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12장 - 궁극의 실체에 관한 그밖의 묘사

목운 2017. 3. 20. 18:04

궁극의 실체에 관한 그밖의 묘사

유일신론(헤브류,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는 궁극의 실체를 마치 초인적 성격을 가진 하나의 초인격인 것처럼 설명할 수 있는 실체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특정한 실체로서 신은 공간과 시간, 심지어 특정 장소에 자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이미 언급했듯이 신이 동기, 의지, 지향, 선호 및 편애와 같은 사람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그리하여 이 가운데 무엇이든지 논박할 수 있게 되며 신의 '본성'이 신학적 토론과 지적 가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고대 인도나 극동 문화가 이해하는 궁극의 실체에 대한 옛날 문헌은 유일신적 문화와 종교에는 익숙하지 않다. 이들의 경우는 역사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묘사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의식 자체의 본질로부터 나온 계시에 의한 것이다. 크리슈나, 붓다 및 고대 베다의 현인들의 계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깨달음의 결과인 궁극의 계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내면에서 나오는 앎은 태생적이며 도달할 수 있고 체험적이며 묘사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최초의 확인가능한 보편적 바탕에 있는 힘이며 에너지로서 거기에서 존재의 실현 및 가능성이 생겨난다. 이 궁극의 실체는 의식 자체의 기층과 근원을 탐구해 들어감으로써 드러나는데 의식은 모든 정의가 불가능한 궁극의 비선형 맥락이다. 그리하여 깨달음의 길을 거치면 '당신-신'을 마주보는 '나-인간'이란 분리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소아에 비교한 참나라고 하는 아드바이타(이원성)의 말 뜻이다. 이것은 선형적 에고라는 장애물이 버려졌을 때 궁극의 비선형적 실체가 저절로 드러나게 되는 신비의 자명한 핵심이다. 


신비한 계시는 헤브류와 기독교("신비한 일치[Unio Mystica]") 전통 및 이슬람 수피 등에서 묵상에 의해 도달하는 내면의 노선이다. 그것은 힌두의 고전적 요가 전통뿐 아니라 선(禪)의 '길없는' 길이자 불교의 핵심이기도 하다. 계시되고 깨달아지는 궁극의 현존은 말로 할 수 없고 이름지을 수 없으며 따라서 논쟁이나 동의 또는 신학적 대화를 초월한다. 정의할 수 없기에 궁극의 실체는 이름짓거나 특성화할 수 없으며 인과, 공간, 시간이나 위치처럼 선형 개념의 한계를 뛰어넘는다(Grace, 2007).


근원적 주관성의 길은 의식 자체의 내재적 중핵을 드러내는데 의식은 원초적 바탕이며 체험적 인식 능력의 근원이어서 가설을 세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리하여 가설적인 명제는 그 초월성에 의해서 궁극적으로 해답을 얻게 된다.


궁극의 실체의 핵심은 정의할 수 없는데 그 결과 이미 언급한 대로 정의할 수 없고 이름 지을 수 없다. 그래서 불성(역설적이게도 비인격적이지만 체험의 바탕이다)과 같은 말을 쓴다. 이 정의할 수 없는 특성은 상존(常存)하며 필수적이고 편재하는 선험적 조건(기독교에서 거기에 가까운 용어는 '신성[Godhead]'인데 여기에서 [그것이 우주의 존재에 적용될 때] '창조주'란 말이 나온다)이다.


설명가능한 선형적 영역은 설명할 수 없는 비선형적 '근원'에서 나온다. 궁극의 바탕인 모든 실체의 중핵을 깨닫는 것은 깨달음이라고 부르는 조건의 결과인데 깨달음은 그 내면 상태가 '형언할 수 없음'이란 말로 특징지을 수 있는 신비가의 영역이다. 그것은 체험으로 확인되고 의식측정 방법으로 확증할 수 있으며 지성적으로 이해도 정의도 할 수 없다. 따라서 그것은 가설적 명제나 논거를 사용하는 지성의 영역이 아니다(이상은 1,000으로 측정됨).

모든 지적 의문에 대한 해답은 체험에 달려 있으며 그 수단을 신의 현존 발견에서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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