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성서

<중편> 1절 참나 찾기 : 생각을 일으키지 않음으로써 에고를 잠재움

목운 2016. 3. 22. 09:18

누군가 묻습니다. “사람들이 어두운 상태가 오래되었는데 참나로 돌아가 밝아지는 일은 점진적인 것인지요, 그 방법은 무엇입니까?” 나는 답합니다. “생각도 근심도 없으면 에고가 생기지 않습니다. 에고가 없으면 바로 올바른 마음이라고 합니다. 올바른 마음이란 근심도 없고 생각도 없음을 말합니다. 주역(系辭下傳)에 가라사대 하늘 아래 무슨 생각이나 근심이 있더냐?’ (文言傳) 가라사대 ‘빗나감을 막고 온전함을 지킨다.’ 하였고 시경에는 생각에 치우침이 없구나!’고 하였습니다.” (或問曰. 人之昏也久矣. 將復其性者, 必有漸也, 敢問其方. 曰. 弗慮弗思, 情則不生, 情旣不生, 乃爲正思, 正思者, 無慮無思者也. 易曰. 天下何思何慮. 又曰. 閑邪存其誠. 詩曰. 思無邪.)

 

또 묻기를 그러면 됩니까?” 하니 답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근신하여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며 아직 번뇌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시끄러움을 벗어난다는 것은 아직 시끄러움이 있는 것이고 시끄러움과 시끄럽지 않음이 모두 없어지지 않으면 여전히 에고 상태인 것입니다. 주역(系辭下傳)은 말하길 밖으로 길흉화복과 안으로 후회와 주저함이 있는 것은 모두 시끄러움에서 오는 것이니 어찌 참나를 찾았다 할 수 있는가?’ 하였습니다” (曰. 已矣乎. 曰. 未也. 此齋戒其心者也, 猶未離於靜焉. 有靜必有動, 有動必有靜, 動靜不息, 是乃情也. 易曰. 吉凶悔吝, 生乎動者也. 焉能復其性也.)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답합니다. “고요할 때 마음에 생각과 근심이 없음을 알아야 하니 이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시끄러움과 시끄럽지 않음을 모두 떠나 고요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지극히 온전하고 진실한 상태입니다. 중용은 온전하고 진실하면 스스로 분명하다고 하며 주역(系辭下傳)천하의 모든 것은 오로지 진실됨을 지키는 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曰. 如之下. 曰. 方靜之時, 知心無思者, 是齋戒也, 知本無有思, 動靜皆離, 寂然不動者, 是至誠也. 中庸曰. 誠則明矣. 易曰. 天下之動. 貞夫一者也.)


자습노트)

여기에서는 대립쌍이 발생하기 전의 고요하고 분별없이 침묵하는 마음의 상태가 바로 지극히 온전하고 진실한 상태(至誠)로서 바로 참나(性)로 깨어 있는 상태임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세상의 프로그램에 물들어 살기 시작하면서 어린이 마음(赤子之心)을 잃어버리고 이원적 세계에 빠져듭니다. 여기에서 길흉화복과 후회, 주저함 등 불행을 짓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참나로 돌아가는 것(復性)을 거듭 이야기하는 저자의 뜻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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