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서

3절-2

목운 2016. 3. 15. 12:06

자사는 공자의 손자인데 조부의 가르침을 습득하여 중용 47편을 맹자에게 전했습니다. 맹자는 말하길 "나는 40살 이후 그 어떤 것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맹자의 문중에 공손추와 만장 등 여럿이 이 가르침을 배우고 전했습니다. 진시황의 분서 때 중용 가운데 1편이 남아 전해졌으나 궁극의 진리(至誠之道)에 관해서는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중용을 배우는 자는 그저 제도적 고찰, 구절의 해석, 외적 권위에 대한 연구, 검술의 연마 등에 그치고 있어 그 본래의 가르침에 대해서는 누가 제대로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子思, 仲尼之孫. 得其祖之道 述中庸四十七篇. 以傳于孟軻. 軻曰. 我四十不動心. 軻之門人達者. 公孫丑萬章之徒. 益傳之矣. 遭秦滅書, 中庸之不焚者一篇存焉. 於是此道廢闕, 其敎授者, 唯節行文章章句. 威儀擊劍之術相師焉. 性命之源則吾弗能知其所傳矣.)

 

진리의 실천방법이 희미해져 다시 되살려야 하건만 설마 내가 그 일을 하게 될 줄이야? 나는 여섯살부터 글을 읽었지만 그저 글자와 문장을 배웠을 뿐입니다. 참나를 따르는 이 가르침(性命之道)을 배운지 4년이 되었는데 내가 깨닫고 습득한 것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쪽으로 여행하여 오와 월 지방에 이르러 육참 선생을 알아보고 말씀드렸더니 선생은 "자네가 말한 게 모두 공자님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동방에 성인이 나온다 해도 자네가 오늘 말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남방에 성인이 나온다 해도 자네가 오늘 말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실천하는 바를 오직 꾸준히 행하라." 하셨습니다. (道之極于剝也, 必復, 吾豈復之時邪. 吾自六歲讀書. 但爲祠句之學. 志於道者四年矣. 與人言之, 未嘗有是我者也. 南觀濤江入於越, 而吳郡陸存焉. 與之言之, 陸참曰, 子之言尼父之心也. 東方如有聖人焉, 不出乎此也. 南方如有聖人焉, 亦不出乎此也. 惟子行之, 不息而已矣.)

 

슬프다, 참나에 따르는 책이 있지만 그것을 배워 뚜렷이 해석하는 자가 없어 모두 장자, 열자, 노자, 석가 문하에서 연구하고 있으니 참나를 궁구하는 이가 부족하고 그 가르침을 믿는다고 하는 자가 모두 다 이 지경입니다. 나에게 물어오는 자가 있어 내가 전해받은 바로써 책을 써서 그 가르침의 근원을 밝힘으로써, 분서로 폐기되어 널리 전해지지 못한 가르침을 오늘날에 전하여 '복성서'라 하고 참나와 에고 다스리는 법을 가르치고 진심으로 배우려는 사람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슬프도다, 오늘날 공자님이 다시 살아오신다면 이러한 내 뜻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嗚呼. 性命之書雖存, 學者莫能明. 是故皆入於莊列老釋. 不知者, 謂夫子之徒, 不足以窮性命之道. 信之者皆是也. 有問於我, 我以吾之所知而傳焉. 遂書于書. 以開誠明之源, 而缺絶廢棄不揚之道. 幾可以傳于時, 命曰, 復性書 以理其心. 以傳乎其人. 烏戲. 夫子復生. 不廢吾言矣.)

 

자습노트)

짐작컨대 장구와 문장해석을 중심으로 과거 시험을 위한 유학공부를 하다가 약산스님을 만나 깨달음을 얻은 이고가 기존의 유학에 대해 새롭게 해석한 내용을 책으로 쓰게 된 배경을 적은 것입니다. 제가 보건대는 유교가 가르치는 핵심 진리가 불교의 깨달음과 다르지 않은데 잘못 전해지거나 진시황의 분서로 대가 끊겼을 뿐이라고 생각해서 유교를 부흥하려는 당시 엘리트들을 대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