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정복성

11장 8

목운 2015. 4. 8. 13:49

깨달음 상태는 에고의 오감에서 나오는 고정관념이기도 한 환상을 대체하는 잠재적 <실체>입니다. 영적인 의도, 노력, 그리고 결단으로 인하여 한계가 있는 선형 세계에서 <실상의 총체>인 비선형 세계로 의식의 진화가 이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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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내용물과 정체성이 크게 이동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체험자 기능의 초점은 <실상>을 감추는 화면과 같아서 버팀목이 제거되면 조화를 잃고 떨어져 나갑니다. 이것은 의지를 신께 내어맡긴 귀결입니다. 소아의 실체감은 오직 실제 그 바탕을 이루는 참나의 <현존> 덕분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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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매우 엄격한 수행이어서 실상 본질적으로 정치적이고 계파적인 영적 운동으로 간주되는 움직임에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을 피합니다. (물론 더 나은 것으로 추측되는) "세상의 변화"에 대한 끌림이 내면에 있는 영적 청년의 유아기 이상주의에 호소하지만 그것은 성숙함에 따라 초월됩니다. 인간 삶이 어떠냐 하는 것은 인간 의식 자체의 전반적 수준에 따르는 자동적 귀결입니다. 따라서 세상에 이익을 주려면 세상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는 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되어 있는 상태는 그 행동(제한적이고 선형적임)이 아니라 그 본질(비선형적임)로 인하여 영향력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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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곧고 좁습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수련이 없으면 영적 에너지는 잡다한 것들에 끌려 흩어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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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에너지는 의식의 장에서 솟아나온 것인데, 물질 세계에 <창조>로 드러나는 <신성>의 <현존> 방식이기도 합니다. 깨달음의 능력은 의식이 그 근원으로 돌아간 결과일 뿐인데 그 근원이란 참나이기도 한 <내면의 신성>입니다. 

 에고(소아)는 그 다양한 기능 및 성질과 동일시를 하며 그것들에 "나"라고 꼬리표를 붙여 그것이 "나다"라고 말합니다. 그 결과 주권이란 허영을 취하는데 그것은 진화의 과정에서 감각 체험과 동일시해온 결과 생겨난 과오이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몸이" 가렵다고 하는 대신 "내가" 가렵다 하는 식의 결론이 도출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관찰자가 체험자의 주체성 및 내용물과 동일시하니까 느낌과 생각에 대한 저작권(소유권)을 주장하는 과오가 생깁니다.

 체험자 기능은 선형 자료를 모으는 정보 탐사이고 따라서 "나"가 아니라 "그것"입니다. 그것은 후각이나 촉각에 근사한 기능적 처리단위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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