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3장 - 패러다임의 한계를 넘어

목운 2014. 8. 4. 12:53

의식 수준 측정치로 보면 과학의 영역이 400대로 측정되는 데 비해 영적 실체는 400대 후반에서 생겨나지만 500대 이상에서만 널리 발생한다. 의식 연구 덕분에 각 진화 수준의 핵심에 내재하는 확고한 에너지를 활용함으로써 이러한 수준들을 분간할 수 있게 된다. 반복하자면 1에서 1,000까지 볼 때 200 미만은 거짓, 200 이상은 진실을 가리킨다. 깨달음의 수준은 600에서 1,000까지이며, 1,000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다.


과학과 논리는 '입증 가능', '정의 가능', '객관적인' 등으로 묘사되는 반면 영적 실체는 필수적으로 주관적(체험적)이다. 따라서 사랑, 시사점, 행복, 의미, 유용성, 영감, 기타 질적인 추상 요소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게 지적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형 논리나 과학을 통해서 영적 진리를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식의 특성 자체(예, 회의주의의 함정)를 포함해서 신성의 실체나 비선형 차원을 '입증'하거나 '반증'하는 게 불가능하다.


'과학과 종교'에 부여된 출판물, 조직체와 노력들을 보면 학계 지식인들이 전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다. 거기에 600 이상의 깨달은 사람과 고고한 학자들은 없다. 과학자는 설득하고 '무엇무엇에 관하여 사고하는' 반면 신비가는 자동적으로 깨닫고 이해하고 '그것 자체가 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래서 학계(의식 수준 400대)의 한계와 제약 때문에 고금동서의 매우 영적인 천재와 깨달은 이들의 가르침(지수 500~1,000)은 '일인칭 진술'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학자 그룹에서 배척된다. 그러면 참된 영적 정보의 유일한 원천(이것들은 주로 일인칭 보고와 증언으로 된 것임)을 완전히 제거한 '과학과 영성'(모두 400대임)에 관한 학회는 어떻게 열릴 수 있게 되었을까?(번역본 호모 스피리투스 참조) 모순스러운 것은 모든 지적 산물은 그 자체 주관적 마음 작용에 대한 일인칭 설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형 차원은 객관적으로 증명 가능한 영역에 속하는 반면 비선형은 확인할 수 있고, 보여줄 수 있으며 확신시켜 줄 수 있지만 주로 내재적이고 주관적이다. 비선형은 두 패러다임 간의 커다란 차이 때문에 선형에 지배받지 않으며 선형으로써 정의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대비는 '학술' (지수 440)과 '임상' (지수 445) 과학 간의 분화에 의해서 고전적으로 주목받은 바 있다. 전자가 통계적인 지적 과정에 한정된 반면 후자는 의도, 목적의 진실성과 참가자의 측정 지수와 같이 수많은 맥락의 영향을 포함한다. 그리하여 의학에서 숙련된 임상의는 과학뿐 아니라 경험상 효과가 있는(종종 긍정적 결과에 필수적인 비전통적 의료 기법을 포함) 의술과 모든 적합한 의료 기법까지 이용한다. 이리하여 필자의 경우 모든 의학 처방이 듣지 않는 생명을 위협하는 찌르는 듯한 십이지장 암을 단 세 번의 '비과학적인' 침술을 받아 완치한 경험이 있다. 


의학은 예측가능한 것과 통계를 다룬다. 임상은 결과를 다룬다. 그래서 '감정을 가지는 것'이 성공적인 임상의에게는 필수 조건이지만 의학에서는 측정가능한 요인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임상적 성공과 숙련된 임상의의 경험은 주로 과학에 친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요소는 25년에 걸쳐 미국에서 매우 큰 심리치료 관행에서 볼 때 핵심적 발견이다(Hawkins and Pauling, 1973).


의학이 '비과학적' 이념이나 방법의 유효성을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멸시까지 하는 반면, 임상의는 더욱 노련하고 지적으로 겸손하며 따라서 실제 도움이 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진다. 아마도 가장 유명하고 널리 인정받는 예로서 단주동맹인데 여기에서는 높은 스펙의 사람들과 유명인을 포함해서 실로 수백만의 아주 가망 없는 이들이 극적으로 회복되었다. 또 수천 명의 의사와 전문직 종사자들이 영적 기반에 기초한 이러한 회복 사례에 포함되어 있다. 절망적이고 파괴적인 중독 병에서 회복되는 데 필요한 단 하나의 조건은 겸손과 더 큰 권능에 승복하는 것이다(Tiebout, 1999). 이리하여 영적 기반의 효력과 효능은 압도적으로 그리고 인상적이게도 분명한 일이다(12 단계 그룹의 측정 수준은 540임).


의식 측정 연구(605로 측정됨)의 가치는 선형 및 비선형 영역과 각 실재에 관한 패러다임을 모두 포괄한다는 데 있다. 그것은 두 패러다임 모두에서 확인가능한 가교를 제공함으로써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연결성은 400대 상위 수준에서 매우 뚜렷한데 그 위로 500대를 거쳐 성인들(570~700)을 포함하는 수준으로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 조로아스터, 붓다, 크리슈나(모두 1,000) 등의 위대한 스승들에 이르는데 이분들은 오랜 세기 동안 인간 삶을 맥락화 하신 분들이다.


400대 의식 수준의 힘은 스타인메츠, 에디슨,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와 프로이드 같은 과학계의 거인들로 예시된다. 유명한 과학자의 측정 수준을 유명한 영적 스승들과 비교함으로써 알 수 있듯이 400대 수준은, 영적 수준이 500대 이상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된다 것을 보여주는 다리라고 할 수 있다.  


200 이상의 각 의식 수준은 인간 잠재력의 진보와 성취에 기여한다. 파라오가 건설한 이집트 거대 피라미드는 인간의 노동과 선형 기술로 이루어졌으나 유럽의 대성당들(측정치 700 이상)처럼 실로 영감과 지향이라는 비선형 요인의 결과물이다.


최근 미국에서 지속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 복음주의 목사 릭 워렌이 쓴 목적이 이끄는 삶이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이 미국의 트럭 정류소마다 비치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널리 인기가 있는가를 보여준다. 그 책의 매력은 물론 책의 목적은 의미, 영적 가치와 인생에의 시사점을 제시함으로써 과학처럼 사회와 인간 삶의 가치에 크게 기여하려는 데 있다.


과학이 없으면 수백만의 사람이 병으로 죽을 것이다. 영적 가치를 고수하지 않으면 과학적으로 개발된 폭탄과 핵 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수백만이 죽을 것이다. 그래서 신앙 없는 과학은 공허하고 위험하지만 선업(善業) 없는 신앙은 사회적 가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지혜는 두 가지를 결합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선형과 비선형 영역 모두에서 동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앙이 확인가능한 반면 진리는 인류에게 무언의 혜택을 준다. 거짓에 대한 신앙은 역사에서 보는바 끔찍한 전쟁과 또는 오늘날 이슬람 테러에서 보듯 삶이 아니라 '죽음을 숭배하는' 것인데 그 수준은 섬뜩하게도 20으로 측정된다. 과학과 신앙에서 확인 가능한 진리는 행복과 성취는 물론 인간 생존에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