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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심소욕불유구'로 가기 위해, 유교와 불교 및 기독교 영성을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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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4 03:45 실체,영성,현대인

불쾌한 일이나 환경은 거기에 있는 보이지 않는 카르마상 이익을 확인함으로써 유용한 쓰임새로 바뀔 수 있다. 즉 그런 일들이 카르마상 빚을 갚는 길이라고 받아들임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제나 자신을 용서하고, 기억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자신이 희생자가 아니라 가해자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지침이다. 인간 삶을 완전히 이해한다면 그것은 모든 인류뿐 아니라 개인의 의식 진화에 최적의 기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내, 간구, 끈기, 기원, 순명과 깊은 겸손에 의해서 영적 지향은 더욱 강해진다. 장애를 치우면 절대적 궁극의 진리와 실상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난다. '공중부양 수련', 주문외기, 자세 잡기, 억지로 하는 호흡법 및 그밖의 인공적 기법을 피하는 게 좋다(프라나야마 같은 호흡법이 190으로 측정된다는 것을 주목할 것).


영적 에너지나 쿤달리니 에너지는 영적으로 헌신하고 봉헌하여 진보한 결과 저절로 발생한다. 구도자는 참나가 내면에서 조화롭게 이끌어 운명처럼 미래로 이끌어감에 맡기는 것이, 목적을 가지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낫다. 그리하여 구도자는 참나가 지휘하는 내면의 부르심에 응답하는데 참나 쪽에서 그를 이끌어 미래의 운명으로 이끈다.


영적 진화는 일생에 걸친 몰입이며 그것에 의해서 이 세상과 그 안에서의 모든 체험이 영적 지향에 기여하는 삶의 한가지 양식이다. 이제 신의 종이 된다는 선택보다 더 큰 소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진보함에 따라서 모든 걸음이 똑같이 중요해지는데 그것은 비유컨대 벽 전체가 무너지고 일견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는 것이 단 한 개의 벽돌을 뺌으로써 이뤄지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기적처럼 보이는 일이 저절로 생겨나기 시작할지 모른다. 그런 현상들은 자신이 한 것이거나 소아의 몫이 아님을 인식하고 또 그것들이 마술적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기적적인 일들은 조건이 맞을 때 발생하는 잠재성의 구현일 뿐이다. 그 조건의 하나는 높은 수준의 의식 에너지의 존재다. 훨씬 더 높은 의식 수준에서 보면 모든 현상은 실로 우주 진화의 결과로서 저절로 발생하는 것이 자명해지며 따라서 생명이란 어떤 순간에도 완전할 뿐 아니라 우리가 그 안에 참여자(목격자)로서 존재하는 지속적인 현현(顯現)이다.


소아가 참나에 포섭되어 사라지는 과정에서 우리는 죽을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을 맞을 수 있다. 죽음을 당한다는 소아의 느낌은 잘못일 뿐이며 따라서 그 현상에 순종하는 것이 안전하다. 그것은 또 자신의 육체적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내려놓기에 좋은 때이기도 하다. 몸은 계속 걸어다닐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 선택은 소아에 달린 게 아니라 오직 참나에 달린 문제다.


높은 수준에서는 카르마상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나 잊혀진 약속과 관련된 에너지가 생길 수 있다. 그 어떤 곤경이나 의심이든 그에 대한 해답은 언제나 '신의 뜻'에 깊이 순종하는 데 있다.


개인적으로 자책하거나 현재 상태보다 더 멀리 '나아갔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은 별로 유익하지 않다. 영적 진화는 불규칙적이며 종종 간헐적이며 어떤 때는 정체 상태에 빠진다. 죄책을 가지는 것은 자기애적 방종이라는 것을 깨달으시라. 아무런 진전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길고 삭막한 기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위장이다. '길고 삭막한 기간'이란 결단을 촉구하는 시험인 것처럼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기는 영적 에고의 '진보'를 통한 이득 추구 소망을 초월함으로써 넘어갈 수 있다. 따라서 좌절 자체가, 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증거인 것이다.


"그저 견디기만 하는 사람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는 게 좋다. 몇년 동안 진전이 없는 것 같아도 기대했던 바를 훨씬 뛰어넘고도 남을 만하게 매우 빠르고 큰 진보를 갑자기 맞이할 수가 있다.


그러한 진보의 결과 기쁨과 지복 또는 심지어 세상에서 제 기능을 못할 정도의 열락이 생길 수도 있다. 그러한 상태가 되면 삶의 양식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설명하려고 해도 소용 없고 그들의 눈에는 그 상황이 애처롭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변화가 될 수도 있다. 희극적인 사실은 그들이 '그 친구는 틀림없이 정신이 나갔다.'고 하면서 뒤틀린 말을 하는 것이 역설적이게도 사실이란 것이다. 왜냐하면 소아의 마음은 '생각을 하지만' 그 참나는 침묵 속에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에고와 인간 육신의 삶은 무상하며 혼의 운명은 시간을 초월해 있다는 것을 명심하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작은 것을 큰 것에 넘긴다는 결단에 이른다. 친척, 친구나 사업상 관련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은 높은 소명에 답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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