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성(誠)과 중(中)

목운 2018. 4. 2. 09:15

어제는 혼자 24시간을 근무하면서 다시 한 번 성(誠)과 중(中)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돌아보면 혼자 있을 때 일에 몰두하지 않으면 재미있는 오락거리를 찾거나 고요를 깨는 무엇을 합니다. 그 결과 직장 말년부터 약 10여년 엉망진창 삶을 경영하여 깊은 절망상태까지 갔었습니다. 요컨대 적당히 세상에서 통하는 정도의 도덕으로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거의 바닥에서 떠오른 게 절대적으로 정직해야 하겠다(至誠)는 것이었습니다.


동양 영성은 혼자 있을 때 삼가는 것(愼其獨)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혼자 있을 때 삼간다는 것은 바로 중을 지킨다(守其中)는 것이고 중이란 희로애락이 드러나기 전의 상태(喜怒哀樂之未發)를 말하는 것이어서 바로 생각이 끊어진 자리를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중용의 키워드이기도 한 성(誠)에 대한 요지입니다.


중용은 특별히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밝게 드러나고 들리지 않는 것이 가장 넓게 퍼지는 것이니(不覩之覩, 見莫大焉, 不聞之聞, 聞莫大焉) 경계하고 두려워하여야 한다(戒愼乎其所不覩, 恐懼乎其所不聞)고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실천할 것인지 자세히 안내하는 공부를 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작해야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배우지만 세상은 거짓말투성이입니다. 저를 포함해서 사는 동안 사기를 당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고 속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이것이 개인적 불행과 사회적 재앙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성이란 고요한 상태(誠者定也)라 하여 성의 실천은 바로 명상에 있습니다. 명상은 생각이 끊어진 자리에 항상 접속하여 흔들리지 않고 선만을 행하게 합니다(擇善而固執之). 그러니 거짓 없음(至誠)이란 바로 수기중(守其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용은 중(中)이 우주의 근본(中也者, 天下之大本也)이라고 선언합니다.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은 이것을 흉내낸 말입니다.


요즈음은 나머지 삶만이라도 흑자를 기록하는 삶이 되기 위해서 매일 명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혼자 있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잘 해나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실은 명상이란 의식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첩경이어서 날로 삶이 개선될 뿐 아니라 결국엔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이 이미 입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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