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요령과 요점

윤집궐중의 실천

목운 2018. 4. 6. 05:35

조선 말기에 독학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선비들은 기독교 핵심이, 불교와 도교 철학이 흠뻑 스며든 성리학에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경우 기독교도로서 대학국어 시간을 통해서 사서집주와 논어를 접했습니다. 논어 맹자를 간헐적으로 독서하면서 대충 지내던 중 탄허스님과 홍익학당을 만나면서 그 모든 게 하나로 정리된다는 느낌이 생겼습니다. 기독교와 성리학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느낌 말입니다. 그러다가 이고 님의 복성서를 번역하면서 성리학이 불교의 다른 버전임을 확인하였습니다.

중용 첫머리가 기독교 핵심 사상과 통할 수 있다는 생각을 이곳에서 여러 번 거론한 적 있지만 주자의 중용장구 서문을 오늘 처음 읽었습니다. 제 생각엔 논어도 그렇지만 중용도 디테일에 빠져버리면 숲을 놓쳐버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주자의 글을 읽으면 더 확신하게 됩니다. 주자가 처음 입문한 불교의 눈으로 유교 경전을 읽을 때 실천을 위한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즉 남명 선생처럼 언제나 깨어 있음을 상징하는 종과 언제나 의를 선택함을 상징하는 칼이 실천의 핵심입니다.

요컨대 유교, 특히 성리학은 요순우 및 공자와 같은 성인이 되는 것이 목표이며 거기에 이르는 길에서 중을 잡는 것(允執厥中)이 핵심이라는 것이 중용장구의 요지입니다. 여기서 중은 어제 논의한 희로애락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 즉 참나(性)로 읽어야 하고 거기에 이르는 방편은 남명 선생의 종이 상징하는 거경(居敬), 즉 명상의 실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중을 잡는다는 것은 일이 없을 때는 깨어있으면서 생각 없이 고요하되, 일이 있을 때는 고요함을 바탕으로 하여 일하는 것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길게 썼지만 홀로 있을 때는 명상 상태로, 사회생활을 할 때는 매 순간 모든 생각을 하늘(신성) 또는 불성에 바치는 염송기도를 하면 좋겠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면 기술적이고 실무적인 일은 어떻게 하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처럼 큰 일을 홀로 결정해야 한다면 우선은 기술적 지식과 집단 지성을 활용하되 주역 정신에 따라 괘를 뽑아 최종 결정을 하는 게 좋다고 봅니다.

괘를 뽑는 능력이 없는 제 경우 호킨스 박사의 근육테스트가 그에 못지 않은 방편이라고 봅니다. 근육테스트는 반드시 파트너가 있어야 하기에 그것과 같은 효과가 있는 오링테스트를 활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이제까지는 명상도 안 했고 그때그때 즉흥적 결정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직장생활도 형편없이 했고, 은퇴 후에는 큰 실패도 했으며 현재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남은 삶이라도 제대로 하려고 합니다.

'공부의 요령과 요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회광반조와 명상  (0) 2018.04.23
손에 잡히는 명상법  (2) 2018.04.15
명상과 염송기도  (0) 2018.04.05
동양 영성의 핵심 수행법 (3)  (0) 2018.01.22
동양 영성의 핵심 수행법 (2)  (0) 2018.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