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영성,현대인

제15장 - 융합, 요약, 고요한 세계

목운 2017. 4. 5. 17:38

융합

명상과 관상은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별개의 활동인 것도 아니다. 다만 마치 서로 다른 연구 주제인 듯 편의를 위해 나누어질 뿐이다. 실천상으로는 서로 섞여서 습관이 되는 의식 형태로 발전한다. 양자의 강조점은 비언어적, 주관적, 비선형적 맥락이며 거기에서부터 포괄적 의식의 장인, 궁극의 앎 자체에 대한 인식이 나온다. 마음이 인식하는 내용물에서부터, 본다는 것이 저절로 일어나는 자동적인 현상이라는 깨달음으로 바뀌는 것은 비교적 간단한 일이다.


의식 조사로 확인되었을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가르쳐진 바대로 영적 진보와 명상 및 관상의 실천에, 위대한 스승의 기운에서 나오는 고주파 에너지 장의 도움이 더해진다. 이것은 스승의 글을 읽는 것, 스승의 영상을 시각화하는 것, 그리고 아주 강력한 것으로는 스승의 기운 안에서 물리적으로 직접 함께함으로써 이뤄질 수 있다. 이어서 이 에너지 주파수는 당사자의 영이 존재하는 기운 안에 영원히 통합되어 아주 방대한 기간에 걸쳐 있었던 여러 번의 환생에서 지속된다. 그 목적은 계시가 고요히 펼쳐지는 것인데 이는 진화한 의식 상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이런 상태들은 비개념적이고 비선형적이다. 


의식이 매우 향상된 상태에서는 더 이상 기억이나 마음작용이 없다. 고요한 무(無)처럼 여겨지는 것에서 에고(소아)의 과거 유물을 포기할 수 있게 하는 앎이 생겨난다. 이어서 인격이나 분리된 정체성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나 '조건'이 들어선다.


요약

명상과 관상을 실천하고 진리와 검증된 가르침에 따르면서, 신의 의지에 맞추고 신과 합일하기를 바라고 몸바치면 앞선 스승의 에너지 장이 도움을 주고 드디어는 의식이 예기치 않게 크게 도약할 수 있다. 그래서 미리 이런 지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오늘날 깨달음에 이를 확률은 과거보다 천배 이상 커졌다. 그래서 무조건적인 사랑(지수 540)에 도달하는 것은 매우 목표 삼을 만하고 실질적인 목표다. 이 수준부터는 가는 길이 환희에 차게 된다. 600 수준이 되면 무한하고 고요한 정적과 평화를 만나고 진보하는데 신의 의지와 카르마와 잠재하던 계시(Knowingness)가 영적 기운 속에서 드러난다.


고요한 세계

에고(마음)는 마음의 선형적 내용물과 영상, 생각, 기억, 느낌 등을 쉬지 않고 처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에고는 문제 해결과 미리미리 하는 준비를 통하여 걱정을 줄이는 일뿐 아니라 새로운 것에 이끌린다. 손실이나 죄의식에 대한 슬픔과 실수와 과오에 대한 후회 같은 부정적 감정이 지배할 수도 있다. 종종 의지력이 약한 듯하고 끝없는 고문의 희생자처럼 느낄 수도 있다. 마음의 끝없는 방황을 막기 위해서는 그 숨겨진 동기를 찾아내서 환상에 불과한 이득을 포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저항보다 승복을 통해서 마음이 통제하는 듯한 환상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에고는 그 반대되는 것에 저항하더라도 자기만의 연이어진 마음 작용에 푹 빠지게 된다. 에고는 부정적 생각과 느낌을 처리하는 일에서 만족을 구한다. 에고는 증오를 사랑하고 즐긴다. 왜냐하면 텔레비전의 '비호감' 연예인에게서 보듯이 그것이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그만두어야 할 것은 이러한 만족과 은밀한 이득이다. 모든 부정적 감정은 그 숨겨진 이익이 있기 때문에 지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에고의 달콤함'을 거부하면 생각은 줄어들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마음은 '멍때리는' 경향이 있는데 그로 인해 권태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다. 


관찰해보면 마음은 미래를 내다보느라 바쁘거나(두려움), 과거에 매어달리거나(후회, 증오, 죄의식) 아니면 과거를 되살려 쾌락을 쥐어짠다. 그리하여 마음은 무언가 '하는 것'을 즐거움 삼는 진원지가 된다.


생각 '사이에' 접할 수 있는 고요가 있다고 일반적으로 믿어지는 반면 연습해보면 이것이 체험적으로 사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생각은 1/10,000초 안에 일어나며 그것은 마음의 '지각' 기능보다 빠른 시간이다. 그리하여 마음이 생각의 시초를 인식할 때면 그것은 이미 처리중인 상태다. 지각(처리) 기능 이전에 관찰자(목격자) 기능이 있다. 그런데 이 기능은 의식 자체의 장이 가지는 비독자적 기능(측면)이며 태생적으로 자동적인 작용이다. 관찰자(목격자)도 생각하지 않고 의식 자체도 생각하는 게 아니다(오직 마음만이 '생각한다'.) 순수한 의식의 인식 기능은 언제나 존재하고 의지와 관계 없으며 말로 할 수 없는 고요한 원시 상태다. 


관상(명상)에서 고요하고 형상이 없는 상태를 만나는데 그것은 존재 대 비존재의 이원성을 뛰어넘는 원시 상태다. 그것은 일시적인 내용물들로 더럽혀지지 않은 허공과 같다. 그 순수하고 형체없는 고요함이 바로 '궁극적 맥락'이며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엇으로서, 역사적으로 종종 '불성'이라 불렸다. 비록 형체가 없지만 그 궁극적 상태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것이 아니라 만유(萬有)로서 모든 것을 담고 있다(지수 850). 이상은 의식 수준을 넘어서와 신의 현존 발견(번역서명 - 내 안의 참나를 만나다)에서 자세히 다루었다. [제15장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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