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8장 - 도입(2)

목운 2017. 3. 5. 19:00

역사가 적절히 보여주듯이 정치적 대화에서 개념을 처리하는 과정은, 종종 치열한 투쟁을 하는 가운데 수백만 명이 죽을 정도로 격렬해지곤 한다. 정치적 광증은 폭력, 열광, 종교적 극단을 낳아 오늘날의 세계뿐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모택동, 김정일, 아야톨라, 아돌프 히틀러 등의 숭배에서 보듯이 국가적 숭배 그 자체가 종교가 된다. 그 측정 수준이 90인 군대의 직립 보행은 파시즘 독재의 병리이다(이란의 오늘날 군대 열병을 볼 것).


그런 사회가 여전히 신이나 종교를 입에 발린 말로 숭배하지만 실은 신을 대신한 지도자의 악의에 찬 메시아적 자기애의 결과 연출된 것이다. 독재자들이 있는 곳에서 군중은 감정과 경외심에 지나치게 사로잡혀서 대놓고 울어댄다.


앞에 언급했듯이 헌법과 미국 정부의 기본 구조는 종교를 드러내 놓지는 않지만 유신론자나 자연신론자들이 만든 것이다. 나아가 신정 국가로 귀결될 수도 있는 특정 종교의 우선권을 인정하지 않고 평등과 자유(영미법)의 유일한 원천으로서 신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문화적-사회적 실체로서 종교적 표현에 대한 권리의 또 다른 원천은 '언론 자유'라는 기초적 선언에 의거한 것이다. 몇몇 판결에서 법원은 언론 자유에 대한 범위를 크게 넓혀서 '상징적 연설'로 여겨지는 행위나 육체적 행동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하였다. 역설적이게도 그러한 극단적인 자유 때문에 공공 장소에서 '하느님'이라는 말을 담은 자유로운 연설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또 대통령과 대법원장을 비롯한 모든 고위 공무원이 손을 성서에 대고 공직 선서를 해온 수백년의 전통 때문에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른 판결들이 병존하여 정치적 이득이 돌아오리라는 기대에서 정치적 편파왜곡, 위선적 발언 및 비정상적 미사여구에 대한 운영상 규범적 통치를 문제삼는다. 법조문을 주장하지만 동시에 명백히 법정신(그것은 마음이 아직 고정관념으로 물들지 않은 성실한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아주 자명하건만)을 위배하는 해석을 멋대로 조작한 결과 왜곡이 발생한다. 상위 법원이 속임수 있는 슬로건이나 상대주의적 이데올로기(160으로 측정됨)의 일시적 인기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라고 철없이 추정할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사회정치적 오류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데 무관심하다면 우리는 "의식이 160인 외과의가 당신을 수술해도 좋을까요?"라고 물어볼 수 있다. 아니면 자동차 수리공이나 법정 대리인이 그 지경이라면 어쩔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처음에 지적한 똑같은 이유로 민주주의는 몇세기 못 갈 것이라는 데에 역사학자들은 주목한 바 있다. 소크라테스는 유권자들이 점점 더 많은 이득을 추구함으로써 결국엔 자유를 잃어버리는 지점까지 이르게 되어 성실성이 지켜질 것 같지 않다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현재 대략 85%의 세계인이 200 미만이라는 것이 주목할 만한데 그것은 안전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 실체의 사회적 표현을 의식 수준으로 측정한 것은 앞선 작업(예, 진실 대 거짓, 제9장)에 광범위하게 표기해 놓았다. 현대인은 미디어가 표면상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바에 극단적인 거짓이 들어 있어도 그런 미디어의 영향을 깊게 받기 때문에 거짓이 마치 진실과 동등한 효력이 있는 것처럼 대중적으로 통한다. 그 중요성 때문에 이 주제는 다음 장에서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마음은 태생적으로 본질과 외양 또는 진실과 거짓을 분간할 수 없기 때문에 순진한 마음은, 진실이란 것이 대중의 일반적 동의로써 확립된다고 전제한다. 이어서 마음은 확인을 구하고 믿을 만한 정보를 찾아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