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서

2절-2

목운 2016. 3. 30. 20:40

묻습니다. "아예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 움직이는지 움직이지 않는지를 모른다면 소리가 나도 들리지 않고 사물이 나타나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답합니다.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면 어찌 정상적인 사람입니까? 똑똑히 보고 듣지만 보이고 들리는 것에 휘둘려서 마음이 혼란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참나를 실현한 후의 마음은 알지 못하는 게 없고 하지 못하는 게 없으며 고요히 움직이지 않아 지혜의 빛으로 모든 것을 꿰뚫으니 그것은 의식이 맑고 투명한 때문입니다. (問曰. 本無有思, 動靜皆離, 然則聲之來也, 其不聞乎, 物之形也, 其不見乎. 曰. 不覩不聞, 是非人也. 視聽昭昭而不起於見聞者, 斯可矣. 無不知也, 無不爲也, 其心寂然, 光照天地, 是誠之明也.)


대학에 가라사대 "참된 앎에 이르려면 모름지기 먼저 사물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역경(系辭上傳)에 가라사대 "주역의 정신은 생각도 걱정도 없어야 하고, 일부러 행함도 없어야 하니 고요히 움직이지 않으면 세상의 모든 일과 사물을 느껴 알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심오한 경지의 성인이 아니면 누가 여기에 이르겠는가?"라 하였습니다. (大學曰. 致知在格物. 易曰. 易無思也, 無爲也, 寂然不動, 感而遂通天下之故, 非天下之至神, 其孰能與於此.)


자습노트)

생각이 끊어진 경지에서는 의식의 작용이 오히려 맑고 분명해지며 또한 에고의 욕심에서 나오는 사언행위가 없기 때문에 그때 비로소 사물에 대한 판단과 선택이 더욱 지혜롭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오래 습관이 들면 무소부재, 전지전능의 경지까지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마도 모든 영성 수련 및 그와 유사한 수행이 지향하는 바가 이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꾸준히 닦을 때 우리는 점점 더 밝아지고 언젠가는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