 있는 것)'을 분간하는 능력을 창조할 필요가 생겼다. 이러한 필요성에서, 생존에 기여하고 에고기능에 본질적인 동물적 본능이 기초적으로 진화하였다.


이 근원적 작동기제가 지적 능력의 구조와 기능을 이루며 그에 의해 복잡한 시스템이 통합적이고 조화롭게 작동하게 된다. 호모 사피엔스에게 전뇌가 발생함으로써 신경계의 엄청 복잡한 기층이 발생했지만 그것은 여전히 동물적 생존에 발맞추어진 유형을 가진 것이었다. 이러한 정교한 진화상 작동기제의 총체가 에고(마음, 감정)를 구성하는데 그 에고가 내적이고 독립적이며 자율적인 생명의 근원('나'라고 하는 것)이 된다.


위와 같은 사정에서 에고를 포기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렵고 반발을 사며 종종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는지 분명해진다. 첫째가는 내면의 믿음은 에고가 생명의 근원이자 바탕이며 중핵이어서 그 존재는 내적으로 신성과 동일한 것으로 여겨진다. 에고의 자기애적 중핵에 있어서 통제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은 죽음과 같으며 따라서 주권과 생존 문제라고 믿어지는 것을 위해 투쟁한다. 실상에 있어 에고(소아)는 그저 작동기제이며 그것으로 참나의 비선형적 잠재성이 그 카르마적 성향과 독자성을 가진 개별 인간이라는 형태의 생명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형적이며 유한한 소아는 비선형의 무한한 참나가 표현된 것이며 참나는 소아의 실제 '근원'이기도 한다. 따라서 참나는 한계가 없는 맥락인 반면 에고(소아)는 한계를 가진 내용물이다.


포기라는 과정을 통해서 참나의 바탕에 존재하는 실체가, 소아가 참나로 용해됨으로써 점차 드러난다. 이 과정은 지향(의도)뿐 아니라 신앙과 확신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평균적 개인의 의식 수준은 저항과 진화상 요인 때문에 보통의 삶이라면 한 생애 동안 대략 5점 정도 상승한다. 그러나 영적으로 몰입한 사람은 수백 점이라는 아주 큰 도약을 체험할 수도 있다.


무상함

모든 두려움의 바탕에는 죽음에 대한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으며 따라서 영적 수행에서 되도록 이른 시기에 이 두려움의 힘을 빼줌으로써 많은 내적 작업을 에둘러 갈 수 있다. 육체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동물적 본능에 덧붙여서 에고 자신에 대한 사랑인 자기애에서 기인한다. 죽음은 체험의 종말을 의미하며 체험은 생명과 같다. 따라서 에고는 선형적이고 익숙한 것에 매달린다.


육체적 죽음의 불가피성은 인간 삶의 주된 수수께끼며 따라서 사람들은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부인함으로써 대응한다. 종교와 영적 교육은, 죽음을 육체적 삶의 양식에서 영적 삶과 존재로 그저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재맥락화해 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 육신 삶의 무상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소중하다. 되돌아보면 참으로 소중한 것이란 체험의 지속성, 즉 우리가 지상에 얼마나 오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유익한 임상적 비유를 들어보면 두통이 날 때 지난 번 두통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하는 것은 진짜 관계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오직 현재의 것만이 문제가 된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몸으로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며 남는 문제란 손자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것처럼 눈앞에 어른거리는 집착을 포기하는 것뿐이다.


삶에 대한 감정적 집착의 상당 부분은 주로 감상적이고 편애하는 것들이다. 가장 소중한 것들이란 삶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한 것과 그 익숙함에 대한 감상적 집착이다. 인간 삶과 그 관계들이 '집'이 된 것이고 따라서 사람은 익숙한 것을 떠나 미지의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에너지나 질량 불변의 법칙처럼 생명의 법칙에 따라서 생명의 지속성이 보장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신앙이 요구된다. 질량과 에너지처럼 생명은 사라지지 않고 모습만 바뀐다(이 진술은 1,000으로 측정됨). 그리하여 죽음이란 실제 몸을 떠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정체성에 대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는다. '나'(소아)라는 상태는 변하지 않으며 육체적 종말로 분리된 후에도 지속된다. 즉 천국 또는 다른 영역으로 가거나 환생을 선택할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이 진술도 1,000으로 측정됨).


영에게 있어 육신 삶에서 배운 교훈은 영적 진화에 중요하지만 몸을 가진 동안이란 그저 하나의 삽화일 뿐이다. 따라서 육체이탈과 임사체험을 한 사람은 훨씬 잘 준비가 되어 있다. 헌신, 희망 및 신앙으로써 죽음의 두려움 대신에 낙관, 기대 및 평화와 사랑인 신적 섭리의 이끄심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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